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금상] 쇠절구 / 정영조 [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금상] 쇠절구 정영조 마침내 유연해져 익어갔다. 서리서리 풀어지고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진다. 오래되어 주름지고 닳아도 먼 곳에서 보는 원숙한 자태에 눈길이 멈춰진다. 왁자지껄하게 내지르지도 빈속을 울려 나둥그러지는 일이 없다. 묵묵하게 앉은 기억은 .. 문예당선 수필 2018.10.18
[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곡비(哭婢) / 김순경 [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곡비(哭婢) 김순경 가마솥에 윤슬이 보인다. 희미한 등불에도 잔물결이 반짝인다. 열기가 소용돌이치면 무쇠솥은 소리 없이 눈물부터 흘린다. 때로는 큰소리로 울지만 불길이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긴 세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니는 눈물.. 문예당선 수필 2018.10.18
[제9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청에 젖다 / 안희옥 [제9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청에 젖다 안희옥 소리를 따라 새떼가 날아오른다. 천변의 갈대들은 중모리로 춤을 추고 만추의 은행잎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허공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소리가 강물처럼 유장하다. 강이 바라보이는 정자에서 대금연주가 한창이다. 가랑비 내리는 궂은 .. 문예당선 수필 2018.09.07
[제9회 천강문학상 수필 대상] 냇내, 그리움을 품다 / 허정진 [제9회 천강문학상 수필 대상] 냇내, 그리움을 품다 허정진 냄새는 그리움이다. 문득 아니면 울컥, 그때 그 어느 날의 흔적과 시간을 찾아 영혼의 빗장을 푸는 알레고리이다. 갓 볶아낸 커피 향기, 담장너머 청국장 냄새, 새로 갈아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그 목도리에서 그 사람의 언어.. 문예당선 수필 2018.09.07
[23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작] 등잔, 먼 불빛 / 송복련 [23회 신곡문학상 본상 수상작] 등잔, 먼 불빛 송복련 며칠 전에 만난 등잔이 생각나서 초에 불을 댕긴다. 불꽃이 핀다. 어둠에 둘러싸여 작게 너울거리는 몸짓에, 물건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벽과 천정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밤의 숨소리인가. 풀숲이 뒤척이는가 싶더니 벌레 울음이 귀에 .. 문예당선 수필 2018.03.06
[2002 농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귀소 /고경숙 [2002 농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귀소 고경숙 기왓장 사이로 솟을대문이 보인다. 처마도 마른 속을 드러내며 삭아내리는 중이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높은 담벼락 위로 시든 풀만 흐느적거린다. 지키고 감출 것이 그렇게 많았을까. 돌담을 겹쳐 두른 중문을 지나면 귀면와가 두 .. 문예당선 수필 2018.02.26
[201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누름돌 / 정성려 [2018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누름돌 정성려 그런대로 아담하고 반질반질한 항아리 속에서 노란빛이 어린 오이지를 꺼냈다. 펄펄 뛰는 오이들을 사뿐히 눌러 진정시켜주던 누름돌을 들어내니, 쪼글쪼글해진 오이들이 제 몸에서 빠져나간 물에 동동 뜬다. 항아리 속의 오이는.. 문예당선 수필 2018.01.02
[2018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어느 삼거리에서 / 이한얼 [2018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어느 삼거리에서 이한얼 문득 그럴 때가 있다. 무심결에 어딘가를 봤을 때 그 장면이 화인처럼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 또는 길을 걷다 어떤 소리를 들었는데 의미 없는 그 음이 아주 오래 머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이 있다. 당시.. 문예당선 수필 2018.01.02
[201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등을 돌려보면 / 김현숙 [201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등을 돌려보면 김현숙 돌아섰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몸을 돌리든, 마음을 돌이키든 한 번쯤은 앞을 향하고 있는 내 구둣발을 뒤쪽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부러라도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길을 가다 몸을 돌리면 내가 .. 문예당선 수필 2018.01.02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마키코 언니 / 김영주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김영주 마키코 언니 마른 잎 하나가 김이 피어오르는 허공에서 팔랑거리다 노천탕 수면에 내려앉는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둘러쓴 마키코 언니가 물살을 밀어내며 엄마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간다. 영락없는 모녀 사이다. 언니의 낯빛이 어린아.. 문예당선 수필 201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