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쇠똥구리 / 김애자

희라킴 2020. 6. 12. 19:00

 

                                                                                            쇠똥구리 

 

                                                                                                                                                        김애자

 

 굴리고 또 굴린다. 작은 덩어리를 크게 불리려면 쉴 수가 없다. 손톱만 한 몸뚱이에 철갑옷을 두르고 머리통을 찍어 붙인 까만 눈은 온종일 남의 배설물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억센 팔다리로 쇠똥더미를 점령한 녀석은 쇠똥에 주둥이를 처박고 이리저리 헤집으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피 한 방울 침 한 모금 섞어 앞다리 갈퀴와 뒷다리 톱니로 조물조물 뭉쳐 종자 씨를 만든다.

 

 빈 하루가 등짝에 업힌다. 샛별을 지고 나선 가장의 어깨에 하루 치 짐이 천형처럼 누른다. 쭈그러진 자루를 부풀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비틀어진 골목길을 잽싸게 달린다. 먹고 자고 새끼 쳐 키울 둥지라도 마련하려면 퍼질러진 똥 더미의 잔해를 헤집는 것쯤은 각오한 일이 아니던가.

 

 쇠똥구리가 눈을 반짝인다. 녀석은 화등잔만큼 커진 경단을 자근자근 밟다가 다리를 꼬아 깨끼춤을 춘다. 이만하면 하루 치 양식은 충분하다. 모난 곳을 다듬으면 따뜻한 알이 되고 주먹밥이 되고 집이 된다. 기다리는 처자식을 생각하며 뒷다리에 힘을 준다. 제 몸보다 몇 배 커진 덩어리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는다. 진흙탕을 질척거리며 악을 쓰고 달려도 길은 멀기만 하다. 끌고 갈 수도 들고 갈 수도 없는 길을 온몸으로 껴안고 바위와 흙길을 굴러가다 보면 날이 저물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을까.

 

 발바닥에 소금 꽃이 핀다. 조금이라도 더 불리려면 힘에 부치는 일도 마다 않는다. 운 좋은 날은 꿈속 같은 꽃밭을 만난다. 우리 부엌살림보다 새것들이 고물 더미에 있을 때는 발끝이 저절로 올라간다. 쓸모없다고 버린 암팡진 장독은 장아찌 담기에 안성맞춤이고, 멀쩡한 옷가지들은 조각내어 재단하면 쓸 만한 것이 될 게다. 어둠이 골목 길을 누빌 때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모으니 제법 많다. 불로소득이다. 숨 가쁜 살림에서 이만하면 횡재한 것 아닌가.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무거워진 경단 덩어리 굴리기도 벅차다. 허리가 휘청거리고 땀이 범벅이다. 치열한 숲속 삶에서 제 식솔들 건사하려면 이 정도 고생쯤은 괜찮다. 흘러내리는 땀방울 쓱 닦는 동안 덩치 큰 놈이 달려들어 종일 굴려 만든 쇠똥 덩어리 낚아챈다. 땀 값 찾겠다고 허우적거리다 팔은 부러지고 다리는 비틀려 너덜거린다.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쥔 건 싸우다 남은 조각 몇 개뿐이다.

 

 종잣돈을 부풀리려고 밤잠을 설쳤다. 너무 작아 아무리 굴려도 불어나는 게 보이지 않는다. 길고 지루하다. 이면지를 아껴 쓰며 중고 가게를 뒤져 쓸 만한 것들을 챙겼다. 부처님도 해져 버린 천을 꿰맨 분소의糞掃衣을 입으셨다 하는데 커가는 아이들의 옷에 덧감을 붙이거나 얻어 입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식구들이 한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 키운 덩어리는 조금씩 무게를 더한다. 믿을 만한 금융에 맡겼다. 꿈꾸던 집을 그리며 굴린 만큼 불어나는 재미를 만끽할 즈음이다. 청천벽력이 이런 것인가. 부도난 통장은 아무리 만져도 제 모습을 찾지 못한다. 젊음도 꿈도 몸도 토막이 났다. 조각난 꿈의 파편을 쥐고 우린 한참을 헛발짓만 해댔다.

 

 어금니를 물고 다시 쇠똥을 굴린다. 녀석은 경단 뭉치가 작거나 크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둥글둥글 굴려 만든 집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려면 제대로 굴려 만들어야 한다. 언덕이나 웅덩이 같은 함정을 만나 구르고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조물주가 쭈글쭈글한 껍질에 입김을 불어 넣지 않았던가. 남의 똥 속에 알 낳고 사는 것도 하늘이 정해준 게다. 지구 땅만큼 큰 쇠똥을 굴릴 때면 하늘의 해도 콩알만 하게 보이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며 힘자랑을 한다.

 

 주어진 삶이다. 반백 년이 넘도록 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의 채찍을 맞으며 귀 막고 눈 감아 궁굴리는 일에 전심을 다했다. 땅에 붙어살면서 껑충 뛰어오르기 위해 밤을 지새웠고, 내리막길을 만날 땐 실린 짐의 가속도 때문에 질주했다. 큰 힘에 깔려 숨 고를 시간 없이 곤두박질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도 맘을 다잡았다.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고 우리 힘으로 꿈을 불리리라. 모으고 굴리는 일에 이력이 붙는다. 힘들고 아픈 불편함을 투자하면서 조금씩 튼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 새삼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의 몸에 익혀진 절약의 습관은 평생을 갈 것이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의 열매다.

 

 하필이면 남의 배설물 속에서 평생을 산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굴리다 똥 더미에 깔려 죽을지언정 밥만 축내며 탐욕의 덩어리만 불려 세상을 더럽히는 것보다 귀하고 값진 삶이지 않은가. 뒷주머니에 감춰둔 부정의 구린내를 풍기며 개똥밭에 살면서 소똥밭에 산다고 비웃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삼복더위에 발바닥이 상할지라도 주어진 삶 굴리고 굴려 달을 만들고 지구를 만들고 동그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 제 몫을 다하는 미물에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물어보라고 쇠똥구리를 만들어 두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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