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시 모음
6월이 오면 / Robert Bridges
유월이 오면 하루종일
향기로운 마른 풀 위에 내 사랑과 함께 앉아 있으리
산들바람 부는 저 높은 하늘에
흰구름이 지어 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리.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녀를 위해 노래를 지으리
마른 풀내 향긋한 건초더미 위에 남몰래 둘이 누워
하루종일 달콤한 시를 읽으리.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유월이 오면.
When June is come, then all the day,
I'll sit with my love in the scented day,
And watch the sunshot palaces high
That the white clouds build in the breezy sky.
The singth, and I do make her a song
And read sweet poems the whole day long
Unseen as we lie in our haybuilt home,
O, life is delight when June is come.
유월이 오면 / 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저녁 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6월 / 이외수
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유월의 언덕 / 노천명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6월의 장미 / 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6월/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6월엔 내가 /이해인
숲 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6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6월 /김용택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유월의 산 / 정연복
산의 말없이
너른 품에 들어서서
유월의 푸른 이파리들이
총총히 엮어 드리운
그늘진 오솔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내 몸에도 흠뻑
파란 물이 든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옹졸해진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새 쪽빛 하늘이 되고
세상 근심은 솔솔
바람에 실려 아스라이 흩어진다
6월에는 /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유월의 기도 /김경숙
신록 머금은 계절
꽃잎들 껴안고
산아래 머무르면
지칠 줄 모르는
초록 노래
향기로 이끄시는
나의 모후여!
당신의 숲 속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사랑의 빛으로
감사의 빛으로
날마다 새롭게
물들고 싶습니다
금낭화 /안도현
6월,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틀니 빼놓고
시집을 가고 싶은가 보다
장독 항아리 표면에 돋은 주근깨처럼 자잘한 미련도 없이
어머니는 차랑차랑 흔들리는 고름으로
신방에 들고 싶은가 보다
6월의 童謠 /고재종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 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 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6월 / 이정화
사방이 풋비린내로 젖어 있다
가까운 어느 산자락에선가 꿩이 울어
반짝 깨어지는
거울, 한낮
초록 덩굴 뒤덮인 돌각담 모퉁이로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독배암
등줄기의 무지개
너의 빳빳한 고독과
독조차
마냥 고웁다
이 대명천지 햇볕 아래서는
6월에 쓰는 편지 / 허후남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그곳에 계시는지요
유월의 햇살 /신석종
지금, 밖을 보고 있나요?
햇살이 투명하고 눈부십니다
누군가 내게 준 행복입니다
지옥의 문을 들어서는 공간에
당신과, 하늘에는 햇살이 닿아 있고
땅으로는 지열이 닿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손 잡고, 길을 걷지는 못하겠지만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내게 그런 존재랍니다
삼월에 새싹 돋고
유월에 곧은 햇살 쪽쪽 내리꽂히는
이 세상은, 그래서 나에게는
화사하고 눈부신 낙원입니다
당신이 오로지 내게만, 문 열어 준
그 낙원에서, 나 살고 있습니다
6월 기집애 / 나태주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6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6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쬐꼬만 이 6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에서
우리도 양달개비 파란 꽃 되어
두 손을 마주 잡자꾸나
다시는 나뉘어지지 말자꾸나
무명인 / 에밀리 디킨슨
난 무명인입니다! 당신은요?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쉿!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에밀리 디킨슨·미국 여류시인, 1830-188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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