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달리는 이불 / 정와연

희라킴 2016. 4. 18. 18:43

 

 

달리는 이불

 

      정와연

 

 

 

이삿짐 트럭에 실려 가는 이불

검은 밧줄이 필사적인 빨랫줄이다

반듯하게 개켜진 이불의 한쪽이 들썩거리는

달리는 이불은 지금 어떤 잠자리인가

어느 방에서

또 어느 방으로 뒤척여지고 있는 것일까

 

집 밖으로 나온 이불을 보며

왜 으스스하게 몸살 앓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민망한 내면의 몸살을 덮어주던 이불

잠의 냄새가 아닌

을씨년스런 백주의 냄새

이부자리를 끌어당기는 바람의 발목이 앙상하다

 

지금 달리는 저 이불 속엔

뒤척거리는 바람이 잠자고 있다

세간을 실은 적재함이 추운 방 한 칸이다

 

지금껏 자신을 덮고 있는 것들이

다름 아닌 저런 요동치는 바람이었다는 것일까

이사를 오래 다닌 살림살이에는

그곳만큼 차곡차곡 쌓은 방도 없을 것이다

달리는 이불을 뒤따라가 보면

저녁 무렵의 서쪽하늘

노을을 끌어 덮고 있는 것을 본다

노을을 뒤따라 어둠 한 채가 깔리고

그 고요 속에는

뒤척거리는 뼈가 자라고 있다

 

 

『우리詩』 2015. 7월호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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