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모두 바닥이 가르쳐주었다 / 마경덕

희라킴 2016. 11. 17. 12:44



모두 바닥이 가르쳐주었다

 

                                                                                                                                           마경덕

  

  나를 키운 건 바닥이었다. 농부였던 할아버지도 목수인 아버지도 평생 바닥에서 살다 가셨다. 두 분 다 밟으면 밟히는 만만한 사람들이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친가 쪽 가문에서 판사도 나오고 의사도 나왔지만 우리 집은 별로 달라질 게 없었다. 술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는 술로 재산을 날리셨고 술 한 잔에 넘어간 아버지는 빚보증을 서고 집을 날리셨다. 지긋지긋한 술,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농투성이 할아버지와 땀내에 절은 아버지는 여전히 바닥을 좋아하셔서 할아버지는 개골창으로 넘어지셨고 아버지도 길바닥에 쓰러지셨다. 나 역시 바닥에 퍼질러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땅따먹기도 했다. 신발을 털면 모래가 한 움큼이나 나왔다.


  어느 날, 우리 식구는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졸지에 집을 잃고 동네 당골네 문간방에 세 들었다. 단칸방에서 발을 포개고 잠들었다.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었다. 눈을 감고 누우면 그대로 바닥이 될 것만 같았다.

 

  내 몸에는 잡종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 잡, 아무 거나 잘 먹는 잡종견 도꾸가 더 좋았다. 어머니는 순종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평생을 괭이자루 한 번 쥐어보지 못하고 가셨다. 하얀 모시옷에 의젓한 수염에 책과 붓만을 만지시다가 가셨다. 그 바람에 외할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어머니도 할아버지를 닮아 아무 일이나 못하셨다. 어머니는 체면을 먼저 생각하셨지만 나는 배부른 잡雜이 더 좋았다. 닥치면 시장바닥에 앉아 콩나물 장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동네 어른이 생선을 다듬어 주면 돈을 준다기에 따라 나섰다. 갈치 상자였는데 보관을 잘못해 갈치가 상하기 직전이었다. 동네 아주머니 틈에 끼어 어린것이 일러준 대로 갈치를 다듬었다. 갈치 내장에서 구더기가 바글거렸다. 구더기가 손을 타고 올라왔다. 그런데, 돈을 준다는 그 말에 구더기가 하나도 징그럽지 않았다. 한나절 갈치를 다듬고 집에 왔다. 온몸이 스멀거렸다. 내 생애 첨으로 돈을 벌었다는 뿌듯함에 비린내조차 싫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끝내 일당은 나오지 않았다. 손해를 많이 본 그 아저씨는 줄 돈이 없다고 했다. 나의 첫 벌이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어판장에서 생선장수를 하는 아이 셋 딸린 젊은 과부가 있었는데 아이들 성이 다 달랐다. 그 여자를 볼 때마다 잡(雜)이 떠올랐다. 동네가 손가락질을 하고 소곤거려도 여자는 늘 악착을 떨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닥의 힘이었다.

 

 

  옥수수 한 자루에

  크기도 빛깔도 다른 알갱이들

  검둥이 흰둥이 노랑이…

  씨 도둑질을 하고도 너무나 태연한 잡것들

  줄을 지어 서있다

 

  거슬러 가면 맨발로 밭고랑에 엎어진

  늙은 검둥이 사내와 흰둥이 총각, 영문도 모르는 흙빛 아비가 있다

  호미를 내던지고 푸른 치마를 흔드는 저 여자,

  바람 같은 낯선 사내들과 얼룩덜룩 피를 나누고

  씨 다른 새끼들로 일가를 이루었다

 

  다산(多産)인 잡종만이 살길이라고

  정오의 햇살에 후끈 달아오른 옥수수밭

  일제히 만삭인 여자들, 아비도 모를 아기를 업고 서있다

 

  바람 한 필 끊어 촘촘히 기운 겹겹의 옷

  저 푸른 옷 아래 슬픈 계보가 있다

  지울 수 없는 문신이 있다

 

  쉿!

  도시로 나가 잡부로 떠돌던

  주인집 아들이 낫을 들고 온다

                                            -「잡(雜)」전문

 

 

  공사장에서 벽돌을 져 나르던 여자도 바닥이었다. 바닥에서부터 고층까지 올라야 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지만 몸 기댈 방 한 칸 없었다.

 

 

  벽돌을 지고 공사중인 황금모텔 10층으로 올라온 여자, 와르르 등짐을 쏟은 아찔한 발 밑, 카사노바모텔 귀빈모텔 일등모텔. 돈만 있으면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눈만 뜨면 도시에 잠잘 곳이 늘었다. 노래방 PC방 고시방 안마방 비디오방 전화방 찜질방 키스방, 구석구석 방이 늘고 불경기에도 방들은 호황이었다. 음치에 박색인 여자는 종일 벽돌만 져 날랐다. 뼈를 깎고 살을 뺀 여자들은 방을 찾아 밤마다 노래하고 춤추며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해거름에 외마디 비명이 10층에서 떨어졌다. 지난봄 허공에 발을 빠뜨렸을 때 뒤꿈치가 갈라진 발을 나뭇가지가 받아걸었다. 한 눈을 파는 사이, 여자는 허공을 찢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찰나였다. 허공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혀를 찼다. 피 묻은 손이 사진 한 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보조개가 귀여운 아아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아이에게 어미는 따뜻한 방이라고 했다. 방 한 칸 얻어 보육원에 맡긴 딸을 찾아오겠다던 여자가 떠올랐다. 오나가나 방이 문제였다.

                                            - 「방(房)」전문

 

 

  답십리에 살던 사돈처녀도 바닥과였다. 바닥에 가까웠던 그녀가 하늘과인 남자만 하늘처럼 쳐다보더니 어느 날 바닥으로 추락했다. 바닥의 힘으로 살던 그녀가 바닥을 벗어난 게 화근이었다. 나는 바닥의 힘을 일찍 알아채고 바닥에 붙어 살기로 했다. 몸을 낮게 움츠렸더니 바닥이 나를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가끔 등을 내밀고 나를 무등 태워 주던 바닥, 아버지는 서울구경을 시켜준다고 어린 내 귀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덕아, 눈을 크게 떠. 서울이 보이지?”

  서울! 서울이란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서울은 어떤 곳일까?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은 꿈에 그리던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비가 꽤 큰돈이라 어머니들이 직접 돈을 챙겨 학교에 오셨다. 순이, 영자, 순심이, 영식이 정심이… 마감을 하루 앞두고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다녀가셨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끝내 오지 않았다. 서울구경을 간다고 아이들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새 가방에 새 신에 새 옷을 샀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수학여행 가기 전 날,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그네를 탔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내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 집에 오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예회가 열렸다. 풍금에 맞춰 노래를 잘 부르던 담임선생님은 연극을 맡으셔서 방과 후에 교실에서 연극지도를 하셨다 ‘나무꾼과 선녀’역을 맡은 상급생 오빠는 의상까지 차려입고 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되풀이 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연습하는 것을 보려고 늦게 까지 남아서 기다렸다. 학예회에 나갈 아이들은 모두 넉넉한 집 아이들이었다. 내 친구 정심이는 발레에 뽑혔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집에 놀러갔더니 만화책에서나 보던 망사 발레복이 안방에 걸려 있었다. 겹겹으로 주름 잡힌 짧은 치마가 엉덩이에서 달랑거렸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옷도 있다니! 잠자리 날개 같은 그 옷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집에 와서도 그 분홍 발레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예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발레복을 입고 나비처럼 춤추는 친구를 꼭 보고 싶었다. 드디어 아저씨들이 교실칸막이를 뜯어내고 강당을 만들었다. 나는 일찍 앞줄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엄마 손을 잡고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늦게 온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뒤에 서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막이 오르기만 설레며 기다리는데,

  “야야, 꼬마야. 너 혼자 왔어?”

  상급생 오빠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엄마랑 같이 온 아이를 그 자리에 앉혔다. 그토록 기다렸던 학예회. 나는 말 한 마디 못해보고 그대로 쫓겨났다. 학교에 오는 걸 싫어하던 엄마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비가 와도 한 번도 우산을 가져다 준 적이 없었다. 처마 밑에 서있으면 아이들은 우산을 챙겨온 엄마와 손을 잡고 하나, 둘 사라졌다. 다정히 손을 잡고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일찍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을 알아버렸다.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세일러복을 단정히 입은 아이들이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운동장으로 모였다. 나무걸상을 쌓고 아이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키가 작았던 나는 맨 앞줄에 앉았다. 앞에서 줄을 맞추던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뒷줄로 가라고 했다. 운동화를 신은 뒷줄 아이를 부르더니 내 자리에 앉혔다. 졸업사진인데 고무신이 눈에 거슬린다고 하셨다. 나는 맨 뒷줄에 가서 섰다. 앞줄에 가려 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고무신이 뭐 어때서? 나는 목울대까지 치미는 말을 꿀꺽 삼켰다. 가난은 내게 깊은 상처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바닥이었다. 선생님은 장학생 시험을 쳐보라고 하셨지만 학교를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단짝이었던 윗집 종란이도 옆집 시양이도 모두 초등학교만 다니고 말았다. 외삼촌이 부모님을 설득해서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등록금이 제일 싼 곳으로 갔다. 신설학교라 시설은 형편없었다. 학생들은 뒷산에 가서 돌멩이를 주워 오고 학교 운동장도 팠다. 할당량이 주어져 서로 경쟁을 하며 운동장을 파고 다졌다. 좋은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어서 명문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주눅이 들었지만 물려 입은 헐렁한 교복의 하얀 칼라가 얼마나 좋던지 밤새 잠을 설쳤다.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 정말 부러울 게 없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새 공책에 표지를 입히면서 첫 장에 무얼 먼저 쓸까 생각하며 연필을 깎았다.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바닥이 나를 키운 셈이다. 졸업을 하고 아버지가 파산한 후 나는 서울에 있는 친척집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신림동 난곡입구에 사는 언니가 첫애를 낳고 산후조리 중이어서 아이를 돌본다는 핑계로 몇 달 그 집에 얹혀살았다. 부엌 하나 달린 단칸방 산 아랫집, 해가 잠깐 다녀가는 부엌문 앞까지 산그림자가 내려와 기웃거렸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가 뒤통수에 꽂혔다. 겨울에도 붉은 동백꽃이 터지는 내 고향, 늘 따순 바람에 길들여진 몸이 서울에서 처음 맞는 그 혹독한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다. 봄이 와도 마당의 얼음은 쉽게 녹지 않았다. 우물가에서 기저귀를 빨 때면 손가락을 타고 오른 냉기에 뼛속까지 아렸다. 차디찬 마룻바닥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우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그림자들이 창문에 어른거렸다. 천리 먼 곳, 내가 누운 곳은 낯선 집 마룻바닥이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시절, 나는 바닥의 근성을 배웠다. 눈치 빠르고 주는 대로 아무 거나 잘 먹고 어떤 경우에도 말을 삼키고 참아야 한다는 걸, 바닥이 가르쳐 주었다. 바닥은 내 생활의 일부였으므로 나는 바닥과 잘 지냈다. 직장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밤낮없이 일했고 궂은일은 언제나 먼저 해치웠다. 한 번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아 나는 비에 젖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렸고 내의 한 벌 없이 겨울을 보냈기에 추위에 떠는 고통을 알게 되었다. 좋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겸손함을 알았고 단칸방을 알고 집 없는 자의 설움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차디찬 바닥들, 나는 그 바닥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공동변소 똥통에 몇 달 째 떠있는 유리병, 닫힌 솔잎 마개 틈으로 멀건 물이 스몄는데 , 똥물을 받아 마신 소리꾼도 목이 트였는데,

 

  장마가 닥치면 넘치는 공동변소, 병 하나 둥둥, 캄캄한 몸을 휘돌아 나온 것들 시나브로 걸러내는

 

  술병 화병火病에 골병든 사내들이 빠끔담배 피우며 줄을 서던 곳. 타들어가는 똥끝에, 더디 오는 차례에 안절부절, 걸쳐놓은 널빤지가 후들후들 떨리던 푸세식 변소에 노름쟁이 천섭이 아재 약병이 있었다.

 

  구멍난 뼈에 살이 차듯 병에 물이 차고 있었다.

                                                       -「병」전문

 

  바닥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사랑하고, 헤아려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라고… 바닥에 누우면 마음조차 편하다. 내 지친 등을 받아주는 바닥, 내 단잠을 받아주는 바닥, 더는 내려갈 데가 없으니 딛고 일어서라고 등을 떠미는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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