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껍데기 / 박동조

희라킴 2023. 8. 6. 21:10

 

                                                                                    껍데기 

                                                                                                                                      박동조

 투명한 형체에 등은 갈라졌다.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허물 속은 텅 비었다. 비어버린 속과는 아랑곳없이 여섯 개의 발은 안간힘을 다해 나무를 붙안고 있다. 무슨 미련이라도 있는 것일까? 껍질을 뚫고 날아간 몸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어둡고 습한 땅속에서 굼벵이로 산 세월에 그리움이라도 남은 것인가?

 허물은 굼벵이가 매미로 우화할 때 남긴 껍데기다. 껍데기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풍화의 시간으로 내던져졌다. 미래는 껍데기의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나온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곧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닥칠 것이다. 과연, 나무를 훔켜쥔 여섯 개의 발은 몰아치는 눈바람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오로지 무로 사위어 가는 게 껍데기에 주어진 소명이다.

 흔히들 노년을 껍데기의 시간이라고 한다. 젊을 때는 그 소리를 예사로 들었다. 나이 들어보니 그처럼 적합한 말이 없다. 젊은 날은 인생을 채워가는 시간이고 노년은 채웠던 걸 소실해가는 시간이라는 걸 노년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젊은 시절은 갠 날보다 흐리고 습한 날이 더 많았다. 의식주를 버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고, 자식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할 일이 더미를 이루었다. 남편과도 걸핏하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인생의 페이지를 채우는 일임을 몰랐던 그때는 어서어서 고단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식들 내보내고 나면 그동안 홀대했던 자아를 위해 남은 시간 모두를 오롯이 바칠 거라고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제 둥지를 지어 독립했다. 양가 부모님 저승 가시는 길 배웅도 해드렸다. 그것이 껍데 기로 변이되는 과정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자식들이 독립한 뒤, 자신과 한 약속을 위해 글을 엮는 세상에 발을 들여 작가라는 명찰을 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아등거려도 채우는 속도는 비어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낡아가고, 정신의 창고는 대책 없이 비어갔다.

 나이 깊어진 지금, 의식주를 위해 아등바등 나부대지 않아도 등은 따시다. 이만하면 인생 태평가를 부를 줄 알았다.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이 없다는 건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포만한 배로 빈둥거리며 누리는 등 따신 방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는 버릇처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껍데기 말고는 남은 게 별로 없어서 소스라치고, 그러고도 집착을 놓지 못하는 자신에 놀란다.

 젊음만 내게서 빠져나간 게 아니다. 친구들은 점점 전화조차 뜸하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 챙기는 횟수가 줄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것도 기력이 따라주어야 가능하다. 금방 둔 곳도 몰라 허둥거리는 횟수가 날이 갈수록 잦아진다. 기억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조짐이다.

 지는 노을이 황홀해서, 깨어진 보도블록 틈에서 수줍게 피어난 작은 별꽃이 안쓰러워 눈물 흘리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감동할 줄 모르는 앙상한 껍데기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노년이 이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꿈꾸는 건 어리석고 부질없다고 내면의 내가 외면의 나를 보고 속삭인다. 때로는 힘이 닿지도 않는 정치꾼들에 핏대를 돋우고, 써지지 않는 글감을 붙들고 명작을 만들겠다고 낑낑거리는 나를 한심하다고 조롱한다.

 주의를 기울여 다시 한번 찬찬히 허물을 들여다본다. 풍화될 날이 멀지 않은 텅 빈 몸체로 잔뜩 나무를 훔켜쥔 모습이라니! 내 눈에는 그것이 가소롭기 짝이 없는 껍데기의 공허한 집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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