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왔다 / 김희자 제비가 왔다 김희자 밖이 요란하다. 녀석이 또 왔는가 보다. 마당에 고양이가 나타나자 불안한 제비가 목청을 높인다. 보호 본능을 발휘한 제비 떼가 낮게 날며 고양이를 경계한다. 새끼를 보호하려고 경계하자 고양이도 담 아래 숨어서 호시탐탐 어린 제비를 노린다. 이럴 땐 누구 편에 .. 좋은 수필 2019.10.31
풍로초 2 / 정성화 풍로초 2 정성화 동생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요즘 말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매일 챙겨 보던 TV 드라마도 재미없다고 하며 그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고 했다. 폐 질환으로 십 년 넘게 입 · 퇴원을 반복했으니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옷을 사.. 좋은 수필 2019.10.28
무심의 의자 / 최민자 무심의 의자 최민자 알뜰장터에서 간이의자를 들여왔다. 엉덩이를 겨우 걸칠 만한 넓이에 바닥에서 한 뼘 정도의 높이여서 의자라기보다는 깔개에 가깝지만, 거칠게 갈라진 나뭇결과 둥글게 닳아진 모서리가 정겨워 첫눈에 선뜻 집어 들었다. 투박한 통나무 상판에 네 개의 다리를 끼워 .. 좋은 수필 2019.10.28
계절풍 / 김경순 계절풍 김경순 남편은 또 배낭을 꾸린다. 몇 달째 내가 보아오는 토요일 밤의 풍경이다. 익숙하고도 절도 있는 손놀림이 일련의 경건한 의식 같다. 여벌의 옷가지와 아직 끊지 못한 담뱃갑이며 지갑, 손수건 등을 챙기며 내일 아침 잊어버린 물건 없이 떠나려는 꼼꼼함을 발휘한다. 준비.. 좋은 수필 2019.10.21
삽화 몇 컷 / 이옥순 삽화 몇 컷 이옥순 가령 몽테뉴의 수상록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고서도 아직 읽는 중이다. 삽화나 공백 없이 천삼백 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살아있는 동안 내내 고민한 인류의 스승 몽테뉴가 체험에 몰두한 인생의 솔직한 고.. 좋은 수필 2019.10.18
인두자국 / 허창옥 인두자국 허창옥 이 글은 그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 될 것이다. 하여 그의 단점이 드러나고 그게 험담으로 느껴질 우려도 있지만 애정이 전제되어있기에 그저 독자와 나누는 한담(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또는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여기쯤에서 .. 좋은 수필 2019.10.11
염장 / 박혜경 염장 박혜경 간잽이가 고등어의 대가리를 야물게 낚아챈다. 시퍼런 등짝이 금방이라도 철퍼덕 일어설 기세다. 무슨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패랭이 모자를 쓴 간잽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나는 간잽이의 손길이 닿자 긴 여행으로 단잠에 빠졌던 고등어가 눈.. 좋은 수필 2019.10.08
간수 / 박월수 간수 박월수 소금을 샀다. 포대를 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서해의 태양과 바람 냄새가 났다. 향기로웠다. 포대를 다시 묶으면서 보니 겉면에 소금기가 배어나와 눅진하면서 짭짤한 기운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창고 바닥에 플라스틱 상자를 깔고 그 위에 묵직한 소금 포대를 올려.. 좋은 수필 2019.09.30
낙엽이 가는 길 / 김순경 낙엽이 가는 길 김순경 산골짝의 새벽은 늦게 찾아온다. 큰 산일수록 계곡이 깊어 하루해가 짧다. 긴 능선을 넘어온 햇볕이 자리 잡을만 하면 어느새 반대편 산마루에서 서성인다. 붉은 기운을 쏟아내는 저녁노을이 나뭇가지에 걸리면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어둠이 찾아든다. 발원지를 .. 좋은 수필 2019.09.25
어머니의 보따리 / 최장순 어머니의 보따리 최장순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보따리를 가져왔다. 보물이라도 챙기듯 꼭꼭 싸맨 것을 풀자 참았던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보따리는 어머니의 몸이자 동반자였다. 자식들 집으로 다니러 가실 때에도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보따리 속에는 얇은 이불과 수의가 들어 .. 좋은 수필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