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추임새 / 김순경

희라킴 2020. 7. 27. 18:30

                                                                        추임새 

 

                                                                                                                                                                                            김순경

 

 추임새 같은 맞장구가 큰 힘이 된다. 훈계나 훈시보다는 조용히 들어주고 가끔 고개만 끄덕거려도 좋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은 격려나 치유보다 상처 줄 때가 많다. 힘들 때 단점을 찾아내고 가르치기보다는 서로 추어주는 칭찬이 절실하다.

 

 대학생 때 처음 판소리공연을 보았다. 소리꾼은 무대에 나오자마자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추임새를 아느냐고 물었다. 남도소리를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관객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아니리와 창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를 때라 알 턱이 없었다. 설사 안다 해도 직접 공연을 본 적이 없어 섣불리 알은체할 수도 없었다. 머뭇거리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판소리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추임새 넣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창을 할 때 흥을 돋우는 소리다. 청중의 분위기나 감흥을 자극하여 소리판을 어울리게 하고 창을 잘하도록 도와준다. 소리꾼이 창을 하거나 아니리를 할 때 좋지, 얼씨구, 으이, 아먼, 얼쑤 같은 탄성과 감탄사로 고수가 상대역을 맡는다. 사설에 맞는 짧고 굵은 감탄과 길고 가는 탄식으로 관객들이 소리에 몰입하게 하고, 때로는 북장단을 잠시 멈추고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추임새다.

 

 하지만 고수의 전유물은 아니다. 사설 내용과 장단을 정확히 꿰뚫고 있지만, 청중들만큼 소리판의 흥을 돋우지는 못한다. 관객의 추임새는 북 반주만 없을 뿐 고수와 다르지 않다. 소리를 공감하고 느끼는 감정의 표현이라 쉬운 것은 아니다. 먼저 판소리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감동해야 한탄과 고함이 터져 나온다. 소리 마당에서는 결코 홀로 명창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추임새를 잘 넣는 사람을 귀명창이라 대접해준다.

 

 쥘부채를 든 소리꾼이 자세를 잡는다. 정적을 깨는 북재비의 북 다스름이 소리를 물고 나온다. 고수는 장단을 맞추면서도 소리하는 사람의 입과 발림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청이 점점 올라가고 장단이 빨라지자 북채를 잡은 어깨는 물론이고 온몸이 들썩거린다. 소리가 무르익자 맺는 마디에 들어가야 할 추임새가 새도 때도 없이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유명한 소리꾼은 전속 고수를 둔다. 분신처럼 붙어 다니거나 몇 사람을 정해놓고 사설에 맞는 고수를 택하기도 한다. 같은 북재비라도 좋아하는 장단이 있고 고법이 달라 소리의 맛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완창으로 유명한 어느 명창은 평생을 한 고소와 전국을 돌며 공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눈빛만 봐도 알 정도가 되면 재담까지 주고받으며 공연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북과 소리가 서로 안아주고 놓아주면서 적당히 밀고 당겨야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가 있다.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장단을 맞추기도 하고 잠시 고수와 장단을 맞춰보고 무대에 오른다.

 

 얼마 전, 판소리 심청가 공연을 보러 갔다. 다섯 마당 중 가장 애절하고 슬픈 대목이 많아 골계미가 적다는 평을 듣는다. 사설과 성음은 물론이고 양념 같은 시김새를 조금씩 달리하는 명창의 더늠을 듣고 있으면 완전히 다른 노래로 들린다. 사설과 발림도 좋지만, 노련한 고수의 추임새와 북장단이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소리가 자리를 잡아가자 객석에서 추임새가 터져 나온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가는 애절한 계면조에서는 곳곳에서 훌쩍거리더니 휘모리장단처럼 몰아붙이는 빠른 자진모리장단의 눈 뜨는 대목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추임새는 추어준다는 말로 칭찬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꾸중보다는 칭찬이 낫지만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이유없이 칭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가 못해 아부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나치면 추하게 보인다. 칭찬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하지만, 때와 장소에 맞아야 제맛이 난다. 틀에 박힌 말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진심이 중요하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 속에 인사만 나누어도 단비 같은 사람이 있고, 무슨 말을 해도 반갑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겉치레 인사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들릴 뿐이다. 부드러운 농담도 누가 언제 하느냐에 따라 비수처럼 가슴을 찌를 때도 있다. 어렵고 힘들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물먹은 풀잎처럼 생기를 되찾게 해준다.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인생이 바뀐 경우는 허다하다.

 

 대부분 저 잘난 맛에 산다. 어디를 가도 제 주장만 하는 사람이 많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보다는 무턱대고 무엇이든 가르치려 든다.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드는 부류도 있다. 가는 곳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넘쳐난다. 돌아서면 후회할 줄 알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세상인심이 흉흉하고 살기 힘들면 가까이 있는 사람도 믿지 못할 때가 많다.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추임새가 필요할 때다. 칭찬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이 가장 즐겁고 신명 난다.

 

 칭찬은 내용만큼 시기가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드는 격이 된다. 말이 너무 앞서거나 뒤서면 하지 않음만 못하고 억지로 만들거나 지나치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상대의 아픈 곳이나 고민거리를 잘 파악하고 정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치료한답시고 섣불리 손대면 상처가 덧나듯이 적당히 숙성되었을 때가 가장 좋다. 추임새가 반드시 소리를 살리고 흥을 돋우는 것은 아니다. 소리의 맥을 잘못 짚으면 소리를 방해하고 판을 망치기도 한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다. 생각지도 못한 역경과 고난이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 파고든다. 삶이 복잡하고 인심이 팍팍할수록 기를 돋워주는 추임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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