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등
김은주
사람의 등에는 일 만 마디의 언어가 숨어 있다.
직립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산맥 같은 척추가 있어서 그런지 휜 등을 보고 있으면 참 깊고 무거워진다. 등의 반대쪽인 앞을 보면 눈이라는 창과 입이라는 발설의 기관이 있어 상대의 심중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있다. 한데 등은 아무런 신호체계도 갖추지 못했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묘한 힘이 있다. 돌아앉은 사람의 등줄기를 보고 있자면 상대방 삶의 이력이 한 눈에 다 보인다. 등은 단 한마디도 내게 직설화법으로 말해오지는 않지만 대화나 시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언어들을 내게 전해 준다.
나는 지금 서로 다른 세 남자의 등을 바라보고 섰다. 그 세 사람은 나를 등지고 서서 영가를 기다리고 있다. 시침과 분침이 나란히 합일을 이룰 때 위패에 지방을 봉(封)하자 싸늘한 밤공기를 안고 보이지 않는 기운 하나가 제상 앞에 와 앉는다. 기다리던 우리는 비로소 제사를 지낸다. 먼저 술잔을 올린다. 나는 몇 발짝 뒤 주방에서 소반가득 맑은 물 한 사발 떠 놓고 마른 주걱을 적시고 섰다. 젯밥 올릴 준비를 끝내고 서있는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나란히 선 삼대(三代)의 뒷모습이다.
칠순을 넘긴 아버님의 구부정한 등과 한창 갈기를 휘날리며 튀어 오르는 남편의 등, 이제 막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아들 녀석 등이다. 같은 피붙이의 등인데도 다 다른 모습이다. 구부려 절을 한다. 굽은 아버님의 등은 납작한 가오리 마냥 쉽게 바닥에 밀착 된다. 굽은 등이 엎드리고서야 제대로 펴진다. 자신을 낮추어야만 삶이 유해짐을 아시는 듯한 등이다. 그러나 남편의 등은 아직 설익다. 등짝이 아버님만큼 부드럽지 못하다. 절을 한답시고 엎드리긴 했지만 바닥으로부터 어설프게 들떠 있다. 앞으로의 세월이 저 풀기를 거둬 갈 것이다. 그 옆 아들 녀석의 등은 아예 엉덩이까지 들린 뻣뻣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다.
술이 두어 순배 올려지고 도레미로 높낮이가 다른 등이 절하기를 멈추면 메밥을 푸기 시작한다. 한 김 나간 밥을 일구지도 않고 고봉으로 정성을 다해 밥그릇에 담는다. 그릇 안보다 밖으로 더 솟아오른 밥을 주걱에 물을 묻혀가며 다독거린다. 밥그릇에 밥알 모이듯 식구들의 마음도 차지게 모여들길 바라며 따끈한 탕국까지 올리고 나면 얼추 내 소임은 끝이 난다.
아들 녀석은 무릎을 꿇고 할아버지가 내미는 술잔에 술을 따른다. 그때 잠시 옆모습을 본다. 아직은 풋 살구 같은 저 녀석도 언젠가는 거친 세상과 마주 할 날이 있으리라 거센 풍파에 갈고 갈리다 보면 할아버지의 등 모습을 반이라도 닮아 갈까 그 길이 멀기만 하다. 세월이 쌓이지 않고는 감히 할아버지의 등을 어찌 닮을 수 있으랴 다시 엎드린 아버님의 등이 숭고해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물 묻은 손을 닦고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제사가 진행 중인 대열에 끼여 두 손을 모으고 선다. 세 남자의 등과 나란히 서서 촛불에 일렁이는 옆모습을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뒤는 앞만 못하다. 앞은 밝고 전진적이며 긍정적이다. 그에 반해 뒤는 정지한 듯 습하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턱 없이 깊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섰을 때의 수많은 생각들은 그 사람의 빛나는 눈을 보는 순간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세 남자가 한발 물러서고 내가 술잔을 친다. 병풍을 배경으로 타오르는 촛불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향불에 술잔을 돌리고 수저를 옮겨 놓는다. 바스락거리는 치마소리를 들으며 두 손 모아 큰절을 올린다. 이제는 뒤에선 세 남자가 내 등을 지켜보고 섰다.
등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자의 것이다. 상대가 나의 등을 바라봐 줄 뿐이지 스스로 내 등의 모습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보여지는 내 등은 어떤 모습일까 중년의 고개를 넘어 선 볼품없는 아낙의 모습은 아닐까. 내심 든든하고 뚝심 있는 종부의 모습으로 비쳐지길 바래본다. 한 사람의 등을 보며 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절을 마저 끝내고 돌아설 즈음, 종일 음식준비로 고단한 내 등을 토닥이며 흘러내린 머리 몇 올 걷어 올려주는 손길이 있다. 누군가하고 돌아다보니 아버님이 웃고 계신다. 너무 많은 짐을 내 등에 올려놓으신 미안한 마음이 멋쩍은 웃음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서로의 등을 훤히 읽은 이 순간은 따로 말이 필요 없다. 무언의 기류가 서로를 넘나들며 고단한 마음자리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영가가 매를 드시는 동안 우리는 불을 끄고 잠시 물러나 있다. 잠시 후 헛기침을 두어번하고 철상(撤床)을 한다. 지방을 들고 골목 밖으로 나서는 아버님의 뒤를 식구 모두 따라 나선다. 열여드레 달빛이 머리 위에 쏟아진다. 지방에 불을 붙인다. 아버님은 흩어지려는 불길을 모아 하늘 위로 쳐 올린다. 소지종이는 나비 떼처럼 날아오른다. 좀 더 높이 하늘로 올리려는 아버님의 손길이 분주하고 바쁘다. 생의 뒤안길로 접어들은 듯 쓸쓸하기만 하던 아버님의 등이 하늘로 치켜 올린 두 팔로 인해 부채처럼 펼쳐진다. 헐렁해진 뒷춤과 굽은 등이 일순간 펴지며 달빛아래 환하다. 저 연세에 그만 하시길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식솔 모두 사라지는 영가를 향해 등 굽혀 인사를 한다.
머리를 숙인 세 남자의 등은 든든하고 환하다. 남자다움의 원천인 뱃심이 줄어들면서 아버님의 등을 받쳐주고 있는 엉덩이 살이 많이 빈약해진 것이 마음이 아플 뿐 두 남자는 그만하면 대들보로 손색이 없어 뵌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의 등이 오늘 보니 참 많이 닮았다. 그 중에 아들녀석의 등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 희망이다.
수필부분 심사평
"사색의 깊이·관찰력·안정감있는 문체의 조화"
심사 도중 문득 영랑(永郞) 시의 한 구절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서만 이룬 일이란/ 人生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북’)이 생각났다. 애초에 시인은 광대 소리와 고수 장단 간의 지극한 해조(諧調)의 경지를 그렇게 읊었겠으나, 그 경지가 어찌 소리판에만 국한될 것인가? 모든 예술이 다 그렇겠으나, 수필의 경우 그 조화의 경지는 더더욱 요구된다. 문학정신이 승하고 표현이 약하면 교술(敎述)에 흐르게 되고 표현이 강하되 정신이 얕으면 기술(技術)에 빠지기 십상인 것이 또한 수필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예선을 거친 열 분(공월천, 김가야, 김경애, 김미숙, 김정화, 박기준, 박정순, 이행순, 이현규, 허효남)의 작품 30여 편을 읽었다. 그러나 예의 ‘해조’,나 ‘조화’를 갖춘 작품은 흔치 않았다. 너무 무거운 작가정신에 짓눌려 바닷 속 심연에 가라앉거나, 반면에 일찌감치 겉 표현에 기울어져 부박(浮薄)에 흐른 작품도 적잖았다. 다시 고른 게 다음 여섯 편이었다.
‘이공송(泥工頌)’은 미장공의 장인정신에서 인본주의를 읽어내는 작가의 혜안이 남달랐다. 그러나 부엌문화에 관한 뒷부분의 서술은 사족처럼 여겨졌다. ‘사판(沙板)’은 우선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띠었고 전체 주제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장점은 다른 응모작 ‘무설전(無說殿) 앞’에서도 보이지만, 소재나 주제의 무게가 작품의 수준을 그대로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년의 추억’은 울림이 크고 문장에 향취도 깃들어 있어 수필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성의 치밀성이 조금 부족하고 더러 상투적인 표현이 눈에 띠기도 하였다.
‘등’과 ‘웃기 돌’은 동일 작가의 작품인데, 둘 다 일상적인 소재를 묵직한 주제로 승화시키는 사색의 깊이가 돋보였다. 또한 예리한 관찰력과 집중력 있는 구성, 그리고 안정감 있는 문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문장 상의 운치나 향취가 적은 것이 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 점도 이 작가의 의도적인 ‘감정의 절제’로 이해되었다. 수필의 품격이 작가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 작품의 품격은 그 ‘절제된 감성’에서 찾을 만하다.
‘등’의 경우가, 작가 정신과 작품 형식미의 조화에 있어, 영랑 말마따나 ‘숨결이 꼭 맞어서 이룬 흔치 않은 일’에 근접한 것으로 읽혀 이를 당선작으로 민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임명진
당선소감
"열심히 쌓아 올리고 긁어내 끝내 불을 만나러 갈 것이다"
흙을 주물러 그릇을 만든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만들다 보면 가끔 기울고 찌그러지기도 한다. 모양이 밉다고 해서 영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울면 기운대로 그 쓰임새가 따로 있고 그 멋 또한 남다를 때가 많다. 흙을 만지다 보면 사람이 유순해 진다. 흙에 말랑한 질감이 사람을 한없이 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을부터 만든 연지가 이제 막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도톰한 아래 부분 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연꽃잎처럼 벌어지는 모양새가 제법 볼만하다. 어지간히 말린 연지에 어제는 화장토 작업과 무늬를 새겨 넣었다. 새긴 무늬의 배경을 꼼꼼히 파내다보니 손가락에 분홍 물집이 잡혔다. 그러길 며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흙에 내부에서 목단꽃 몇 송이 불현듯 떠올랐다. 꽃잎의 배경을 꼼꼼히 파내고 나니 두둥실 꽃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흙이 꽃이 된 연지는 이제 곧 불을 만나러 가야 한다.
글쓰기는 일상과 떨어진 낯선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호흡 안에 있고 삶을 열심히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그곳에 존재하는 듯 하다. 서로 치대고 부둥켜안으며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피붙이들 삶이 내 문학의 기반이 된다.
아직은 여물지 못하고 말랑하다. 열심히 쌓아 올리고 긁어내며 내 몸에 날 선 조각도가 길을 낼 때까지 부지런히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끝내 불을 만나러 갈 것이다. 부족한 글에 애정을 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수필사랑 글동무와 홍 교수님께 이 기쁨을 전한다.
'문예당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0회 공무원 문예대전 금상] 봉노 / 안희옥 (0) | 2017.05.30 |
---|---|
[2011 청강문학상 수필 대상] 봄, 수목원을 읽다 / 윤승원 (0) | 2017.05.26 |
[제24회 김유정 기억하기 문예대전 최우수] 생의 반려 /김미자 (0) | 2017.04.24 |
[제5회 목포문학상 수필 대상] 산 / 신혜숙 (0) | 2017.04.16 |
[2016년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우수상]'이 완'의 까만 구두 / 손정숙 (0) | 2017.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