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별 / 문 정

희라킴 2020. 7. 7. 19:01

                                                                              별 

 

                                                                                                                                                              문 정                                           

        

 별빛을 따라 고흐가 걸어온다. 귀를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있다.

 “귀는 왜 다치셨어요?”

 “내가 잘랐어.”

 “잘랐다고요? 왜요?”

 “엄마가 그리워서…….”

 “엄마가 안 계세요?”

 “응,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셨어.”

 

 얼굴을 감싼 붕대가 그의 슬픔만큼 커보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뜨겁다.

 “저도 엄마가 안 계셔요. 제가 두 살 때 멀리 멀리 가버렸대요.”

 “저런 저런. 슬프겠구나. 그럼 아저씨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줄까?”

 “네, 가르쳐주세요.”

 “별을 크게 그려봐. 아주 크게. 그럼 엄마가 나타날 거야.”

 “정말요?”

 “응, 누군가 그리울 땐 별을 아주 크게 그리면 돼.”

 

 고흐 아저씨는 어디로 가버리고 곤하게 아침잠에 빠져 있는 장면으로 바뀐다. 누군가가 볼에 뽀뽀를 한다. ‘아! 이 냄새는 엄마 냄새.’ 향긋한 엄마의 향기가 잠결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힌다.

 “정아야! 벌써 7시야. 오늘 또 지각하면 이번엔 대청소 당번에 걸릴 거 잖아?”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후다닥 일어났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달려 나온다.

 “도시락 가지고 가야지.”

 엄마의 손에서 얼른 도시락을 받아 책가방 속에 쑤셔 넣고 전속력으로 달린다. 엄마는 차 조심하라고 연신 외치고, 매미들은 합창으로 ‘지∼각 지∼각’ 세게 울어댄다.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택배기사가 물건 배달을 온 모양이다. 물건을 받아 거실 바닥에 놓고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다. 꿈속처럼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소파 위에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아직 오수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뒹굴어져 있다.

 “엄마아!”

 나즈막히 한 번 불러본다. 코끝이 아려온다. 거실 여기저기서 엄마의 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엄마가 방금 다녀간 듯 곳곳에 남아있는 여운들.

 ‘아직도 엄마를 생각하고 있구나. 어렸을 적 엄마를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내 가슴에서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유년 시절은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거리가 거의 없다. 온기 없는 학교생활은 무채색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까스로 보낸 학창시절의 아픈 흔적들. 세월이 지나 이젠 딱지가 되고도 남았을 법한데, 퇴색되었던 흔적들이 새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다시 펼쳐본다. ‘해바라기’는 붓의 터치감이 강렬하다.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삶에 대한 열정이 한창일 때 그렸던 그림이다. 다음 장을 넘기니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렸던 「별이 빛나는 밤」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캄캄한 밤하늘에 그려진 별은 다소 과장되고 거칠다. 별이 이글이글 타는 듯하다. 다가서면 멀어지는 것이 비단 별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떠안기엔 너무나 버거웠던 외로움의 잔해들. 그 곳에서 그는 수많은 별을 떨어뜨리고 큰 별 하나를 남겨놓았을 것이다. 우주의 거리만큼 멀어진 하늘에 그려 놓았던 마지막 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공간에서 무한한 유영을 꿈꾸었을 그는 찬란한 외로움을 그려 넣었을 것이다.

 

​ 또 다음 장을 펼치니 흰 붕대로 칭칭 동여맨 자화상이 나타난다. 내 뼈마디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몸은 석고처럼 거실바닥에 붙어버린다. 잠시 가둬놓았던 외로운 세포들이 하나 둘 빗장을 연다. 그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귀 한 쪽을 잘라냈을까.

 

 고흐의 상처를 싸맸던 붕대가 되살아난 나의 유년의 흔적들을 함께 동여매준다. 그가 유난히 크게 그렸던 별. 그 아픈 별이 나를 바라본다.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 위로 엄마의 별이 유성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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