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호박수제비 / 장미숙

희라킴 2020. 8. 8. 19:08

                                                                               호박수제비 

 

                                                                                                                                                            장미숙

 

  마을회관을 지나자, 어디선가 푸른 종소리가 들려온다. 주위는 온통 참깨 밭, 마을 길옆으로 넓은 참깨 밭이 펼쳐져 있다. 긴 종처럼 생긴 꽃 주위를 벌들이 웅성웅성 맴돈다. 벌이 꽃을 건드릴 때마다 ‘차랑차랑’ 종소리가 난다. 식물의 언어를 터득해야 들을 수 있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참깨 밭을 지나 고샅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정적을 깨는 송아지 울음소리가 정답다. 바야흐로 나무의 잎이 가장 짙은 계절, 여름은 시골 골목에도 꽉 들어차 있다.

 

 고향 집 감나무 이파리에 햇빛이 폭포처럼 부서져 내린다. 평상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감나무는 고향 집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평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의 등이 앞뒤로 흔들린다. 콩에 섞인 쭉정이를 고르고 있었는지 소쿠리 두 개가 놓여있다. 감나무와 하나가 된 엄마의 모습은 어릴 적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나는 외로움을 그림자처럼 끼고 살던 아이였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병원에 계셨고, 언니들은 도시로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빈곤한 살림은 엄마를 쉬지 못 하게 했다. 가난하다는 건, 배고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외로움을 잉태했다. 그 기분에 갇혀버리면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였다. 가난은 가족의 동그란 웃음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기다림이란 숙제를 던져주었다.

 

 어린 시절은 기다림의 날들이었다. 햇빛과 바람만이 가득 찬 집에서 나는 하염없이 뭔가를,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가버린 엄마를 기다렸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렸다. 동이 트기 전에 나간 엄마는 노을이 마당을 기웃거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 배가 고프면 물을 마셨다. 장독대 옆에 쪼그려 앉아 채송화 꽃씨를 터트리다가, 흙 마당에 엄마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여름의 하루는 하늘을 받치고 있는 바지랑대만큼이나 길었다.

 

 감나무 아래 평상은 내가 만날 수 있는 동경의 세계였다. 평상에 누워 동화책을 펼치면 주인공들이 살아나 집을 짓고 꽃밭을 가꾸었다. 신기한 새가 노래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과일나무가 쑥쑥 자랐다. 동화책 주인공들은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푹신한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었다. 그들과 놀다 보면 중천에 떠 있던 해가 감색 노을의 집으로 달음박질을 치곤했다.

 

 책에 침이 흥건할 때쯤 잠에서 깨어보면 감나무에 받쳐져 있는 지게가 보였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다 나는 감나무 이파리들과 눈을 맞추곤 했다. 엄마가 그때 닦은 게 땀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 배고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는 채 씻지도 못한 채 서둘러 밥을 지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에게서 나는 땀 냄새가 좋았다. 엄마의 발걸음 소리는 집안에 깃든 외로움을 단숨에 몰아냈다. 진귀한 음식이 차려진 동화책 속의 밥상이 아닌, 엄마의 단출한 밥상이 감나무 아래 차려졌다. 조물조물 된장으로 무친 나물과 감자 넣고 끓인 된장국에 코를 박았다. 감나무도 참견하느라 소란스러웠다. 나무는 나날이 잎을 키웠다. 하지만 햇볕도 나날이 사나워졌다. 한여름 마당은 열기로 후끈했다. 그나마 평상에 앉아 있으면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어느 해, 여름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아침부터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는 거로 봐서 마당 솥뚜껑도 달아올랐을 게 뻔했다. 더위가 심해 엄마는 일하러 나가지 못했다. 대신 밀가루 배급을 받으러 면에 간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는 밀가루를 받아왔다. 우리는 생활보호대상자였고 밀가루는 양식이었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엄마가 동구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을 마셔도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감나무 이파리도 지쳤는지 혀를 빼고 늘어졌다.

 

 평상 위에서 얼마나 굴렀는지 모른다. 밀가루를 받아오면 호박 넣고 수제비를 끓여 준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옆집 개만 줄기차게 짖어댔다. 흘러내리는 땀을 스무 번은 닦았을까. 저 멀리 이글대는 햇볕 속에 엄마가 오고 있었다. 머리에 밀가루 포대를 인 엄마가 휘청거렸다. 현기증 때문에 평상에 엎드렸다. 그때 나는 알았다. 가난은 외로움뿐 아니라 슬픔까지 데리고 다닌다는 것을.

 

 집에 도착한 엄마 얼굴은 불덩이처럼 발갰다. 엄마가 신은 고무신도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밀가루 포대를 내려놓고 엄마는 평상에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우리 모습을 내려다보던 감나무가 바람을 일으켰다. 엄마는 기운을 차리고 애호박 넣은 수제비를 끓여주었다. 호박수제비는 그해 여름 우리에게 한줄기 기운을 허락했다.

 

 세월과 함께 감나무도 늙어갔다. 주렁주렁 달던 감도 줄어들고 가지가 부러진 곳도 생겼다. 나는 엄마 곁을 떠났고 엄마는 자꾸 키가 작아졌다. 기다림은 이제 엄마 몫이 되었다. 감나무 옆에 서서 엄마는 자식들을 기다렸다. 자식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감나무를 벗 삼아 노년의 외로움에 익숙해져 갔다.

 

 고향 집도 사람처럼 늙어 가는가. 담벼락이 조금씩 허물어진다. 감나무도 기운을 잃어간다. 한때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나무의 생이 저무는 모양이다. 감나무가 여윈 팔을 뻗어 엄마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엄마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나는 가만히 평상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어릴 적 그때처럼 동화 속 주인공들의 신비한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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