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자국
허창옥
이 글은 그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 될 것이다. 하여 그의 단점이 드러나고 그게 험담으로 느껴질 우려도 있지만 애정이 전제되어있기에 그저 독자와 나누는 한담(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또는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여기쯤에서 그의 면면을 되짚어보면서 향후 그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도모하려 한다는 대답을 할 수 있겠다.
두서없이 시작하련다. 그는 입대 39개월 만에 육군병장으로 제대를 하였다. 군복무기간이 그에게는 요행처럼 찾아온 호시절이었다고 그의 아내는 생각한다. 김신조 씨가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했을 때 그는 수도경비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고, 그 사건 때문에 제대가 3개월 늦어졌다고 두고두고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병사시절이 그에게 좋은 시절이었음을 말해주는 확연한 근거는 이렇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배부르게 밥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그가 군대에서 제때에 밥을 배불리 먹었다는 것이다. 군대서 7, 8cm 키가 자라서 182cm가 되었다고 그는 자랑삼아 말한다. 요즘엔 장신이 많지만 그 시절만 해도 드물게 큰 키였다. 밥을 배불리 못 먹어서 군대서 키가 컸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애잔하다.
밥은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절절한 것이다. 결혼해서 제대로 된 밥상 앞에 앉았을 때 그는 감격했다. 요즈음 그는 그 시절을 까맣게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쌀의 품질을 엄청나게 따진다. 조밥에다 감자밥을 먹었던 날들에 대한 무슨 한풀이 같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그가 여전히 배고픔의 인두자국을 지우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영 재미가 없다.
대체 어떻게 먹고 살았기에? 중학생이 되면서 시작된 자취생활이 서른이 넘도록 계속되었으니 때 되면 밥 주는 군대가 좋았고 결혼해서 먹게 된 이른바 ‘집밥’에 환호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청소년기 내내 냄비에 꽁보리밥을 안칠 때마다 아예 굵은소금을 뿌렸다(반찬은 언감생심이었으니까.)는 것이고 그마저 먹다 굶다 하였다는 얘기다. 그에게 제일 좋은 쌀로 지은 밥을 먹을 권리가 왜 없겠는가.
그는 4형제의 막내인데 세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말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가 결혼하기 몇 해 전에 아버지는 유골함으로 돌아왔고 여기서 다시 우리네 풍습으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후의 황폐한 시대에 땅 한 뙈기 없이 아들 넷을 혼자 키우게 된 그의 어머니로선 ‘산 입에 거미줄 칠’ 지경인 가난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아버지의 유골함으로 장례를 치를 땐 다들 제 밥값 할 만큼은 되었다고 하니 장하다 할밖에.
밥, 밥, 했지만 결코 밥 이야기가 아니다. 이즈음 눈에 띄게 늙어가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괜스레 짠해져서 코끝이 아프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그의 이러저러함을 좀 더 보고자한다. 그는 매사에 단순하게 반응한다. 급하게 화를 내고 급하게 사과한다. 화를 낼 땐 이른바 “똥 뀐 놈이 성낸다.”에 딱 맞다. 그리고 약간 비굴하게 무조건 사과한다. 상대방이 사과를 받을 ‘타이밍’인가를 잘 파악하지 못해서 의도와 달리 번번이 상대방의 화를 더 돋우고 만다. 사람이 어찌 그리 단순하냐고 그의 아내가 불평을 하면 그는 단순해서가 아니라 순수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딴은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매우 단순한 사고구조를 가졌다. 이를테면 신문이나 방송의 내용을 파악할 때도 앞뒤의 맥락을 잘 읽지 않는다. 처음 눈에 본대로 인식하여서 종종 사실이 왜곡된다. 그런 습관은 수십 년을 거치면서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경제를 인식하는 눈은 대체로 정확한 것 같은데 운이 없는지 어떤지 재화창출을 위해서 시도를 할 때마다 실패를 한다. 그 점 대단히 애석하다.
정치나 역사에 대한 그의 안목은 거시적이라 할만하다. 이편저편 보다는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역감정을 몹시 싫어한다. 통일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후대를 생각하면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그런 소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데 정책이 그렇지 못하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건 그가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현재 좋은 쌀 운운하면서 양적으로는 배불리 먹지만 워낙 음식솜씨가 없는 아내를 만난 탓에 질적으로는 매우 저급하게 먹고 산다. 다 팔자소관이라 치부하고 정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는 이따금 불같이 화를 내는데,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예측할 수없이 길어져서 몹시 허기가 질 때이다. 그러다가 식사를 하고나면 씻은 듯이 평온해진다. 결국 또 밥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기까지다. 누구에게나 지워지지 않는 인두자국 한 개쯤은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 주절대는 걸 보면 그의 인두자국이 필시 그의 아내에게도 각인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부부란 본시 그런 것일 터, 상처든 영광이든 공유할 수밖에. 그와 그의 아내는 세상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신기하리만치 별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면서 해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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