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사과는 어디로 갔을까 / 민명자

희라킴 2016. 11. 18. 11:21



자연과 고독을 사랑한 화가 - 폴 세잔 Cezanne




사과는 어디로 갔을까


                                                                                                                                    민명자



 사과 옆에 왜 해골을 그려 넣었을까. 폴 세잔의 「해골이 있는 정물」을 본다. 화석처럼 굳어 있던 다락방 풍경이 겹친다. 그 사과들은 어디로 갔을까.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자리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 며칠 사이에 갑자기 병색이 깊어졌었어.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산 사과를 머리맡에 던져 놓았지. 사과는 한동안 다락방에 있었어.’


 사과에 대한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흑백화면은 다락방에서 정지된 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앞둔 시기였다. 학교에선 수학여행은 말 그대로 수업의 연장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여행지는 경주 불국사, 기차를 탈 기회도 거의 없었을 때이니 기차여행에 대한 설렘과 친구들과의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계획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시름시름 시작된 어머니의 병세가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의료시설이 지금 같지 않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의사들은 그저 간이 좀 안 좋다고만 할뿐 뚜렷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틈만 나면 이 무당 저 무당 찾아다니며 굿을 하기 바빴고, 내게는 수학여행을 포기하라고 하셨다.


 나는 꼭 가야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다. 그동안 등록금에 조금씩 합해서 낸 수학 여행비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게 첫째 이유였고, 어머니 병은 나으면 되지만 수학여행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서 꼭 가야한다는 게 둘째 이유였다. 어머니는 잠깐 앓다가 자리를 툭툭 털고 가볍게 일어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결국 수학여행을 갔다. 그리고는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싹 잊었다. 낮에는 고도(古都) 경주의 가을정취에 흠뻑 빠져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밤에는 친구들과 놀며 날밤을 새웠다. 그 시각에 어머니의 생명불이 사위어 가고 있다는 걸 알 리 없었다.


 사흘을 하루처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앉으니 그제야 불현듯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삶은 계란이랑 과자 등을 파는 홍익요원이 기차 객실 통로 사이로 지나갔다. 그물처럼 생긴 망에 담긴 사과가 눈에 띄었다. 그물망 한 줄에 사과가 다섯 개씩 들어 있었다. 나는 편찮으신 어머니에게 큰 효도라도 하는 양 큰 맘 먹고, 남은 용돈을 탈탈 털어 두 줄을 샀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해서 보니 어머니는 혼수상태였다. 그 사이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거였다. 수학여행을 잘 다녀왔노라고 했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을 겨우 넘기고 이틀째 되던 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아야 했다. 삶의 고통은 질기지만 날숨 한 번으로 끝나는 죽음의 순간은 참으로 허망하고 가볍다. 어머니는 그렇게 마흔의 생애를 거두고 나비처럼 홀연히 지상을 떠나셨다. 외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사람들한테 너 욕 안 먹게 하려고 어멈이 너 오는 거 기다렸다가 간 거야.”


 어머니는 내가 사온 사과를 한 쪽도 맛보지 못하셨다. 그 사과는 삼우제 후에도 망에 담긴 채 다락방에 버려져 있었다.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달랑 남겨진 삼남매 중 그 누구도 사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다시 그림을 본다. 해골이 사과를 보는 듯하다. 아니, 내 어머니의 영혼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사온 사과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세잔은 피안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사과와 해골을 한 자리에 그려 넣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은 죽음과 동행하는 제의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많고 많은 과일 중에서 왜 하필이면 사과를 즐겨 그렸을까. 그림 속 사과는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칙칙하다. 누군가 세잔의 사과는 ‘정지한 사과가 아니라 시간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과’라 했다. 정물로 놓인 사과는 모체인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부터 시간의 진화 속에서 서서히 생명을 잃어갔을 것이다.


 어느 화가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고도 했다. 이브의 사과는 욕망과 위반의 상징이요, 뉴턴의 사과는 과학의 상징이다.


 하늘나라에서 신선들이 먹는다는 천도(天桃)로나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사과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어떻게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존재의미가 달라진다. 사과는 불화의 씨앗 또는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여고 시절, 선생님 한 분은 우리에게 ‘사과 같은 여자보다는 양파 같은 여자가 돼라.’고 가르쳤다. 사과는 한 입 베어 물면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지만 양파는 껍질을 벗길수록 하얀 속살을 여러 겹 보여준다는 것이다. 만일 매운 양파 속살을 겹겹이 감춘 위선으로 본다면 사과는 달콤한 육질에 향기까지 지니고 감추는 게 없으니 순수의 아이콘으로 읽을 수도 있으리라. 또 누군가는 한 입 베어 먹은 듯한 사과에서 스티브 잡스의 사과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과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원형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몸을 바꾼다. 어떤 이에게는 신화나 동화 속 사과로, 또 어떤 이에게는 그리운 고향이나 가을의 추억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사과…. 나의 사과는 한동안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기억되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풍경 속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속 그림들을 일부러 밀어내곤 했다.


 다시 가을이다. 세잔의 사과가 자꾸 말을 걸며 다락방의 사과를 불러낸다. 그런데 그 사과들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모른다. 어두운 공간에서 고독하게 생명이 사위어 갔을 사과에게 사과(謝過)라도 해야 할 일이다. 말갛게 가을을 담은 사과들과 악수해야 할 시간이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리새 / 최장순  (0) 2016.11.19
등으로 운다 / 임선희  (0) 2016.11.18
쇠똥구리 / 민명자  (0) 2016.11.17
모두 바닥이 가르쳐주었다 / 마경덕  (0) 2016.11.17
연 밭 소묘 / 최장순  (0) 2016.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