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창 / 김이랑

희라킴 2020. 1. 7. 19:52

김이랑  그놈 참 똑똑하다. 아무 때나 손가락만 까딱하면 바깥세상을 내다보고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찾는다.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널리 나를 알릴 수도 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 부리는 요술은 상상을 넘어선다.

 옛집에도 조그마한 창이 있었다. 창호지를 손바닥만큼 뜯어내고 유리를 붙이면 뙤창문이 되었다. 인기척이 들리거나 바깥이 궁금하면 눈을 갖다대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밖이 희미하게 보일 때, 입김을 호호 불어 먼지를 닦아내면 깨끗하게 보였다.

 뙤창문으로는 마당만 보일 뿐, 산 너머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바깥세상에서 오는 건 활자와 소리였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느라 신문도 하루 늦게 오는 하늘아래 첫 동네에는 전파도 숨을 헐떡거리며 왔다. 지지직대는 소리를 잡으러 귀를 기울이다보면, 분단의 벽 너머에서 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간간이 끼어들었다. 분명히 사람 목소리인데, 듣다가 들키면 죄가 되는 소리였다.

 이웃집에서 처음 본 네모상자는 신기했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자 시커먼 창이 나왔다. 단추를 딸깍 돌리고 잠시 기다리니, 가보지 못한 세상이 안방에 펼쳐졌다. 배불뚝이 화면 안에도 세상이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도, 산도, 꽃도, 생각까지도 흑백으로 보여줄 뿐, 가끔 훈계를 하거나 세상을 손에 쥔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오래도록 보여주었다.

 산골에도 하늘은 늘 열려있었다. 밤하늘엔 어째서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걸까. 연필심에 침을 바르고 별 이야기를 받아쓰던 소년은 청년이 되어서도 상상의 날갯죽지가 근질거렸다. 주머니를 털어 천체망원경을 장만해 밤이면 우주를 관찰했다. 동그란 뙤창으로 보이는 조각을 모아 모자이크처럼 맞추니 광야가 경이롭게 펼쳐졌다.

 인터넷 창이 생기고 조각이 착착 맞춰지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안방에서 뙤창 하나로 온 누리와 통할 수 있다니, 시차를 두고 다가온 사건과 사건이지만 신대륙은 우주만큼 경이로웠다. 사람이 모여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자 자연스럽게 길이 나고 시장이 생겼다. 뒤따라 관공서와 은행과 언론사가 들어서고, 백화점, 복덕방, 노래방이 개업하고 사랑방과 토론방이 생기자 어느새 거대한 누리를 이루었다. 변두리에 아담한 누리집 한 채 장만한 나는 문패를 걸어 전입신고를 마쳤다.

 신대륙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총칼 대신 반짝이는 착상과 기술만 있으면 영토를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정보 한 쪼가리를 찾아 발이 부르트도록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조그만 검색창으로 부르면 갖가지 정보가 앞을 다투어 손을 치켜든다.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북극곰이 광속으로 달려와 능글맞게 웃고, 남극 펭귄이 뒤뚱거리며 나타나 재롱을 떤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축구 경기장이 나를 빨아들인다.

 문명은 온누리와 소통할 수 있는 뙤창문을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꾸린 이야기가 세상을 웃기고 남이 꾸린 이야기가 나를 울린다. 정보를 ‘머릿속에 얼마나 저장하느냐.’에서 ‘얼마나 빨리 부르느냐.’로 전환해 뇌가 창의적으로 사고할 공간도 넓혔다. 물리법칙의 족쇄를 벗어난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세계를 유영하며 영적 진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신대륙도 평화롭지만은 않다. 거짓이 지성을 시험하고 온갖 자극이 이성을 흔든다. 진실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는가하면 진실을 조작하는 몸짓도 스멀거린다. 어느 광장에서는 선동에 현혹된 군중이 마녀사냥을 벌인다. ‘열려라 참깨’는 어떻게 알았을까. 문을 열고 비밀을 훔치는가 하면, 남의 작품을 허락 없이 퍼가기도 한다. 가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투리 섞인 협박에 이성이 마비되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야릇한 편지가 뙤창문으로 날아와 본능을 꼬드기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복면을 쓴 괴한이 누군가의 생각에 창을 꽂고 사라지기도 한다.

 녹슨 창이라도 던지면 맞은 누군가가 날을 세워 던진다. 꽃을 던지면 받은 누군가가 예쁘게 장식해 던진다. 그 중 하나는 탈을 쓴 너, 창槍을 품은 나일 수도 있다. 똑똑한 창窓으로 주고받는 정보는 그물보다 더 촘촘한 광섬유를 타고 흐른다. 그 결은 푸른 숨결 찰랑이는 초원일 수도 발목을 잡는 늪일 수도 있다. 누에가 입으로 자아낸 실은 비단이 되고 거미가 항문으로 토해낸 실은 함정이 되는 것처럼.

 세상을 내다보는 첫 창은 눈이다. 마음의 창에 때가 묻으면 세상이 탁하게 보인다. 마음이 우울해질 때면 벌 나비 춤추는 들로 산으로 나가 새소리, 바람소리를 퍼 담고, 하늘, 땅, 들꽃 향기를 듬뿍 마셔볼 일이다. 계곡 맑은 물에 얼굴을 씻어보고, 오는 길에 책방에 들러 처세술 보다는 인문학 책을 한권 사서 내면의 프리즘도 닦아볼 일이다.

문명은 홍익인간의 길을 열지만 홍익을 꽃피우는 건 인간의 몫.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 피고 얼마나 달콤한 열매가 열리느냐는 문명의 빛으로 광합성작용을 하는 인간의 내면에 달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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