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공부방

바이올린과 수필쓰기 / 조현태

희라킴 2017. 10. 27. 18:55


바이올린과 수필쓰기 

                                                                                                                               조현태

 어느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회가 있었다. 무대 장치와 조명까지 완벽하게 점검하고 리허설도 만족하게 마쳤다. 드디어 본 연주회의 막이 열리고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오프닝 연주를 몇 곡 선사한 뒤에 팸플릿 소개대로 본 연주를 시작하였다.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바이올린 소리에 빠져든 관객들. 얼굴 표정에 몸짓까지 바이올린과 어우러져 혼신을 불사르며 활을 문지르는 연주자. 그 넓은 공연장 공간이 무색하도록 관객과 연주자는 혼연일체가 되어 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파르르 떨면서 춤추듯 현을 짚어가던 손에서 바이올린이 이탈한 것이다. 연주자가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눈을 감고 돌아섰다. 그리고 얼굴을 천장으로 향하여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관객도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웅성거리지도 못하고 애를 태웠다. 무대 아래까지 곤두박질 친 바이올린은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막만 풀어놓고 있었다.

 그때다. 맨 앞에 앉아서 감상하던 젊은이가 뛰어나갔다.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주웠다. 꼼짝도 하지 않는 연주자에게 가져갔다. 아직도 눈을 감고 서있어서 나직한 소리로 바이올린을 받으라고 하였다. 천천히 눈을 뜨며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보니 E현이 터졌다. 어쩌랴. 현을 교체하여 연주를 계속 할 수도 있고 그냥 연주할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바이올린으로 바꿔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연주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관객을 향해 다시 돌아설 때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 박수는 연주를 계속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아무리 세계적인 음악가라도 사람인 이상 연주하다 실수할 수도 있고 실수가 악기를 떨어트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관객의 심금을 울려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그러나 연주는 고사하고 E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보란 듯이 콘크리트 바닥에 집어던져 박살을 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목격한 관객들은 너무나 놀라워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실수라면 얼마든지 묵과해 줄 요량이었는데 그 비싼 악기를 저렇게 내동댕이치다니.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더러는 너무하지 않느냐? 혹자는 그러고도 예술가냐. 집어치워라. 온갖 비난과 조롱이 홀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연주자는 두 손을 들어 관중을 진정시키고 대기실로 신호를 보냈다. 곧 이어 대기실 쪽에서 또 하나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왔다.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 제가 깨트린 저 바이올린은 연습용 싸구려입니다. 이제부터 이 악기로 다시 연주할 것입니다. 좀 더 고운 선율의 음악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곽객들은 숨을 죽이고 훌륭한 연주회를 끝까지 경청하였다. 그러나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악기나 수십만 원짜리밖에 안 된다는 악기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 악기가 수천만 원짜리 명품 악기가 맞느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그 의구심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연주자가 객석을 향해 질문을 했다. 세계적인 명품 악기가 훨씬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줄 알았는데 과연 그러했느냐고, 마치 가렵던 등을 긁어주는 것과 같은 질문을 하자 객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제법 많이 있었다.


 음악가가 악기를 망가뜨리는 상황 앞에 놀란 관중을 향해 연주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연주는 얼마나 예술적인 악기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예술적으로 다루느냐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때서야 이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이올린을 떨어트린 것을 관객들이 알게 되었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이 해프닝 같은 메시지가 단지 음악예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까? 아름답고 예술적인 어휘나 문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다면 말이다.


 바이올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스페인 명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사라사테는 5살부터 군악대 지휘자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8살에 개인 연주회를 열었다. 그 연주회로 인하여 큰 후원을 얻어서 대단히 유명한 바이올린 교수의 제자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7세(1861년)부터 유럽 전역과 남북 아메리카를 돌며 연주여행을 성공하여 크게 인정받게 되었으며, 파가니니 이후 가장 명성을 떨친 바이올린 연주가이며 작곡가였다고 한다. 1908년에 향년 64세로 별세한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그의 연주를 감상한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기를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고 극찬하자 사라사테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무려 4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4시간을 연습한 나를 두고 연주에 천재라니?"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나, 좋다 싶은 예화가 있으면 내 컴퓨터 메모장에다 모아두었다. 그러다보니 그 수가 제법 많아졌는데 혹 수필쓰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예화수필을 몇 편 써 보았다. 내가 아직도 명품악기와 명연주를 같은 맥락에 두고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맹연습을 하지 않았음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몇 편의 예화수필 시리즈도 여기서 접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