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화장(化粧)과 민낯 사이 / 이혜연

희라킴 2022. 1. 12. 18:42

                                                                화장(化粧)과 민낯 사이 

 

                                                                                                                              이혜연

 

 

 “다 늦게 뭐 하는 거야?”

 장 본 것들 정리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서자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곧 아버지가 들어올 시각이었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 냅다 퉁바리를 놨다.

 “이제 아버진 남자도 아니라며?”

 “….”

 나는 다시 한번 퉁바리를 주었다.

 “정 없다며? 정 버린 지 오래라며?”

 어머니는 아무런 대꾸 없이 립스틱 뚜껑을 닫았다. 어머니의 입술은 와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색깔이었다.

 “정 뗐다는 말 말짱 거짓말이네 뭘.”

 어머니는 심통이 나 퉁퉁 불어 있는 내 얼굴을 흘끗 보더니 고관절 수술로 불편해진 몸을 어렵사리 일으키며 한마디 툭 던졌다.

 “정은 무슨…, 여자의 자존심이다.”

 

 화가인 아버지는 자유분방하게 사셨다. 무시로 바람을 피워 어머니를 비참하게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고, 그런 어머니를 보는 게 속상했고,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여자로 남고 싶어하는 어머니가 싫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립스틱이라니…. ‘여자의 자존심은 무슨….’ 그야말로 자존심도 없나 싶었다.

 

 집안 내력 어느 구석에 숨어 있던 유전자인지 내 얼굴엔 주근깨가 많다. 거기다 입술이 두텁고 윤곽도 흐리다. 화장을 시작한 건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내게 화장은 화운데이션으로 주근깨를 감추고 립스틱으로 입술 윤곽을 만들어 칠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화장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외출 준비하는 데 시간도 더 걸릴 뿐 아니라 지우는 일도 번거롭고 성가셨다. 한여름이면 덧씌운 두께 때문에 더 더웠고, 땀으로 얼룩이 져 감추었던 것들이 드러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 귀찮은 화장의 노역에서 놓여난 건 웃프게도 3년 전 당한 사고 때문이었다. 넘어지면서 왼쪽 광대뼈가 으스러져 세 군데나 철판으로 고정을 하는 수술을 받은 것이다. 워낙 살성이 나빠 부기가 빠지고, 수술로 마비되었던 신경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지 2년여가 걸렸다. 화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년 뒤 오른쪽 콧방울 안쪽에 생긴 낭종(囊腫)으로 다시 한번 수술을 받았다. 늦은 나이에 연이어 받은 수술로 면역이 떨어졌는지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져 향(香)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화장품은 대개 향이 강하기 마련이다. ‘울고 싶자 뺨 맞는다’ 했던가. 두 번의 수술이, 그리고 나이 든 여자라는 자조감과 뻔뻔함이 ‘민낯 되기’에 맞춤한 구실이 되어주었다.

 

 첫 번째 수필집을 내면서 머리글에 ‘엑스레이 사진 찍기와 화장’ 이야기를 하였었다. 아무리 진솔한 글이 수필이라지만 나는 민낯 드러내기가 두려워 분식(粉飾)을 조금 하였노라고. 엑스레이 광선처럼 숨어 있던 내 안의 나를 찾아내 드러내 보이는가 하면, 모자란 재능과 치부는 적당한 분식으로 감추고 덮어두는, 이중성을 가진 글이 내 글들이라고 고백을 한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첫 번째 책이 투시광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나를 바로 알고, 맨얼굴 그대로 세상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기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바람은 두 번째 책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게 옳겠다. ‘글이 곧 그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글에서도 또한 삶에서도 ‘민낯 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수술 덕분으로 뒤늦게나마 화장기 없는 얼굴 소망은 이루었다. 내친김에 파마기 없는 머리에까지 도전해보았다. 아뿔사!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가관이었다. 맨얼굴에 파마기 없이 질끈 묶은 머리, 수수한 옷차림을 로망으로 삼았던 것도 어느 정도 젊음이 있어 가능했던 걸까. 볼륨 없는 반백의 머리는 목선 밑으로 내려올 정도로만 길어져도 추레해 보였고, 숏컷트를 하면 영락없는 요양원 안노인 모습이었다. 이 모습에 옷차림까지 후줄근해진다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과 마주치면 ‘늘 단정해서 보기 좋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근래 들어 그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 듣기 좋았던 인사는 순전히 화장발, 머리발, 옷발 덕분이었던 셈이다.

 

 여배우에게 있어 금기 사항 중 으뜸은 아마도 민낯일 게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배우들이 일 박을 하게 될 경우 민낯을 드러내게 되는데 완전 맨얼굴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안 한 듯 최소한의 화장을 한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그들이기에 수긍이 가면서도 살짝 아쉬워지곤 한다. 일설에 의하면 스웨덴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나이가 들자 늙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 철저히 숨어 살았다고 한다. 반면 독일 출신 프랑스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는 나이 들어서까지 활동을 하면서, 취재기자들에게 자신의 주름살은 자신의 살아온 내력이니 낱낱이 찍어달라 했다고도 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오드리 헵번도 마찬가지였다. 구호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늙은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화장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인생의 민낯’으로 보자면 같은 맥락이다. 숨김과 드러냄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갈등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화장은 결점을 감추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장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름다운 모습을 선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보면 ‘늘 단정해 보기 좋다’ 했던 내 이웃의 인사처럼,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 또한 상대에 대한 예의이며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페르소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생. 어머니의 립스틱 바르기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여자’라는 페르소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었음을 어머니 돌아가신 연후에야, 그리고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잰걸음으로 좇고 있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송두리째 드러내기보다는 적당히 감추어 여운을 남기고, 날것의 거친 문장보다는 알맞은 분식으로 격조 있게 다듬어주는 것이 읽는 이에 대한 예의이며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는 화장과 민낯 사이 어디쯤에 머물 것인가다.

 

 나이 든 여자에게도 신록의 계절은 찾아왔다. 알레르기 비염의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BB크림을 살짝 발라볼까,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