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천강문학상 시 대상]
빈 목간木簡을 읽다
최분임
도토리 몇 알이 칭얼대는 허기를
달래기도 전 보름달이 도착했네요
채집의 종족에게 식욕은
말린 생선 비린내에도 체면을 차리지 않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끼니를 기다리며
생선뼈로 저녁을 불다 지친 아이들
여러 차례 달이 흘리는 육즙을 기웃거릴 때
당신을 마중 나간 길은 금세 어두워지죠
그림자로 일렁이던 당신이 영원이 되기까지
따로 내 영혼은 자라지 않았죠
주인 잃은 돌베개가 웅크린 짐승을 닮아가는 밤
당신의 팔베개에서 식은 잠이 갈비뼈 한 귀퉁이를 뒤적여
사그라진 불씨, 당신을 이룩하네요
식은 것은 뜨거웠던 것의 표정이라고 말한 게
둥근 당신이었나요, 날카로운 나였나요
토기를 빚던 손을 빌린 나무둥치가
수신인 당신의 눈 코 입을 묻네요
빗살무늬 캐던 동물 뼈는 잠의 미간처럼 생각이 많아
기다림을 새기기 적당하죠
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보름달이
당신에게 대신 전할 목간木簡을 읽기 위해
더 밝은 높이에 눈동자를 띄우네요
산길을 향해 구부정하게 걷는 달빛
반짝, 허리가 펴지네요
거미줄처럼 널린 감정들이 강물의 명경明鏡 속
뾰족한 빗살무늬로 비칠까 옹이는 지우고
새순처럼 돋아날 나를 고르고 고르죠
달빛이 나를 다 읽었다는 듯이
끊기고 번진 그림문자들
새벽빛으로 고쳐 멀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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