2월 / 서성남 2월 서성남 새벽 새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달이 2월이다. 어느 달보다 많이 지저귄다. 그 소리는 영하의 날씨를 뚫고 맑기도 하다. 집수리 중인 까치들은 둥지 주위에서 쉴 새 없이 상대를 부른다. 높지 않고 부드럽다. 여럿이 토론하듯 날카롭게 짖는 것과는 달리 온화하다. 다른 새들도 .. 좋은 수필 2020.02.13
황혼 / 설소천 황혼 설소천 석양이 창가에 머물러 있다. 저토록 가슴 설레게 아름다운 풍광이 오늘따라 왜 이다지 서글프게 느껴지는지. 내 눈에만 그럴까. 말없이 저무는 것에 대한 고통을 잠시 엿보았던 때문일까. 구순이 까까운 사람 중에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가게 오.. 좋은 수필 2020.02.09
[2019 황순원문학제 제3회 디카시공모전 당선작 모음] '엉킨 힘' 外 대상 엉킨 힘 엉키는 것들도 힘이 된다고 지지직거리며 흘러가는 전파 저 어지러운 전선들 속엔 수많은 웃음의 채널이 있다 최우수1 잎사귀 초록으로 물들어 있는 거야 길 잃은 밤들도 쉬어가는 자리 만들어 주는 거야 서로 다른 보폭으로 그늘을 만드는 거야 가끔은 작은 집이 되어 햇살.. 문예당선 시 2020.02.06
[제31회 신라문학대상] 차심 / 이상수 [제31회 신라문학대상] 차심 이상수 저걸 차茶의 마음이라 할까. 찻잔 안쪽에 무수한 금들이 그어져 있다. 촘촘하게 새겨진 무늬들이 물고기 비늘 같다. 찻물을 따르자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선들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차심이란 미세하게 금이 간 찻잔에 찻물이 스며든 것을 말한다. 마름.. 문예당선 수필 2020.02.05
뒤늦게 찾아온 이 빛깔은 / 맹난자 뒤늦게 찾아온 이 빛깔은 맹난자 겨우내 나는 조바심을 치면서 진달래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조화 속인지 이번 봄에는 진달래꽃 빛깔의 재킷도 하나 장만했다. 그런 빛깔에 익숙하지 않아 선뜻 꺼내 입지도 못하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봄을 지냈다. 무슨 현상.. 좋은 수필 2020.01.28
우리 엄마 / 박지웅 우리 엄마 박지웅 엄마는 쥐구멍이었다 나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 언제나 줄달음 치는 곳 어떤 손아귀도 들어올 수 없는 운명도 멈추어 기다리는 곳 신도 손댈 수 없는 성지 파괴되지 않는 끄떡없는 별이었다 나 살다가 길 잃으면 예서 다시 고개 내밀라고 가슴 오려 쥐구멍으로 살았다 볕.. 좋은 시 2020.01.26
을의 시대 / 노현희 을의 시대 노현희 “많이 기다렸지? 미안, 속상해 죽겠어.” 약속 시간보다 늦은 시각에 나타난 그녀는 내게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어쩜 저리도 안온한 인생이 다 있지. 그녀를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낯선 단어가 튀어나온 거였다. “왜? 무슨 일이야?” 나는 필.. 좋은 수필 2020.01.26
집 / 최장순 집 최장순 산허리가 시원하다. 강을 끼고 바라보는 전경이다. 하늘과 맞닿은 산은 강 깊숙이 제 그림자를 새기고, 건너편 산자락에 깃든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느릿한 철새들 뒤를 잔잔한 파문이 따라간다. 거실 창으로 여유로운 화폭이 전개된다. 산과 마을과 강을 바라보며 생각.. 좋은 수필 2020.01.16
[김부회 평론가상 수상작] 바퀴 / 심영일 바퀴 심영일 아파트 내 자전거 보관소 목이 잠긴 그가 슬어가고 있다 녹이 슨다는 건 멈춰있다는 것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라는 얘기다 림을 이탈한 뫼비우스처럼 구겨져 있다 침이 마르도록 도망쳐도 만나게 되는 아침을 의심 없이 달렸을 혀 원심력을 견디지 못한 기억 몇 개는 튕겨 나.. 문예당선 시 2020.01.16
[『좋은 수필』 베스트에세이 10 수상작] 의자 / 장미숙 [『좋은 수필』 베스트에세이 10 수상작] 의자 장미숙 매장 앞 도로에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노인의 등이 낯설지 않다. 근처 마트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노인이다. 낡은 파란색 조끼와 구부정한 등에 쌓인 세월의 그림자가 짙다. 노인은 인도와 차도 경계에 앉아 있다. 오늘은 햇볕이 달라.. 문예당선 수필 202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