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풍로초 2 / 정성화

희라킴 2019. 10. 28. 19:33



풍로초 2 


                                                                                                                                 정성화


동생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요즘 말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매일 챙겨 보던 TV 드라마도 재미없다고 하며 그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고 했다. 폐 질환으로 십 년 넘게 입 · 퇴원을 반복했으니 그럴 만하다고 이해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옷을 사드리고, 신나는 노래 테이프를 틀어드려도 엄마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감정이란 걸 죄다 내다 버린 것 같기도 했고 모두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사는 게 귀찮다고 했다. 위로하는 차원에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드렸더니, 몸에 좋지 않은 걸 권한다며 타박하셨다.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닌 듯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까지도 엄마는 좁은 마당 한 편에 분꽃과 채송화를 심었고 종종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꽃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더 좁고 마당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마는 더 이상 화초를 기르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 집 화분 중에서 가장 열심히 꽃을 피우는 '풍로초' 화분을 갖다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풍로'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바람이 일어나면서 불이 잘 붙도록 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엄마가 쇼파에 앉았을 때 바로 내다보이는 자리에 화분을 놓아드렸다.

 엄마의 우울한 표정은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쇼파 위의 쿠션 하나만하게 작아진 엄마. 그러고 보니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본 지도 오래 되었다. 쌀을 씻거나 나물을 다듬으면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웃다가도 멈칫했다. '어쩌고 계실까.'

며칠 후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화분에 물을 얼마 만에 주면 되느냐고 물으셨다. 목소리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베란다 창문을 열어 풍로초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화분의 흙이 말랐는지 살펴본다고 했다. 처음보다 꽃이 훨씬 많이 피었다고 할 때는 목소리 톤도 살짝 올라갔다. 이때다 싶았다. 엄마 손이 약손이라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약손' 이라는 내 말에는 엄마가 스스로 병을 이겨보려는 의지를 가져달라는 의미도 들어있었다.

  "뭐 그럴려고…"

 그날 엄마와 나는 십 분이 넘도록 통화를 했다. 당신이 자란 옛집에는 마당이 꽤 넓었고 제철 따라 이런저런 꽃들이 많이 피었다는 얘기를 했다. 여든이 넘은 엄마가 당신이 예닐곱 살이었을 때의 집 풍경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게 놀라웠다.

 갑자기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풍로초는 잠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를 자주 들여다 봐주는 노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더 열심히 잎을 내고 꽃망울을 밀어 올리지 않았을까. 우울증이란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닥쳐왔을 때 되도록 기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는 '정신적 겨울잠'이라는 해석도 있다. 풍로초가 엄마에게 그만 겨울잠에서 깨어나라고 거실 창을 톡톡 두드렸을지도 모른다. 비록 사람의 언어로 소통한 건 아니지만 풍로초와 엄마는 차츰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식물을 길러온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식물은 '탓'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다. 햇볕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바람이 들지 않으면 들지 않는 대로,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이 좋든 안 좋든,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 식물은 그냥 사는 개 아니라 살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살아낸다는 것'에는 생명에 대한 의지가 들어있다. 성실하다는 낱말은 어쩌면 사람보다 식물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갖다 드린 풍로초를 들여다보며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풍로초를 보며 엄마 가슴 속 화분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가 조금이나마 움을 틔웠기를 바란다. 당신 삶에 간간이 피었던 꽃들을 떠올리며 잠시라도 행복했기를 바란다. 꽃이 없는 날은 잎이 꽃을 대신하는 걸 보면서 당신의 노년을 너무 서글퍼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풍로초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일 년만이었다.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머물렀던 것이라 더욱 애틋하다. 풍로초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더 살고 싶어 했는지를. 당신의 병을 이겨보려고 시간에 맞춰 열심히 약을 먹고 억지로라도 수저를 드는 모습을 풍로초는 안타깝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오늘도 풍로초는 열 송이 넘도록 꽃을 피웠다. 창가 더 가까이로 화분을 옮겼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풍로초를 보러 내려오실 것 같아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乞) / 박경주  (0) 2019.11.03
제비가 왔다 / 김희자  (0) 2019.10.31
무심의 의자 / 최민자  (0) 2019.10.28
계절풍 / 김경순  (0) 2019.10.21
삽화 몇 컷 / 이옥순  (0) 201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