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놀란흙 / 마경덕

희라킴 2016. 4. 18. 18:42

 

 

놀란흙

 

 

 마경덕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쟁기 삽 괭이 호미 쇠스랑 포클레인… 누가 제일 먼저 괭잇날에 묻은 비명을 보았을까

낯빛이 창백한, 눈이 휘둥그런

 

겨냥한 곳은 흙의 정수리거나 잠든 미간이거나,

 

흙의 표정을 발견한 누군가의 첫 생각, 그때 국어사전에 놀란흙이라는 명사가 버젓이 올라갔다

 

흙의 살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그것들이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다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

 

흙의 나라

태초에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닮은 흙의 심장은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공사장 주변, 포클레인이 파헤친 땅

매장된 산업폐기물을 껴안고 까맣게 죽어있었다

싱싱하던 흙빛은 흑빛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버지는 흙집으로 들어가

더는 놀라지 않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자주 놀란다

 

 

 

- 《불교문예》2013년 가을호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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