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공부방

대장간 / 장원의

희라킴 2017. 5. 15. 10:17



대장간 


                                                                                                                                       장원의


 모래내 우리 사무실 건너편에 예쁜 이름을 가진 땡땡 거리가 있다. 6·25 뒤 허리가 끊겨 문산까지밖에 못 가는 애환을 안고 있는 경의선과 교외선 의정부행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차단기가 내려지면 땡땡 소리가 나기 때문에 붙여진 무인 건널목 이름이다. 차단기가 내려지면 강아지를 끌고가던 할머니, 갓난애를 안은 새색시,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꼬마들까지 마라톤 출발점에 모여 있는 선수들처럼 서서 기차가 꼬리를 감출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순박한 모습을 본다.


 모래내라는 것도 모래가 많은 내 라는 이름으로 한층 더 시골 냄새가 난다. 그 옆에 겨우 기어 들어갈 정도의 조그마한 모래내 대장간과 목공소가 자리잡고 있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쑥쑥 솟아 있는 아파트 숲 속에 낡은 대장간이 있어 마치 골동품을 보는 느낌이다. 문명에 밀려 옛 모습들이 없어지는데도 오늘까지 질기게​ 남아 있는 것이 대견스럽고, 아버지의 모습이 묻어 있는 것 같아 오래도록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끔 지나다가 고개를 숙이고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려서 보았던 대장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고향 사람을 만난 듯 친근감이 든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계를 이용하여 해머질을 하고, 풍무를 전기로 돌리는 것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장날 아버지를 따라 소 팔러 다녔다. 쇠전 말뚝에 매어 놓은 것으로 내 임무는 끝나고, 소 파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나는 쇠전 옆 골목 대장간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해머질, 담금질보다는 용광로에서 팥죽같이 흘러내리는 빨간 쇳물에 흥미를 가지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고철을 소형 용광로에 녹여 녹물을 빼낸 뒤 형틀에 붓거나 쇠토막을 불에 달구어 두드린다. 엿가락처럼 쇠를 자유자재로 주물러 괭이, 호미, 낫 등 연장을 만드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해머질을 하여 대강의 모양이 나오면 다시 물에 넣어 달구고, 다시 꺼내어 망치로 두들기며 담금질을 반복한다. ​


 담금질하는 솜씨를 보고 있노라면 보리 방앗간에서 어머니의 손놀림이 생각난다. 절구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어느새 어머니 손은 확 속을 한바퀴 휘젓고 돌아 나왔다. 손을 다치지 않는 것만도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기술자처럼 신기하게 보였다. 담금질하는 솜씨도 어머니 손놀림같이 붉게 달군 쇠와 속삭이듯 얼리고 달리는 것 같다. 붉게 달구어진 쇳덩이는 어찌나 탐스럽던지 호기심에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담금질을 잘 해야 알맞게 쇠의 강도를 맞출 수 있다. 쇠가 너무 세도 이빨이 잘 빠지고 너무 연해도 빨리 무뎌진다. 때로는 밖으로 가지고 나와 종이도 베어 보고, 연장을 사용하는 시늉도 내본다.


 이 과정에서 고철 고르기, 불에 달구기, 해머질, 담금질이 좋은 연장을 만드느냐 불량품을 만드느냐의 성공이 달려 있다. 어느 한가지만 잘못 되어도 좋은​ 연장이 나올 수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몇 번이고 담금질을 한다. 만들어진 낫을 연마기에 문질러 날을 세운다. 퍼런 날을 한 눈을 감고 햇볕에 비춰보고, 또 손으로 문질러 감촉으로 날이 섰는가를 가려낸다. 수도승이 도를 닦는 과정과 같기도 하고, 어떤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사제司祭처럼 엄숙하게 보인다.


 수필 쓰기도 대장간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쓰다가 버린 고철같이 남의 눈에 관심이 없거나 하찮은 일들이 소재로 선택되어 작가의 손에 들어가면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주며, 소재와 감정이 어우러져 용광로에서 쇳물이 끓듯 열병을 치르고 곰삭아야 한다​. 줄거리의 엮음, 수많은 교정과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쇠의 강약이 적당해야 하듯, 수필이 강하면 딱딱하고 연하면 맹맹하여 감칠맛이 없다. 이 과정에서 어느 것 한 가지만 잘못 되거나 빠져버려도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마지막으로 퇴고를 하여 원고를 보낼 때는 높은 산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지만, 딸이 시집가서 어떻게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


 쇠를 다루는 일이나 수필 쓰기에서 재료의 선택, 요리하는 과정,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한 분야에서 극단에 닿을 정도로 치열하게 몰두하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평생 글만 쓰는 사람이나 담금질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이나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낼 줄 안다.​


 한편, 수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글쓰기를 시작한 나의 무모한 짓이 마치 쇠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무작정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덤벼든 꼴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학과 거리가 먼 의학을 전공한 나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어렵고 그래서 한계를 느낄 때가 많고, 밑바닥이 보이는 것 같아 두려움까지 느낄 때도 있다. 수필은 삶이요, 수필에서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생활이 흐트러지거나 칼이 무디어졌을 때, 대장장이가 담금질을 하고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듯, 내 삶을 반추해 보기도 하거니와 산만해지는 마음을 곧추세우는 데 큰 힘을 북돋아주고 있다. 대 목수는 마음을 닦고, 선 목수는 칼을 간다고 한다. 난 선 목수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