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봄동 / 정성화

희라킴 2020. 6. 16. 18:45

                                                                                                       봄동

 

                                                                                                                                                           정성화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은 재래시장 안에 있었다. 우리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세 들어 살던 아저씨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우리 집 바로 앞에서 그릇을 팔았다. 평소 말이 없던 아저씨가 그릇을 팔 때면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한쪽 발을 굴러가며 박수를 치거나 노랫가락을 흥얼거렸고 때로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객쩍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장사를 하면 그렇게 신이 나는지 궁금했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두고 어른들은 '촌놈 생일'이라고 했다. 다들 자신의 생일을 맞은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반가움에 서로 손을 맞잡고 그동안의 밀린 안부를 묻는 사람들 뒤에서는 국밥집의 가마솥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리가 묶인 채 날개를 퍼덕이던 장닭, 기름기가 반들반들하던 부침개, 요란하게 북을 치며 사람을 불러 모으던 약장수 등, 장터는 온종일 흥겹고 시끌벅적했다.

 

 어릴 때 살았던 곳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한다. 그곳에 대한 기억은 갑골문자처럼 뼈에 새겨지는 걸까. 세월이 흘러도 그곳의 정경이 그대로 떠오른다. 내가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재래시장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겠다. 요즘도 낯선 곳에 가게 되면 그곳의 재래시장을 한 곳이라도 들러 보려고 애쓴다. 그곳 사람들의 말투와 사투리, 그곳의 특산물, 그 사람들이 즐겨먹는 것을 아는 데 재래시장만 한 곳이 없다. 옥신각신 흥정도 하지만 곧 서로 고맙다는 인사로 마무리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어느새 훈훈해진다.

 

 사는 게 시들하게 느껴질 때도 재래시장에 간다. 시장으로 통하는 길 양편에는 대략 나이 육십을 넘긴 노모들이 좌판을 펼치고 있다. 손등에 거뭇거뭇 검버섯이 핀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고개를 숙인 채 쪽파를 다듬거나 더덕을 까고, 수북한 나물 더미에서 시든 잎을 골라낸다. 좌판의 폭은 겨우 라면 박스 한 장 정도. 그 바쁜 손들을 보고 있으면 져쳐 있던 내 마음이 팽팽해진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시장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 틈을 타 노모들은 이런저런 가정사나 지난밤에 본 연속극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간간이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좌판마다 '두견새 우는 사연'이 한두 가지 있을 법도 한데, 그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좋은 물건 있을 때 사가시라."며 권하는 목소리도 짱짱하다.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 지인이 푸념조로, 자신의 시어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시장에 나가 채소 파는 일을 그만 두지 않는다고 했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조금씩 들고 나가 팔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게 왜 속상하냐고 물으니, "창피하잖아요!"라고 했다. 칠십 대 시어머니의 고생이 안쓰러운 게 아니라 누가 알까봐 겁난다는 것이다. 아들 며느리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당당히 살아보려는 마음에, 자식이 오는 날만 기다리기보다는 시장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적함을 달래려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왜 헤아리지 못하는지.

 

 찬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좌판을 지키는 노점상을 보면서 나는 '봄동'을 연상한다. 봄동은 노지에서 한겨울을 나는 배추다. 겉잎이 속잎을 감싸지 않으니 속이 차지 않는다. 그래도 일반 배추보다 단맛이 더 나고 고소하다. 방사형으로 퍼져 나온 잎들은 각자도생하듯 스스로 뻗어 나간다. 신통하게도 잎 하나하나가 신권 지폐처럼 빳빳하다. 자식에게 기대지 않으려는 노모의 마음처럼 말이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둘둘 감았지만 노모의 두 손은 추위와 고된 작업 때문인지 시퍼러죽죽하다. 그런데 나물을 사면 꼭 덤을 준다. 그러지 마시라 해도 내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끌어당겨 한 줌 더 넣는다. 그냥 보내고 나면 당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추위를 견디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마음이 더 따뜻한 것 같다. 오랫동안 김밥 장사를 해서 번 돈 일억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써달라며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가 있고, 풀빵을 구워 팔면서도 오백 원짜리 동전을 가득 채운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와 면사무소에 기탁한 아주머니도 있다.

 

 시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었다. 좌판의 노모들은 일제히 몸을 수그리며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들은 쓰러지지 않는 '봄동'이었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 문 정  (0) 2020.07.07
그림자 / 김응숙  (0) 2020.06.25
쇠똥구리 / 김애자  (0) 2020.06.12
두부야 미안해 / 김만년  (0) 2020.06.12
완행열차 / 김순경  (0)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