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물고기의 시간 김정화

희라킴 2020. 12. 24. 18:18

                                                                 물고기의 시간 

 

                                                                                                                  김정화

 

 목포 바다에 갈치가 터졌다는 소식이다. 태풍이 한차례 바닷물을 뒤집어놓아 물고기들의 이동에 낚시꾼들은 이미 들떠 있다. 밤낚시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거창한 이유야 없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끈들을 잠시나마 벗어 던지고,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에 자신을 풀어놓고 하룻밤쯤 있으면 삶에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기회는 쉽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낚시 동행 광고를 내었지만 태공들은 한결같이 옆에 있으면 조황에 방해가 된다는 대답이었다. 방법은 따로 있었다. 초보도 가능한 낚싯배가 있다는 것이다. 뱃삯만 지불하면 미끼는 물론 낚싯대도 빌려준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낚싯배 신청을 하고도 이런저런 핑곗거리가 생겼고 또 태풍에 미루어졌다가 겨우 나의 시간에 맞추어 출조일을 잡았다.

 

 난생처음 낚시하러 간다니까 주위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밤낚시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기본이고, 살생을 하러 그 먼 바다까지 가느냐, 모름지기 인간이 정직하게 살아야지 미끼로 물고기를 속이면 되겠느냐, 제발 어민들 생각해서 싹쓸이는 하지 마라, 등등. 그러나 실수로 몇 마리 잡아 오면 갈치자반 맛은 꼭 함께 봐야겠다는 엄포도 빠지지 않았다.

 

 선착장의 배들이 집어등에 불을 밝히자 기다렸던 꾼들이 각자의 낚싯배를 찾아 선상에 오른다. 나같이 왕초보들은 가벼운 배낭 하나 달랑 들었지만 강골의 조사들은 잔뜩 채비를 꾸려서 철갑상어라도 잡을 기세인 양 의기가 충천하다. 거센 바닷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동안 너울물이 뱃전을 때리는 통에 바짓가랑이는 물에 젖어 흥건해졌다. 배낚시는 선장의 실력이 반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간다. 초보에게는 실력보다 포인트가 중요하다는 운칠기삼 이론에 번쩍 귀가 열린다. 물돛을 내린 배 한쪽으로 처음 낚시하는 사람은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스무 명의 선객 중에서 절반이 초보이다. 물황을 해도 덜 민망할 것 같은 안도감이 지나간다. 릴대 감는 법과 미끼 끼는 순서와 수심 잡는 요령을 속성으로 터득했다.

 

 갈치의 입맛에 맞게 꽁치 미끼가 한 움큼씩 배당되었다. 미끼를 단 낚싯대를 뱃전에 퐁당 던지는 초짜와 한방에 낚싯대를 멀리 찌르는 고수의 손놀림에서 기 싸움은 벌써 판가름이 났다. 모두 집중하느라 바다가 조용하다. 초릿대 앞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물비늘이 흔들릴 때마다 배가 조금씩 흘러간다. 선미에 자리 잡은 노련한 조사께서 은빛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풀치 몇 마리를 건져 올렸다. 풀치라는 새끼 갈치의 멋진 이름에 감탄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풀처럼 휘어졌다. 갈치는 주로 칼같이 헤엄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도어刀魚, 이웃나라에서는 서 있는 물고리라 부른다는 말도 떠올리며 초릿대의 예신을 기다린다.

 

 두 개씩 배정받은 내 낚싯대는 미동도 없이 그저 평화롭다. 얼음과 조과를 담을 스티로폼 박스까지 구입했는데 진짜 꽝이면 어쩌나. 모름지기 휘영청 보름달 아래 등대 불빛을 받으며 은갈치 몇 마리쯤은 길어 올릴 줄 알았으나 보름 주변에는 갈치 낚시가 신통찮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월명月明 때문에 집어등의 집어 효과가 사라져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같은 주말에는 적벽대전을 방불케 하는 낚시새 출항으로 눈치 빠른 물고기들은 벌써 줄행랑을 치고 말았으리라. 내가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조기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라며 생각나는 새끼 물고기 이름을 읊조리며 힐끗 옆자리를 곁눈질하니 제법 씨알이 굵은 것들을 챔질하고 있다. 역시 글판에서는 글을 잘 써야 하고 춤판에서는 춤을 잘 춰야 하듯이 낚시판에서는 잡은 물고기 수가 실력을 대변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무장이란 이름표를 단 아주머니 한 분이 꾼들의 채비를 챙겨주고, 엉킨 낚시줄도 풀어주고, 미끼도 갈아주며 잡은 조과를 추렴하여 회도 떠 왔다. 배낚시 자리도 명당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명당은 없고 물때에 따라 조과가 다르다는 말만 훅 던진다. 고참 낚시꾼들이 물때표 시간을 줄줄이 꿰고 있는 이유이다. 들물과 날물 때를 알고 사리와 조금 때의 계산 방법을 터득하고 달이 차고 기우는 시기를 가늠해야 물고기의 시간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그제야 숙련된 조사는 사람의 시간에 맞추지 아니하고 물고기의 시간에 맞춰 출조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이곳 선장도 물고기가 잘 때 잠을 자고 물고기가 깰 때 함께 일어나니 낮에는 절대 전화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우럭이 시간이 다르고 쭈꾸미의 시간이 다르며 갈치의 시간이 다르단다. 날짜와 요일과 계절로 묶어놓은 인간의 시간은 불변하지만, 물의 온도와 바람의 세기와 물결의 흐름에 따라 물고기의 시간은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한다. 물고기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시간에 맞춰 낚싯대를 들었으니 어리바리한 낚시꾼은 물고기가 먼저 피해가는 법. 그것도 모자라 까닥까닥 초릿대까지 흔들어 보란 듯이 미끼만 따먹고 도망친다.

 

 놓친 물고기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놓친 기회, 놓친 말, 놓친 인연들…. 지난 것은 모두 흘러가버렸다. 물고기의 사랑은 인간과 어떻게 다를까. 저들도 사랑을 하고 배신을 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할까. 저들만의 옛 노래를 부르며 슬퍼할까.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꿀까.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한다는 물고기도 있으니 머리 나쁜 척 인간을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한 장주는 물고기의 슬픔까지 마음으로 통할까. 이런저런 상념이 꼬리를 무는 동안 자정을 훌쩍 넘겼다.

 

 이때 느닷없이 초릿대가 확 휘어졌다. "왔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난생처음으로 물고기의 시간을 읽어내는 순간이다. 퍼드득, 은빛 지느러미 길게 허공에서 빛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당가의 집 / 김응숙  (0) 2021.07.18
첫사랑 / 김응숙  (0) 2021.03.24
몸짓 / 김응숙  (0) 2020.12.12
11월은 빈 몸으로 서다 / 이혜연  (0) 2020.11.14
위로 / 이혜연  (0) 202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