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종이 위의 집 / 김응숙

희라킴 2021. 9. 2. 16:56

 

                                                          종이 위의 집 

 

                                                                                             김응숙

 

 

 사무실의 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공인중개소 앞 사 차선 도로 너머에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단독주택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어깨를 맞대던 오래된 동네였는데 재건축이 된 모양이다. 하긴 전철역이 가깝고 나름 학군이 좋은 곳이니 개발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 아파트는 한낮의 햇살 아래서 거대한 트리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반짝거리는 아파트가 깨끗이 닦아놓은 사무실 통유리에 그대로 얼비친다. 통유리에는 일정한 크기의 흰 종이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종이마다에는 ‘00 아파트 00평, 00억’ 등의 매매정보가 쓰여 있다. 평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정 가격 아래의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통유리가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이기라도 한 것처럼 종이들은 좌우, 위아래로 촘촘히 붙어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빌라에 몇 년을 세 들어 사는 딸아이의 새로운 셋집을 알아보기 위해 나선 길이다. 아이의 작업장에서 멀지 않은 양지발랐던 이 동네를 기억하고 찾아왔는데, 이곳은 이미 예전의 그 동네가 아니다. 얼마 되지 않는 보증금을 생각하니 발걸음은 더욱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파트 뒤쪽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집들이 남아있는 터라 나는 사무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선다.

 

 몇 살이나 되었을 때였을까. 나는 몽당 연필에 힘주어 가며 종이 위에 집을 그렸다. 반으로 접으면 대칭이 되는 소박한 맞배지붕의 기와집이었다. 지붕과 벽을 그리고 양쪽으로 네모난 창문을 그렸다. 지붕에는 생선 비늘 같은 모양으로 기와를 채웠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벽 중앙에 문을 그렸다. 문 옆으로 동그란 손잡이도 그려 넣었다.

 

 조금씩 철이 들자 나는 우리 집이 진짜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비나 피하는 슬레이트 지붕의 단칸방이었는데도 말이다. 월세가 밀리면 어머니는 동네 이곳저곳에 돈을 빌리러 다니는 눈치였다. 하다하다 안 되면 서울에 있는 외갓집으로 가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컴컴한 방 한쪽에서 또다시 종이 위에 집을 그렸다.

 

 단순하던 집이 점점 커지고 화려해졌다. 이제는 기와집이 아니라 붉은 장미 넝쿨 울타리를 가진 벽돌집이 되었다. 하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왼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속에는 꼬리가 화려한 금붕어가 몇 마리 살고 있다. 돌계단을 올라 초인종을 누르면 현관문이 열린다. 천장은 높고 바닥은 깨끗하다. 창문에는 기다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어머니는 하얀 싱크대 앞에서 요리를 하다가 나를 돌아보며 웃으신다. 아버지는 서재에 있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느라 내가 지나치는 것도 모르고 있다. 동생들은 깨끗한 이불을 덮고 방에서 잠들어 있다. 이상하게도 방마다 문이 조금씩 열려 있어서 나는 방의 모습들을 훤히 볼 수 있다.

 

 마침내 나무계단을 올라 다락방 문 앞에 선다. 뾰족한 지붕 아래에 조그만 창이 있는 다락방이 나의 방이다. 그러나 이즈음이 되면 슬퍼진다. 왜냐하면 이제 상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더는 나의 상상을 이어갈 수 없다. 나는 늘 다락방 문 앞에서 망설인다. 내 눈앞으로 까만 어둠이 스치고 나는 연필을 놓는다. 그리고 어둑한 단칸방으로 돌아오면 내 앞에는 어설프게 그려진 종이 위의 집이 놓여 있곤 했다.

 

 결혼을 하고 십 년쯤 지났을 무렵 남편의 퇴직금에다 은행융자를 보태어 조그만 아파트 하나를 샀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에 떠밀려 찾아간 양산의 논바닥에 세워진 오 층짜리 아파트였다. 개발 호재라는 요란한 문구와 간단한 평면도가 실린 광고지를 들고 찾아간 현장은 진흙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진창이었다. 요즘 아이들 말로 영끌을 한 셈이었는데, 삼십 년 가까이 살아도 집값은 오르지 않았다. 묘하게도 개발이라는 그 호재는 유독 우리 집을 비껴갔다. 아파트는 낡았고, 나는 세파에 떠밀린 채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요즘 또다시 집값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제는 입에서 절로 억억 소리가 나온다. 서민인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다. 새 아파트 단지는 마치 땅을 뚫고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 그 여파로 낡은 집들이 헐리고,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집값이 싼 변두리 어딘가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옛날의 나처럼 말이다.

 

 문득 요즘 아이들은 종이 위에 어떤 집을 그릴까 궁금해진다. 빈 종이에다 얼마 되지 않는 통장 잔고 금액을 적어놓고, 자신의 최대 융자금액을 산정해 가산하고, 그래도 반도 넘게 남는 공간에는 혹여 부모님이 얼마나 보태주실 수 있을지 하는 계산을 적지는 않을까. 그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멍하니 백지를 바라보며 펜을 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천천히 빈 종이를 찢어버리지는 않을까.

 

 마뜩찮은 소장의 눈길을 받으며 중개소 사무실을 나선다. 햇살은 여전히 통유리에 붙은 종이 위의 집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 빛나는 집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우리 아이들이 열고 들어갈 문은 보이지 않는다. 문득 강한 햇살 한 줄기가 종이 위의 집을 관통한다. 괜히 눈물이 날듯 눈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