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한 장 꽃잎처럼 / 민명자

희라킴 2019. 12. 3. 20:02



한 장 꽃잎처럼 


                                                                                                                                 민명자


 내일은 비가 온단다. 꽃이 만개하여 한바탕 잔치를 치를 때쯤이면 얄궂은 비가 꼭 한 번씩 다녀가신다. 목마른 대지를 축이려 오실 거라면, 산천초목을 살리려 오실 거라면, 꽃 얼굴 다치지 않게 살살 내리시게. 꽃 송아리 떨어지지 않게 비바람도 살살 부시게.

 시간은 수학공식처럼 어김없이 봄을 데려다 놓았다. 요즘엔 꽃들도 인간사 흉내를 내려는지 서로 질세라 두서없이 화들짝 얼굴을 내민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핀 꽃들 틈에서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도 있는 듯 없는 듯 납작한 키를 발돋움하며 세상구경을 하고 있다.

 ‘꽃이 피었다.’라는 구절은 짧지만, 단문에는 다 담을 수 없는 장문의 심정이 실린다. 뿌리가 길어 올린 생명의 신비와 환희, 연두와 어우러진 색채들의 향연, …,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해마다 느끼는 소회지만 봄이 누구에게나 그렇게 찬란하기만 하던가. 개화 뒤에 오는 낙화 또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만은 않은 심정을 불러오곤 한다.

 오늘은 P를 보러가기로 한 날이다. 동창 Y와 미리 약속을 해놓은 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동창 P는 초기대응이 늦어져 해를 넘기며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다.

 그동안 가끔 문병을 갔으나 쓰러진 이후로는 예전처럼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티끌만치라도 차도가 좀 있으려나, 막연한 기대를 갖고 그녀 곁에 섰다. 봄기운에 온갖 존재들이 기지개를 켜지만 그녀는 여전히 긴 잠에 빠져 있다. 창밖엔 봄꽃이 찬연하건만 보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못한다.

 같은 병동엔 여러 가지 의료 기구를 몸에 단 환자들이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 기적적으로 소생해도 그저 수명 연장에 그칠 뿐 보통의 삶을 누릴 가망이 없어 보인다. 환자 자신은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다. 가족들은 1%의 희망이라도 잡으려, 한을 남기지 않으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P의 모든 간병부담은 외동딸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 딸은 온힘을 다해 견디는 모습이다.

 흔히 백세시대라고들 한다. 100. 멀다. 아니 빠르다. 인생을 백 권의 책으로 치자면 나는 어느 새 예순 권을 훌쩍 넘겨 종심(從心)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진창길을 걷거나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지나는 동안 시간이라는 열차가 가파른 인생 고갯길을 허락도 없이 후딱 달려버린 거다. 열차의 운전자는 아마도 운명의 신이리라. 남은 여행기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병원 가는 횟수가 잦아지고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시간과 가까워진 게 사실이다. 고종명(考終命)의 복을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미래의 시간은 불투명하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참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 ‘참 살이(Well Being)’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다. 그러나 요즘엔 어떻게 해야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 ‘참 죽음(Well Dying)’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내 친구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3남 1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성정이 깔끔해서 자식들 앞에서도 항상 못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한여름에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연로하여 병고를 겪는 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던가. 노환이 깊던 어느 날, 속옷에 변을 묻혔다. 거동이 불편해져 스스로 용변처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곡기를 끊었다. 평생 남편 없이 살면서 몸단속을 목숨처럼 중히 여기던 분이 아랫도리를 남에게 내보인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었던 게다. 자식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무릎 꿇고 울면서 애원해도 ‘나는 살만큼 살았다. 추한 모습 보이며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물 한 모금도 입에 넣지 못하게 했다. 누추한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의지가 워낙 완강해서 의식이 있는 동안은 자식들도 그 뜻을 거역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그분은 혼미를 거듭하며 당신의 뜻을 쉽게 이룰 수는 없었지만 그 자존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행복전도사로 잘 알려진 여성이 불가항력적인 병고와 싸우다가 자발적으로 생을 마감한 일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안타까움이 따랐지만 그것은 그녀가 택할 수 있는 행복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생의 굴곡이 지난했던 프리다 칼로는 죽음의 순간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한다. 삶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겐 삶은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이요,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의 길일 수 있다. 삶이 숭고하다면 죽음도 숭고하다.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스위스로 떠나 104세의 생을 안락사로 마감했다. 호주와 달리 스위스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한다. 시력저하 등 고령으로 인해 “앉아 있는 것 말고 할 게 없었다.”고 할 만큼 삶의 질이 떨어진 그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편안히 눈감을 수 있기를 원했다. 안락사 지원단체인 ‘엑시트 인터내셔널’과 의료진이 그를 도왔다. 치사량에 해당하는 신경안정제 주사액을 정맥에 주입했는데 그 밸브는 구달 박사 자신이 열었다. 그는 ‘삶을 끝낼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의료진에 감사한다.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어떤 추모행사도 갖지 말며,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한 결단에 반대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천부생명을 중시하며 생명경시 풍조를 우려해서다. 반면에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수 있다는 점에 비중을 두어 찬성하는 측도 많다. 우리가 태어날 때 자기의지대로 온 게 아니니 죽음의 경고와 함께 오는 극한의 고통도 천명이라 감내하며 초연하게 순명하는 것이 인간자존의 궁극을 실현하는 길일까. 아니면 애초에 무의지로 이 세상에 왔으니까 오히려, 소임을 다하고 마지막 떠나는 여정에서만이라도 평안하고 행복한 길을 택할 권리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걸까.

 어떤 경우든 자기결정권은 정신이 맑을 때라야 가능하다. 만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주체적인 결정은 불가능해진다. 치매환자도 점점 느는 추세이고 노인에 대한 시선도 ‘경로(敬老)’는커녕 ‘혐로(嫌老)’가 신조어로 쓰일 정도로 곱지만은 않다. 장수가 아름다운 축복이 되려면 인위적으로 생물학적인 나이숫자만 늘리는 ‘병든 장수’가 아니라 삶의 질도 좋은 ‘건강한 장수’여야 하리라. 장수를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 순간을 언제 어떻게 맞게 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나는 인위적인 연명의료만큼은 거부하고 싶다. 그렇다면 정신이 온전할 때 내 뜻을 미리 밝혀두는 건 어떨까. 친구 문병을 다녀오던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나, 민명자는 연명의료를 거부합니다. 인간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생명의 연장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도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을 넣어 나름대로 <연명의료 거부 증서>를 썼다. “혹시 유사시 내 생각을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도 의료진과 가족들은 내 뜻을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했고, 장기기증 의사도 간곡히 밝혔다. 내 몸의 장기 중 어느 하나라도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의 오빠는 시신을 기증하고 먼 길 떠났다. 내 마음도 그리 닿으면 증서를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른다.

 법적 효력 여부는 차치하고 우선 내 의사 표시가 중요한 게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가족들이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자필로 쓴 증서에 작성일자와 이름,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적었다. 서명을 한 후 인감도장도 꾹 눌러 찍었다. 남편과 나,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무지개 너머 저 세상으로 갈지는 알 수 없으나 우선은 남편에게 맡기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증서를 받아 든 남편은 자신이 얼마 전 입원할 때 작성해두었던 유언장과 함께 우리들의 서랍에 소중히 간직했다. 나중에 자식들이 쉽게 열어볼 수 있는 서랍이다.

 우리 내외는 남은 시간을 조금씩 대비한다. 불필요한 물건 버리기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끝까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렇기에 나는 거부한다. 그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바란다. 끝까지 그 가치를 지키며 살다 갈 수 있기를.

 인위적인 의료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황톳길, 세상의 짐 주렁주렁 숨 가쁘게 매달지 않고 낙화하듯 가볍게, 가볍게 가고 싶다. 속진(俗塵) 묻히며 무겁게 끌고 다니던 신발도 벗고 맨발이면 더 좋다. 어느 날 밤 자는 듯이, 허공을 날아 땅에 몸을 묻는 한 장 꽃잎처럼 허심하게 훌훌 떠날 수 있다면 더욱 좋으리. 오는 시간 가는 시간 따라 또 한 번의 봄이 왔다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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