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꽃잎처럼 / 민명자 한 장 꽃잎처럼 민명자 내일은 비가 온단다. 꽃이 만개하여 한바탕 잔치를 치를 때쯤이면 얄궂은 비가 꼭 한 번씩 다녀가신다. 목마른 대지를 축이려 오실 거라면, 산천초목을 살리려 오실 거라면, 꽃 얼굴 다치지 않게 살살 내리시게. 꽃 송아리 떨어지지 않게 비바람도 살살 부시게. 시.. 좋은 수필 2019.12.03
구멍 / 마경덕 구멍 마경덕 구멍은 사방에 있었다. 물 샐 틈 없는 바다마저 구멍이 있어 파도에 발을 헛디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밤마다 호롱불 아래 아홉 켤레의 양말을 기웠고 옆집 아저씨는 노름빚에 시달려 온몸에 구멍투성이었다. 솥이나 냄비를 때우러 다니던 땜쟁이 영감은 위.. 좋은 수필 2019.12.01
어느 무인카페 / 김응숙 어느 무인카페 김응숙 하천을 따라 산책을 나선다. 운동도 하고 저 아래 무인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기 위해서다. 얼마 전부터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천은 완만하게 흐르고 있다. 늦가을이라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므로 수심은 얕다. 갈대가 하얗게 사위기 시작하는 기슭에서 발목.. 좋은 수필 2019.12.01
[제18회 김포문학상 우수상] 기적소리, 그 멀고 아련한 것들에 대하여 / 김만년 [제18회 김포문학상 우수상] 기적소리, 그 멀고 아련한 것들에 대하여 김만년 기차가 통과 예령을 울리며 간이역을 지나간다. 역사 앞 수숫대는 구름을 쓸고 묵은 닭들은 하릴없이 구구댄다. 나도 하릴없이 하루를 전세 내어 역사 벤치에 앉아있다. 기차는 떠났지만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 문예당선 수필 2019.11.23
11월의 詩 .... Ernesto Cortazar(에네스토 코르타자르) - I Was Looking For You November Benjamin Williams Leader - 1884 11월의 詩 청원 이명희 가슴 두근거리는 일 접고 이별의 때를 알아 스스로 길 떠나는 모습 저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햇살을 품으면 가슴 뛰었고 바람을 만나면 춤을 추고 싶어 가슴에 환한 꽃물 들었던 날들이 땅으로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 음악 감상 2019.11.21
칼 / 정성화 칼 정성화 카리스마란 많은 사람을 휘어잡는 개성이나 비범한 통솔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말이 "칼 있어. 임마."의 줄임말로 들린다. 발음으로 인한 연상 작용이겠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왠지 마음속에 칼 한 자루 품고 살아갈 것 같다. 칼에 대한 첫 기억은 두려움이.. 좋은 수필 2019.11.21
찬란한 슬픔 덩어리 / 박희선 찬란한 슬픔 덩어리 박희선 내 몸은 헐겁다. 어느새 그렇게 되어 어지럼병이 쉽게 들어 올 만큼 틈이 많다.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와 나를 사정없이 눕힌다. 한 해쯤은 건너뛰어도 섭섭하지 않을 일인데 벌써 삼 년이나 제집처럼 들락거린다. 천장이 빙그르르 돌면 모질게 내칠 수 없어 이.. 좋은 수필 2019.11.17
할머니의 숟가락 / 이은정 할머니의 숟가락 이은정 겨울바람이 잦아들 무렵이었다. 미모의 신문사 기자가 우리 집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기자는 현관 입구에서 신발을 벗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들어오시라고 하니 집이 너무 깔끔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었다. 누추한 거실 바.. 좋은 수필 2019.11.09
아람 / 조일희 아람 조일희 단단한 옥광밤을 푹 쪄냈다. 적당히 식은 밤을 이빨로 동강 자르니 뽀얀 속살이 둘로 나뉜다. 포실한 밤을 입에 넣기도 전에 침이 먼저 마중 나온다. 역시 달다. 단맛 뒤에 쌉싸래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풋밤 같던 아들의 떫은 시절이 떠올라서다.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식 .. 카테고리 없음 2019.11.05
걸(乞) / 박경주 걸(乞) 박경주 국화꽃이 남편의 사진을 감싸고 있었다. 곡하는 소리, 교우들의 연도 소리는 슬프게 이어지고…. 성가는 애달피 향불과 함께 피어올랐다. 두 아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먹거렸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스물둘, 열아홉의 상주였다. 지난밤, 임.. 좋은 수필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