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첫사랑 / 김응숙

희라킴 2021. 3. 24. 18:50

 

                                                   첫사랑 

 

                                                                                      김응숙

 

 모든 일에는 중개자가 있기 마련이다. 눈이 동그랗고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혜경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동네 친구였다. 그녀의 집은 동네 맨 위에 있었는데, 일층짜리 양옥이었지만 대문 입구에 커다란 파초나무가 서 있는 제법 부잣집이었다. 나는 그녀의 공부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가끔씩 그 집을 드나들었다. 파초그늘을 지나며 마주보이는 창문의 노란색 커튼은 언제나 조금 열려 있었다. 그 방은 그녀 오빠의 방이었다.

 

 사업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해외출장이 잦은 모양이었다. 거실 전면을 차지한 장식장에는 각양각색의 양주병이 즐비했다. 그 아래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형에서부터 허리에 풀치마를 두른 토인인형까지 줄을 지어 서있었는데, 세상의 인종은 다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맨 위 칸에는 검은색 표지에 금박으로 ‘톨스토이 全集’이라고 쓰인 10권짜리 책 한 질이 꽂혀있었다. 토요일 오후, 그녀와 내가 거실에서 쫀득이를 씹으며 공부를 하는 척하고 있으면, 그녀의 오빠는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가서 물 한 컵을 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미리 고백하건대 내 관심은 전적으로 그녀의 오빠가 아니라 ‘톨스토이 全集’에 있었다. 마치 검은색 법의를 입은 법관처럼 그 책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공납금을 내지 못해 일 년밖에 중학교를 다니지 못한 나였지만, 다행히도 나는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땅거미가 거실로 스며들 즈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금박의 글자들을 올려다보았다. 내 심장이 이유도 없이 고동쳤다.

 

 중독은 무릇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무렵 나는 활자에 중독되어 있었다. 비분한 마음에 엿장수에게 교과서를 넘기면서도 김칫국물로 얼룩진 삼류 소설책은 얻어왔다. 그 책을 반나절 만에 다 읽은 나는 마치 불가사리처럼 주변의 온갖 활자들을 식독(食讀)하기 시작했다. 묵은 여성지, 뜬금없는 위인전 그리고 주로 오래된 신문들이었다. 휴지용으로 네모나게 자른 신문지 몇 장을 들고, 그 맥락 없이 앞뒤로 빽빽하게 들어앉은 활자들을 읽으며 나는 변소에 오래 앉아 있곤 했다.

 

 ‘톨스토이 全集’을 빌려달라는 내 말에 혜경은 펄쩍 뛰었다. 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책이라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리한 그녀는 이내 그 해법을 찾아냈다. 의자 위에 올라선 그녀는 톨스토이 1권을 뽑아내고, 딱딱한 책의 겉꽂이는 그냥 그대로 감쪽같이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겉으로 보아서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톨스토이를 만나게 되었다.

 

 활자중독에 빠져있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책들을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두껍고 반들거리는 표지와는 달리 속은 퍼석한 모조지에 조악하게 인쇄된 활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전쟁과 평화’의 그 난해한 인물 관계도와 혀가 꼬이는 이름들이 도리어 나를 풀무질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좋았다. 지루하고 딱딱하고 방대한 번역체의 문장들에 몰두하다 보면 그 시간만이라도 세상에서 도려내어진 것 같은 나 자신을 잊을 수가 있었다. 먼지 낀 조그만 들창이 햇살을 어둑하게 여과하는 단칸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톨스토이의 품을 파고들었다.

 

 4권 째인가를 빌려 읽고 있을 때 혜경이 쪽지를 들고 찾아왔다. 다음 권을 가져갈 테니 뒷산 소등바위 앞에서 만나자는 오빠의 전갈이었다. 소 등처럼 생긴 바위에 올라앉아 오빠와 나는 책을 교환했다. 기우는 햇살에 오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안나 카레리나’의 비참한 사랑의 결말을 알아버린 뒤였다. 오빠가 한참이나 어린 동생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빠는 아직 나에게 몇 번 더 톨스토이를 데려와야만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 全集 책들의 마지막마다에는 연혁과 함께 러시아의 전통복장인지 모를 검은 옷을 입고 희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톨스토이가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마지막 권 책장을 덮기 전에 나는 흑백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내가 오랫동안 그의 품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시 고백하건데 톨스토이의 품은 결코 아늑하거나 달콤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웠고, 읽어 갈수록 그 고통의 크기가 커졌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자비한 힘과 권력과 역사에 의해 찢겨지고 짓이겨진 인생이 즐비했다. 인간의 총체적인 고통이 톨스토이를 통해 내게 전이되었다. ‘부활’의 카츄사가 맨발로 눈길에 끌려가는 심상이 떠오르면 격렬한 고통이 달려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깊은 고통을 따라 마치 심연으로 떨어지듯 마음 깊은 곳으로 침잠했다.

 

 세상이 이전의 세상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시큰둥해지고 신문을 읽는 것도 시들해졌다. 삶의 이면에는 결코 떨칠 수 없는 짙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마다의 인생에 드리워져 어른거리는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이 보였다. 세상에서 알록달록한 색들이 사라지고 희거나 검거나 회색의 무채색들이 늘어났다. 그즈음부터 나는 어둠이 스미는 낯선 골목길을 헤매며 홀로 한없이 걷기 시작했다.

 

 혜경을 통해 보낸 몇 번의 쪽지가 외면당하자 오빠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나로서는 톨스토이 全集이 끝났으니 더 이상 그 쪽지에 응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오빠는 현관문을 여는 나를 보더니 냅다 뺨을 때렸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따귀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오빠는 “다시는 너를 만나지 않겠어.” 라며 마치 연극의 대사 같은 말을 뱉고는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용한 셈이니 딱히 변명할 말이 없기는 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제도권에서 소외되어 있던 나는 점점 더 이방인이 되어갔다. 영어와 수학을 배울 시간에 톨스토이를 사랑한 죄는 평생을 따라다녔다. 인생행로조차 여의치 않아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부는 시린 세월을 오랫동안 살았다. 하지만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한 지금도 문득 톨스토이를 떠올리면 나직이 가슴이 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무래도 첫사랑이란 쉬이 잊히지 않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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