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風化 최운숙 주문하지 않은 관 두 개가 왔다. 어찌 된 거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경찰관 앞에 앉았다. 왜 그랬는지, 왜 그곳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부검을 결정해야 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칼은 쓰지 않기로 했다. 관속에 반듯하게 누운 얼굴이 평화롭다. 지금껏 보아온 중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삶의 경계를 벗어난 순간 고통은 비켜섰을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관은 각刻 하나 새기지 않은 밋밋한 그의 얼굴을 닮았다. 휘두를 칼도 없었거니와 마음에 담아둔 그릇도 없었으니 세상의 흔적이 섞이지 않는 그와 딱 어울리는 옷이다. 그는 얇은 나무 옷을 입고 시간여행 길에 누웠다. 세상에 와서 오래 살지도, 악착같이 버티어 보지도, 치열하게 사랑해보지도 않았으니 땅속에 누울 수도 없다. 더욱이 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