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그림자 / 김응숙

희라킴 2020. 6. 25. 18:41

                                                                                                 그림자

 

                                                                                                                                                          김응숙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낙서를 하는 내 작은 그림자를 큰 그림자가 다가와 덮는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짧은 머리에 점퍼를 입은 그 아저씨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에 드리운 큰 그림자는 마치 검은 바위 같다. 나는 바위에 갇힌 채 꼼작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다.

 

 “꼬마야, 뭐하니? 그림 그리니?”

 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인다. 큰 그림자기 움직이더니 아저씨가 내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내 작은 그림자가 아저씨의 신발 아래로 깔린다. 눈을 마주 보지 않았는데도 그의 눈빛이 나를 꿰뚫을 것만 같다. 나뭇가지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제 아저씨는 아버지의 행방을 물을 것이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애야, 아버지는 잘 계시니? 요즘 어디 멀리 다녀오신 적은 없고?”

 살다보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개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직관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고, 대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출생의 비밀이라든가, 숨겨야만 하는 과거 같은 것들이다. 직관은 드러내지 못하는 그 두꺼운 장막을 뚫고 섬광같이 내달려 사실의 전모를 밝힌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는 감지가 된다.

 

 내가 대답이 없자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낸다. 말간 비닐에 싸인 왕사탕이다. 갑자기 입안이 바짝 마른다. 나는 저 사탕을 받고 싶지 않다. 물론 먹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내 손에는 왕사탕이 쥐어져 있다. 아저씨가 다시 한 번 나를 뚫을 듯이 바라본다.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머릿속이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흐트러진다.

 

 “아니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정말? 아버지가 집을 비우신 적이 없어?”

 “예.”

 잠시 말이 없던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누그러뜨리더니 일어선다. 그의 큰 그림자가 우리 집 마당 안쪽으로 길게 늘어난다. 나도 따라 일어선다. 아저씨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왕사탕 하나를 더 내 손에 쥐어준다.

 “고맙습니다. ”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한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빨리 이 아저씨가 가줬으면 좋겠다. 어서 이 큰 그림자가 우리 집 마당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동네사람들은 동사무소에 신고를 할 일이 있거나 편지를 쓸 일이 있으면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각종 신고서와 흰 편지지에 멋진 펜글씨로 이들의 사연을 적어주었다. 가끔씩 보건소에서 나온 사람들도 아버지를 찾았다. 홍역이 도는 이른 봄철이 되면 아버지는 보건소 사람들이 맡긴 약병을 따고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그럴 때면 엄마가 간호사처럼 아버지를 도왔다. 키가 크고 인물이 좋은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에게 ‘김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매일 신문을 읽고 이런저런 동네일에 곧잘 심판관 역할도 했다.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빚쟁이들도 있었다. 크고 작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였다. 눈을 씻고 봐도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은 줄기차게 찾아왔다. 누군들 자신의 돈이 뼈아프지 않으랴. 그것은 아버지가 짊어져야할 마땅한 고통이었으나 나는 그들이 찾아오면 슬그머니 집을 나왔다. 강둑을 찾아 키를 넘는 갈대숲에 들어앉아 핏빛 노을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기러기 떼가 꾸룩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저무는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이 아저씨는 그 어떤 부류에도 속해 있지 않다. 무엇을 요청하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기적으로 우리 집을 순회하고 어린 나에게 다가와 아버지의 최근 행적을 물을 뿐이다.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도 아버지의 감시자가 되는 것만 같다. 내가 줄곧 아저씨를 만나왔다는 것을 아버지는 아실까. 세상이 빙글 한 바퀴 돈다. 나는 질끈 눈을 감는다.

 

 태양이 비추는 사물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해방이 되고 우리나라가 좌우의 이데올로기로 들끓을 때 아버지의 나이는 약관 열여덟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대대로 지녀온 가산을 탕진하고 첩의 집에 들어앉은 할아버지와 모진 지병을 앓는 할머니가 있었다. 뜨거운 혈기는 좌로 기울었다. 불과 일 년 남짓의 그 과오가 아버지에게는 평생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로 남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이름마저도 아버지에게서 그 그림자를 지우지는 못했다.

 

 아저씨가 좌우를 한번 돌아보더니 문도 없는 대문을 나선다. 긴 그림자가 아저씨를 따라 멀어진다. 나는 땀이 흥건한 손으로 여전히 사탕을 움켜쥐고 있다. 이 사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쥐고 있는 것 같다.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식구 중 누구도 아저씨와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동생들에게 줄 수도 없다. 사탕은 사탕일 뿐이지만 이 사탕을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아버지를 배신하는 자식들이 되는 것이다.

 

 마치 치명적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쥐고 있는 것처럼 나는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그날따라 집안은 고요하다. 아버지는 일을 찾아 대구에 가셨고 엄마는 동생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셨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탕만 잘 처리하면 그림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손에 든 나뭇가지로 마당가 사철나무 밑을 파기 시작한다. 어제 비가 온 탓으로 쉽게 파인다. 작은 구덩이에 사탕을 넣고 흙으로 덮은 후 표가 나지 않게 마른 잎사귀 몇 개를 올려놓는다. 이제 이곳에 이 사탕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탕을 묻고 일어서는데 사철나무 밑으로 내 작은 그림자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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