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내
김영희
치킨 가게를 들어설 때 주인의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비만의 정도가 심하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어 남자로 착각했다. 다만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두드러진 가슴뿐이었다.
나는 주문을 해 놓고 순서를 기다렸다. 치킨 가게는 주말이어서 생기가 돌았다. 주인의 표정도 그러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춤을 질끈 묶어서 주인의 몸피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잡티가 많았다. 윤기 없는 두꺼운 입술은 여자로서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큰 키는 몸집이 시각적으로 더 크게 보였다.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여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중성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돌싱이라며 이웃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켜 놓은 TV에 눈이 갔다. '전국노래자랑' 시간이었다. TV에는 중년의 여자가 '물방울 넥타이를 한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치킨을 기름 솥에 넣고 노래를 같이 불렀다. 흥에 겨운 그녀는 스텝을 밟으며 몸을 흔들었다. 오늘 무척 신나는 일이 있는지 아니면 휴일이라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TV보다 그녀의 몸짓과 노래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나에게 저런 노래를 한 곡 불러 주며 빈말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
그녀는 사랑을 원하는 여자였다. 방송이 끝나고 화장품 광고에 눈을 고정시킨 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분내를 물씬 풍기는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보며 기억 저편 지난 시절이 분내의 향기처럼 코끝을 스친다.
시골에 살던 이모는 살림이 어려워 도시로 이사를 왔다. 이모부는 가족들과 이삿짐 보따리만 덩그러니 우리 집 옆에 내려놓았다. 이사를 왔지만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가 녹록하지 않아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던 이모부는 겨울 한 철 장사인 젓갈 도매를 해 보겠다며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곧 오겠다던 이모부는 반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엄마는 이모부가 처자식 건사도 하지 않고 고향에서 무위도식한다며 못마땅해했다. 시간이 지나니 이모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한숨이 늘어 갔다. 때론 밤이면 하늘을 쳐다보며 소원을 풀어 놓는지 합장한 두 손에는 경건함이 묻어났다. 언제나 합장한 손은 이모부가 있는 남쪽을 향해 있었다.
이모부는 애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 게으른 성격 탓인지 힘든 농사일을 싫어했다. 어쩌다 일거리가 있어도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한 발 물러나 꽁무니를 빼곤 했다. 무슨 일이든 결과물이 없었다. 이모부가 감감무소식이니 도시 생활이 낯선 이모는 궁여지책으로 남의 집 빨래며 청소를 해 주며 근근이 살림을 이어 나갔다. 생활이 궁핍하니 이모의 외모는 말이 아니었다.
이모는 자매들과는 다른 독특한 외모였다. 길쭉한 얼굴은 몸이 야위어 더욱 길어 보였으며 높은 코에 홀쭉한 볼살은 누가 보아도 예쁜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큰 키에 구부정한 어깨는 고민이 쌓인 얼굴을 두드러지게 했다. 살아가는 데 아무런 재미도 희망도 없는 무미건조한 나날이었다. 하루하루를 먹고살기가 바빠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이모는 중성으로 보였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 오니 이모가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와 엄마 화장품을 찾았다. 웬일인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거울 앞에 바투 앉은 모습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추어진 이모의 얼굴은 생경스러웠다. 이모도 오랜만에 자신의 모습을 보니 어색했던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멋쟁이였었는데 삶의 세파에 찌든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음식 장만에 분주했다. 모처럼 쇠고기 국을 끓이는 맛있는 냄새가 콧등을 간질거렸다. 오늘은 집에 특별한 손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오늘 누가 오시느냐고 물었다. 이모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홍조까지 띠며 이모부가 온다고 했다. 행복에 젖어 흥분된 이모의 얼굴은 어느 날보다 예뻐 보였다.
이모는 기초화장품을 꼼꼼히 바르고 엄마가 평소에 아끼는 크림을 듬뿍 발랐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한올 한올 펜슬로 그림을 그리듯 정성을 기울였다. 얼마 남지 않은 립스틱은 새끼손가락에 묻혀 입술을 선홍색으로 덧입혔다. 마지막으로 뽀오얀 분첩을 꺼내 콤팩트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환하게 마무리했다. 이모는 화장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 있게 나를 보며 웃었다. 감미로운 분내의 잔향이 안방에 퍼지며 이모가 여자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분내는 엄마의 냄새였지만 이모의 분내는 여자의 냄새로 아련한 그리움처럼 내 가슴에 들어왔다.
치킨 가게를 지나치며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 보았던 얼굴이 아니다. 화장품 광고를 유심히 보더니 오늘은 화장을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 콤팩트를 꺼내 한 번 더 얼굴에 덧바른다. 꽃무늬 치마를 입고 머리에 핀을 꽂은 모습이 여성스럽다. 오늘은 웬일인지 손님이 가게로 들어서니 나긋나긋한 눈웃음과 정겨운 인사로 맞이한다. 행인이 지나다니는 골목에까지 옅은 분내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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