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말뚝 / 마경덕 나무말뚝 마경덕 지루한 생이다. 뿌리를 버리고 다시 몸통만으로 일어서다니, 한 자리에 붙박인 평생의 울분을 누가 밧줄로 묶는가 죽어도 나무는 나무 갈매기 한 마리 말뚝에 비린 주둥이를 닦는다 생전에 새들의 의자노릇이나 하면서 살아온 내력이 전부였다 품어 기른 새들마저 허공의 것, 아무것도 묶어두지 못했다 떠나가는 뒤통수나 보면서 또 외발로 늙어갈 것이다 좋은 시 2023.06.29
우리 엄마 / 박지웅 우리 엄마 박지웅 엄마는 쥐구멍이었다 나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 언제나 줄달음 치는 곳 어떤 손아귀도 들어올 수 없는 운명도 멈추어 기다리는 곳 신도 손댈 수 없는 성지 파괴되지 않는 끄떡없는 별이었다 나 살다가 길 잃으면 예서 다시 고개 내밀라고 가슴 오려 쥐구멍으로 살았다 볕.. 좋은 시 2020.01.26
[디카시] 붓글씨 / 김영빈 붓글씨 청학동 서당의 풍월을 오래 들어왔을 테니 지리산이 붓글씨를 쓴 대도 이상할 게 없다 머리 위 하늘에 힘주어 쓴 '뫼 산' 한 글자 제 이름 석 자를 쓸 날도 멀지 않아 보였다 - 김영빈 사진시집 『세상의 모든 B에게』 좋은 시 2020.01.02
밤나무의 소망 / 김윤배 밤나무의 소망 김윤배 다 절딴낭규 지난번 바람에도 많이 상했는디 이번에는 아주 절딴나구말었슈 왼케 바람이 쎄니께 말두 못해유 그럼유 다 쏟아지구 말었슈 퍼렇게 쏟아진 풋밤송이를 보구 있을라문 억장이 무너져유 온 산이 퍼렁규 가쟁이두 모두 찢어지구유 뿌리째 뽑힌 낭구두 수.. 좋은 시 2019.10.31
밭 / 정우영 밭 정우영 암시랑토 않다 니얼 내리 갈란다 내 몸을 나가 더 잘 안디 이거는 병이 아녀 내리오라는 신호제, 암먼, 신호여 왜 나가 요새 어깨가 욱씬욱씬 쑤신다고 잘 허제? 고거는 말여, 마늘 눈이 깨어나는 거여 고놈이 뿌릴내리고 잪으면 꼭 고로코롬 못된 짓거리를 한단다 온 삭신이 저.. 좋은 시 2019.10.31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 좋은 시 2019.10.15
[디카시] 망부석 / 강영식 2018년 제1회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당선작 망부석 다시 천 년을 기다리면 당신 오실지 몰라 다시 천 년을 기도하면 번쩍 눈이 떠질지 몰라 - 강영식 좋은 시 2019.09.16
[디카시] 햇살 방석 / 강남수 2019 제2회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당선작 햇살 방석 1억 4,960만 km의 거리를 달려 온 따뜻한 손님을 위해 내놓은 폭신한 물 겹 넣은 햇살 방석 - 강남수(경기도 양주시) 좋은 시 201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