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11월은 빈 몸으로 서다 / 이혜연

희라킴 2020. 11. 14. 20:54

                                                              11월은 빈 몸으로 서다

 

                                                                                                                                      이혜연

                                         

 

 물새 한 무리가 후드득 날아오른다.

 몇 번의 날갯짓으로 산만했던 대열을 가지런히 가다듬은 새들은 저무는 강 위를 두어 번 선회하더니, 선홍빛 노을 속으로 유유히 멀어져 간다.

 

 휘모리 가락처럼 사위를 온통 붉은 빛으로 휘몰아 넣던 노을이 스러지고 나자, 한지에 먹물 스미듯 시나브로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빛과 어둠이 만나는 시각이다. 한낮의 거센 빛살에 숨을 죽이고 있던 사물들이 수런수런 제 기색을 찾는다. 산빛, 물빛이 깊어지고 불빛이 생기를 찾기 시작하는 시각. 낮이라기엔 어둡고 밤이라기엔 아직은 밝은,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이 짧은 순간을 음미하며 나는 하루의 고단함을 벗고 평온함에 잠긴다.

 

 모자란 게 많은 탓일까, 돌아보면 나는 늘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살아온 것 같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매사에 있어 도전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안도하기를 좋아하는, 게으르고 소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삶의 태도는 은연중 기호(嗜好)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화창한 날보다는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을, 장조의 쾌활함보다는 애조 띈 단음계 가락을, 화려한 원색보다는 채도 낮은 중간 색조를, 그리고 토요일 오후보다 금요일 저녁을 좋아하는, 말하자면 적극적 참여보다는 방관자적 안일을 즐기는 편이다.  여명(黎明)을 마다하고 굳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산책을 나서는 것도 이런 나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녁 빛은 체념 속에 드리워진 화해와 수용, 그리고 다음 날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가 담긴 부드러움으로 포근히 나를 감싸준다. 

 

 11월은 바로 이런 저녁 빛과 닮았다. 가을이라기엔 너무 늦고 겨울이라기엔 다소 이른, 가을과 겨울이 몸을 섞는 달이다. 욕망의 굴레를 막 벗어 던지고 난 후의 홀가분함이라고나 할까. 색의 잔치도 끝내고 떨구어버릴 것 다 떨구어버리고 빈 몸으로 선 나무들의 모습. 그래서 11월의 바람 끝에는 마지막 잎새의 냄새가 한 자락 묻어 있는 것 같다. 마른 잎의 냄새를 닮아서일까, 커피 향이 유난히 좋아지는 것도 이 때쯤이다. 해질 무렵,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정처 없이 걷다가, 낙엽이 두텁게 깔린 어느 산비탈에 앉아 별빛 같은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철없는 낭만을 꿈꾸어보게 하는 것도 이 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꿈의 대부분은 상상에 그치고 말았다.

 

 11월은 가난하고 쓸쓸한 달이다. 풍경(風景)도, 소리도, 빛깔도 여위어 바람마저 적막해진다. 그러나 11월을 맞는 나의 마음은 그래서 오히려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넉넉하다. “빈 들의 맑은 머리와/ 단식의 깨끗한 속으로/…외롭지 않게 차를 마신다.”던 김현승 시인의 싯구처럼, 가난하기에 맑아질 수 있고, 쓸쓸하기에 도리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11월은 산문보다는 시가 한결 맛이 있어지는 달이다. 절제된 언어, 응축된 사유, 행간의 여백이, 군더더기 털어 버리고 가뿐해진 11월의 모습을 닮았다고나 할까. 시의 날이 11월 1일인 것을 보면 이런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니지 싶다.

 

 겨울의 느낌은 무겁다. 오래된 침묵으로 지루하고, 새 생명을 잉태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홀가분할 수가 없다. 소생을 준비하는 내밀한 움직임으로 은근히 부산하기까지 하다. 겨울을 일컬어 정중동(靜中動)의 계절이라 함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11월의 느낌은 가볍고 신선하다. 방금 비운 그릇에 남아 있는 온기처럼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이 사뭇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념의 편안함이 있으며 충만을 꿈꿀 수 있어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이런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연말이라는 회오리를 등에 업은 12월이 이내 밀려오기 때문이다. 부화뇌동의 소란함과 초조함 속에서 12월은 후회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 가버린다. 두 번의 설을 치러야 하는 1월 또한 번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요일 밤을 사랑하듯이, 내가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11월에 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남은 한 달의 여유는 지나간 날들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날들을 계획할 수 있는 차분함을 준다.

 

 그러나 내가 11월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작은 설렘이 있는 달. 운이 좋으면 첫눈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폭설이 아니라, 대개는 무서리처럼 살포시 대지를 덮고 상고대처럼 가볍게 빈 가지를 채우는, 떠나는 가을에 대한 겨울의 예우와도 같은 눈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내 수첩의 11월 난에는 첫 눈 소식이 올라와 있고는 했다. 이 나이에도 ‘첫’이라는 글자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유일한 것이 눈이 아닌가 한다.

 

 간혹 이런 나의 기다림을 저버리고 11월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무언가를 잃은 듯 아쉽고 허전해진다. 12월에 내리는 첫 눈은 11월의 것만큼 내게 신선한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저 겨울눈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폭설이 되어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첫 눈이 없으면 어떠랴. 추적추적 비 내리면 마른 가지 검게 물들고, 그 가지 사이로 잿빛 하늘과 둥근 까치집이 걸리는 11월의 풍경, 그 색채의 빈곤함마저 나는 사랑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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