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풍화風化 / 최운숙

희라킴 2023. 8. 6. 21:14

                                                                                   풍화風化

                                                                                                                                            최운숙

 

 주문하지 않은 관 두 개가 왔다. 어찌 된 거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경찰관 앞에 앉았다. 왜 그랬는지, 왜 그곳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부검을 결정해야 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칼은 쓰지 않기로 했다.

 관속에 반듯하게 누운 얼굴이 평화롭다. 지금껏 보아온 중 가장 편안한 얼굴이다. 삶의 경계를 벗어난 순간 고통은 비켜섰을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관은 각刻 하나 새기지 않은 밋밋한 그의 얼굴을 닮았다. 휘두를 칼도 없었거니와 마음에 담아둔 그릇도 없었으니 세상의 흔적이 섞이지 않는 그와 딱 어울리는 옷이다. 그는 얇은 나무 옷을 입고 시간여행 길에 누웠다. 세상에 와서 오래 살지도, 악착같이 버티어 보지도, 치열하게 사랑해보지도 않았으니 땅속에 누울 수도 없다. 더욱이 옷을 치장해 줄 꽃상여는 더더욱 없다.

 그가 먼 길 옷을 입고 관과 함께 불 위에 올랐다. 불은 얇은 강철 시계를 두 바퀴 돌아 아우의 기억을 모두 가져갔다. 한 줌 가루가 되어 물고기의 밥이 되고 물이 되어 깨어진 어느 한쪽 물과 만나 함께 흘러갔다.

 태어날 때는 축복으로 왔으나 돌아갈 때는 혼자였다. 그의 애마 자동차만이 쓰러진 아우 곁을 지켰다. 자동차 옆에 쓰러져 누운 몸 위로 비와 바람이 쏟아지고 있었다.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

 또 하나의 묵직한 관이 있다. 누운 얼굴이 바람 빠진 축구공 같다. 삶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다. 아니, 몇천 볼트의 압력으로 가해진 순간의 고통이 육체를 찌그러뜨린 징표다. 형부를 주검으로 몰고 간 건 교통사고였다. 달리는 차와 달리는 오토바이가 제 속도로 부딪혔다. 고통의 무게처럼 관도 무겁다.

 물 먹은 관이 들린다. 임금이 올라섰을 법한 높은 곳을 향해 관은 무겁게 올랐다.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을 벗고 땅 중앙에 누웠다. 관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새긴 후 땅속 여행을 할 것이다. 그러다 아우가 있는 물을 만날지도 모른다. 땅과 물이 만나 흘러 흘러서 큰 흐름을 이루며 사라진 시간의 뒷이야기를 새로 쓰기도 할 것이다.

 관이 눕는다. 바람 옆에 눕고 땅 중앙에 눕는다. 불 위에 눕고 물 아래에 눕는다. 남은 자의 눈물에 눕고, 풍화에 흩어진다.

 남편의 전화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목소리로 보아선 그가 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통사고 현장은 아파트단지다. 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가 넘어간 몸은 심장이 멈췄다. 뻣뻣해진 몸뚱이가 하얀 수건에 쌓여 떨어진 깃발처럼 누워있다. 반려동물이라 부르며 가족으로 살아왔지만, 관은 없다. 영혼이 없는 것은 관을 가질 수 없다. 자식 하나를 둔 가족 속으로 들어와 초롱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승에서의 인연은 삼 년이다. 관 대신 희고 큰 수건에 쌓여 개미 보시 길에 묻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있다.

 연이어 세 번의 이별을 맞은 나는 죽음이 손안에 있음을 느낀다. 내 삶 순간순간과 함께함을 느낀다. 소리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어 마르지도 젖지도 않아 흔들리다 사라진다고 어느 소설가는 말했다. 죽음의 소리도 그러할까, 손안에 들어온 소리는 끝없이 넘쳐나서 주인 없는 나라에 각각의 주인으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외딴 섬 두무진은 기암괴석이 수많은 얼굴을 하고 솟구쳐 올라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푸른 바다와 조각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이 모습을 본 어느 선비는 늙은 신이 만든 마지막 작품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침식되고 깎인 얼굴의 주인이 되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 풍화되어가는 것, 육신을 벗는 일은 멀리 흩어졌다 되돌아온 소리처럼 긴 여운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먼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나뭇가지를 베듯 내 몸을 스쳐 소리를 끌어낸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단단하던 나의 무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물이 되고 땅이 된 그들처럼 내 삶과 죽음은 손바닥 안에서 조금씩 깎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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