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등으로 운다 / 임선희

희라킴 2016. 11. 18. 21:27



등으로 운다

                                                                                                           

                                                                                                              임선희

 

  1987년 그해 여름도 징그럽게 더웠다.


  7월 하순에 대홍수가 전국을 휘젓고 가더니, 태양은 발악하듯 열기를 뿜어냈다. 그 여름 한철, 나는 부리나케 마산을 오르내렸다. 무학산 기슭, 화성동이라는 곳에 ‘마산 교도소’가 있다. 거기에 대학 졸업반인 아들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문민정권 창출 5년 전의 이른바 민주화 운동이, 당시로선 국가 보안법에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아들과 나는 몇 번인가 특별접견이란 이름으로 만난 적이 있다. 두꺼운 플라스틱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서 15분으로 끝내는 일반 접견과는 다른 것이다. 창고 모양의 방이긴 하지만, 칸막이 없이 함께 앉아서 두어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특별한 접견이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옆에 앉아서 숨 가쁘게 말을 쏟아낸다. 별다른 의미도 없는, 잡담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말들이다. 침묵이 두려워서였다. 정확히는 일 분 일 분 다가오는 작별이 두려워서였다.

  “그만 일어나시죠.”

  받아쓰기에 지친 교도관이 앞장서고, 뒤따라 아들과 나도 밖으로 나온다.  보안과 직원실 앞까지 앞서 아들은 나를 전송한다.

  “어머니 먼저 가세요.”

  그 애는 감방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어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교도소에서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였다. 나는 등을 돌리고 정문을 향해 가운데뜰을 걷는다. 지구가 무너져도 최후까지 남아있을 것 같은 철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고 ― 그때까지 아들은 그냥 그렇게 서서 나를 지켜본다.


  갑자기 그 애의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뭔가 자세히 봐두어야 하는 걸 놓친 것만 같은 심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중대한 일처럼 여겨진다. 한 번만 뒤돌아볼까, 안돼,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안돼’가 도사리고 있었다.  8월의 대기가 땅을 짓누르고, 나뭇가지의 매미는 전생의 무슨 원념(怨念)을 토하듯이 혼신으로 울어댄다. 풀숲에는 샐비어가 핏빛으로 피어있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아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먼저 가라고 한 손을 치켜 올리며 태연히 웃어 보이던 아들의 표정, 거기엔 스물 세살 젊음의 미숙함과 나이답지 않는 노성이 동거하고 있었다.


  그건 뭘까, 어미의 뒷모습을 읽어버린 청년의 쓸쓸함이며 허허로움이었을까. 내 어깨에는 항상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옷걸이를 집어넣은 채 옷을 입은 것처럼 뒤에서는 보였을 것이다. 그 어깨가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는 흔들림과 부서짐을 아들은 필경 이해했을 것이다.  그 시절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아들도 나도 등으로 울던 세월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 등에다 한 장의 커다란 캔버스를 짊어지고 나온다……. 이렇게 말한 화가가 있다. 화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 새하얀 캔버스에다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을 그려간다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의 뒷모습에는 표정이 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갖가지 풍경이 그려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흘러서 갔다. 사랑이란 단어로는 부족한 것, 어떤 업과 같은 인연들이 나를 스쳐서 갔다. 그들 뒷모습이 한결같이 지니고 있는 회한의 표정을 내가 본다. 사람들은 대체로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하나의 회한을 통감한다. 전력을 쏟고 나면 나중에는 서글픔이 찌꺼기처럼 남는 것인지, 최선을 다한 인생에도 비애는 있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서슴없이 말하고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실은 마음이 약할 수도 있다. 천둥번개처럼 강렬하게 인생의 포르테시모를 연주한 사람일수록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누구와도 끝내 공유하지는 못했던 고독, 진실로 단념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실로 희망하지도 못했던 어리석음, 그런 것들이 아픈 풍경이 되어 등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남자는 등으로 운다는 말이 있다.  어째서 남자뿐이겠는가. 여자도 수없이 등으로 울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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