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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장수의 비밀과 글짓기의 지푸라기 / 정휘창

희라킴 2017. 12. 31. 19:44

 


짚신장수의 비밀과 글짓기의 지푸라기 


                                                                               정휘창


 글을 지어 다듬을 때 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짚신장수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고 먹을 갈고 붓을 쥐는 법도 지도해 주셨다. 그분은 손자인 내가 글짓기꾼이 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세상을 사는 동안 무슨 일을 하든 마무리를 잘해야 함을 가르친 것이다.


 아주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게 사는 아비와 아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짚신을 삼아 닷새마다 장에 내다 팔아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아들이 나이가 들어 이상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방에 앉아 똑같이 짚신을 삼았는데 오일장에서 팔게 되면 아비가 삼은 짚신이 아들 것보다 늘 한 푼씩 값을 더 받았다. 아들이 삼은 짚신이 젊은 힘이 들어가 아비의 것보다 더 야물게 만들어져 조금은 더 오래 신을 수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아비의 짚신을 한 푼씩 더 주고 샀다.


 아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그것은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라고만 하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들은 짚신을 삼을 때마다 아버지의 하는 일을 눈여겨 살폈지만 아무것도 비법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들은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아비는 늙고 병들어 짚신을 더 삼을 수 없게 되었다. 임종이 가까워서 아비는 그 짚신 삼기의 비결을 말해 주었다.

“야야, 짚신 삼을 때 지푸라기를 알뜰히 떼어야 하느니라.”

 이것이 그 비결이었다. 짚신에 붙어 있는 지푸라기를 말한다. 아무리 짚신이라도 쓸데없이 붙어 있는 군더더기를 잘 떼어버리면 짚신이 조금 더 곱게 보일 것이다. 요즈음의 말로 상품 가치가 올라가서 한 푼 더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푸라기, 짚으로 만든 짚신에서 필요 없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거슬리는 것들이다. 이것을 잘 떼어 없애면 짚신의 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글에도 지푸라기가 있다.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나타내는 데 필요 없는 군더더기다. 그것은 짚신의 것과 달리 아주 작은 것부터 굵고 큰 것까지 있다. 글에서도 지푸라기를 떼어 없애야 좋은 작품이 된다. 짚신의 지푸라기는 눈에 잘 뜨이지만 글에서는 그 군더더기가 찾기 힘들 경우가 많다.


 글의 지푸라기는 욕심 때문에 생긴다. 멋진 글을 지어 보겠다는 마음과 자신이 유식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다. 이것이 훌륭한 글을 만드는 데 큰 장애물로서 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글을 짓는 데 가장 멋진 말이란,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는 딱 알맞은 말이다. 아무리 곱고 아름다운 말이라도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데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의 진주목걸이다.


 글짓기에서 좀더 큰 지푸라기가 있다. 그것은 엇길로 가는 일이다. 글은 주제로 향하는 가장 바르고 쉬운 길을 가려서 가야 한다. 그 목적지와 별 관계가 없는 길로 들어서면 이것이 더욱 큰 지푸라기다. 서울로 가는 데 모로 가든 뒷걸음으로 걷든 서울을 향해 가야 한다. 추풍령 쪽으로 가지 않고 김해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함이라면 엇길이 아니다. 자신의 앎을 뽐내고 싶거나 소재를 다듬지 못해 필요 없는 이야기나 말을 하는 것이 엇길이다.


 글을 짓기 전의 마음속의 지푸라기를 더욱 조심해야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서서 튀어 보겠다는 생각이 붓을 들기 전의 가장 굵은 지푸라기다. 글의 바탕과 표현에서는 새로운 것도 낡은 것도 없다. 작자의 개성이 있을 뿐이다. 그 개성이 제대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바로 새로운 것이다.


 어떤 이는 남녀의 애정 관계를 아주 노골적으로 나타내어 새로운 것인 양 내세우는데 이건 큰 착각일 것이다. 예술이란 본래 제2의 본능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승화하느냐에 따라 외설이 되고 예술이 된다. 미술에서 그리는 방법에 의해 춘화가 되기도 하고 예술적인 그림이 되는 것과 같다. 우리 고려가요에서도 이미 다루어져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詞)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것을 무슨 새로운 것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어떻게 하든 튀어 보겠다는 철없는 생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글에서 지푸라기를 떼어내자. 문장에서의 군더더기, 구성에서의 엇길, 붓을 들기 이전의 마음의 쓰레기를 버려야 좋은 글이 지어질 것이다.


 내 이 글을 지으며 되돌아보고 또 살폈다. 이 글에서 지푸라기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