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김유정 기억하기 문예대전 최우수]
생의 반려
김미자
팔월 땡볕이다. 그늘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키가 큰 풀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삼麻이다. 삼들이 빽빽한 곳에 들어서니 온몸이 녹색으로 물드는 듯하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삼인가. 반가운 마음에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섰다. 위를 쳐다보니 여름 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생기가 넘친다. 눈을 뗄 수 없다. 삼에게 마음이 붙잡힌 것은 삼 속에 한 사람의 삶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기억이란 마음의 소리며 자취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삼의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열여섯 소녀의 삶은 삼과 함께 시작되어 삼과 함께 끝났다. 풋풋한 이파리와 싱싱한 줄기를 갖고 있는 삼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아린 색이 되었다. 남들이 삼의 색에 감탄할 때, 나는 삼의 냄새를 먼저 맡는다. 그 냄새에서 한 사람의 냄새를 기억한다.
엄마는 열여섯에 종갓집으로 시집 왔다. 외동딸로 자란 엄마가 겪어내야 할 종부의 삶이란 외로움과 두려움과 지난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농사일과 층층시하에 줄줄이 달린 시동생 뒷바라지에 열 번이 넘는 제사까지 감당해야 했다. 힘들다 어렵다 소리 내어 말 한 번 못하고 시집가면 그 집 귀신 되는 것이 여자의 미덕이었다. 사람은 어려울수록 사물에 정이 가는 법, 엄마는 시집살이 고단함을 삼삼기로 풀어나갔다. 엄마가 엉덩이를 땅에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쉼은 삼을 붙들고 앉을 때였다. 그 또한 노동이건만 엄마는 삼을 의지하며 살았다.
삼이 엄마 손에서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제삿날이다. 제사를 준비하는 엄마모습은 언제나 고요했다. 하얀색 수건을 머리에 쓰고 엄마가 장독대를 닦으면 우리 집보다 나이 든 늙은 감나무가 엄마와 장독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떡시루에서는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삼베의 품에서 푹 쪄졌을 구수한 떡 냄새는 어느새 우리 집안을 가득 채우고 담을 넘어 이웃집까지 갔다.
떡 냄새에 홀려 달려온 우리 형제들은 옹기종기 아궁이 앞으로 모여들었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두 명은 서너 살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로 갔고 남은 형제는 일곱이었다. 먼저 간 아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엄마는 씻김굿 하듯 광에서 마른 삼을 한 다발 들고 나와서 찬물에 풍덩 담갔다. 물에 불린 삼을 쪼개고 또 쪼개 뿌리를 부드럽게 다듬어서 가느다란 실로 만들었다. 축축한 실을 빨랫줄에 널 때는 햇살도 서러운 듯 눈이 부셨다.
삼이 마르면 전지에 걸었다. 삼을 하나씩 뽑아서 무릎 위에 얹고 손바닥으로 비비며 끝과 끝을 이었다. 가느다란 삼은 엄마의 손끝에서 하나의 실이 되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그 실이 먼저 보낸 자식에게 닿아 잡기를 바라는 듯 엄마의 해원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계속 되었다. 먼저 간 자식 둘은 가슴에 쟁여 묻었지만 남은 자식들은 끝까지 지키리라는 엄마의 단단한 인연줄 잇기 끄트머리에 내가 있다.
마을의 아낙들은 여럿이 모여서 길쌈을 했다. 그런데 엄마는 늘 혼자서 했다. 엄마의 방에는 엄마와 삼만 있었는데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방이 꽉 차 보였다. 삼 냄새가 방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엄마 몸에선 삼 냄새가 났다. 어릴 때는 다른 엄마들 몸에서도 삼 냄새가 나는 줄 알았다.
가끔 이웃 아낙이 찾아와서 속상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 놓고 갈 때도 있었다. 엄마는 길쌈을 하면서 들어주기만 했다. 어떤 날은 전지에 걸린 삼이 여러 번 바뀔 때까지 아낙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아낙은 속이 다 풀리면 엄마처럼 몸뻬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고요히 삼을 삼았다. 전지에 걸린 삼이 다른 삼으로 바뀔 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 삼삼기는 엄마뿐 아니라 마을 아낙들의 속풀이였을지도 모른다.
마당에는 하얀 실이 낭창낭창 흔들렸다. 베날기를 하는 날이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쓴 엄마는 단아했다. 솔을 들고 하얀 실에 노란 치자풀을 촘촘히 발랐다. 엄마의 손에 잡힌 노란색 주름은 내 마음에 엄마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마당 가득 개나리가 핀 듯 노랗게 변했다. 노란 실 아래에서는 마침맞게 따뜻한 숯불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별것 아닌 것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듯이 이날의 풍경이 엄마의 삶이 되기를 바랐다.
삶은 생각처럼 되어 주지 않았다. 엄마가 누런 실타래를 들고 나와서 양잿물에 담갔다. 아버지가 마을의 젊은 아낙에게 마음을 뺏겼다는 것을 알던 날이었다. 중년의 엄마는 십 년은 더 늙어보였다. 쪽머리는 흰머리가 무성하고 얼굴엔 로숀 한 번 바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가 다른 아낙을 마음에 품었을지도 모른다. 속을 태우던 엄마가 양잿물을 먹고 죽겠다고 해서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언니들이 말려서 양잿물을 먹지는 못했다. 엄마는 하얀 실타래로 변한 삼을 빨랫줄에 널었다.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일인데 엄마라고 별 수 있었을까.
그 일을 겪고 나서 엄마는 오래도록 병원 신세를 졌다. 화병은 현대 의학도 어쩔 수 없는 분야였지만 가슴을 툭툭 치며 통증을 호소하는 엄마를 그냥 둘 수 없는 것은 자식 된 마음이었다. 날마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엄마를 달랬다.
“언능 집에 가서 삼 삼어야 헌당께.”
그제야 텅 빈 집에 혼자 남아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삼이 생각났다. 엄마를 위해 베틀이라도 번쩍 들어다가 병실 가운데 놓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침대 기둥에 삼줄 하나도 걸어주지 못했다. 몸도 회복되지 않은 엄마를 퇴원시키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성치 않은 몸으로 땡볕 아래에서 아버지의 구멍 난 런닝구가 흠뻑 젖도록 일을 했다. 나는 시원한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져 밭에 있는 엄마를 잊었다. 밤이 되면 엄마는 베틀에 앉아서 늦게까지 베를 짰다. 엄마를 생각하면 구멍 난 런닝구와 자장가처럼 들었던 베 짜는 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린 풍경이다.
엄마가 소녀처럼 들뜬 날이 있었다. 손수 삼은 삼으로 짠 삼베를 들고 시장에 가는 날이다. 삼베를 팔아서 사야할 것들을 생각하며 밤새 잠을 설쳤는지 엄마는 첫새벽에 일어났다. 머리를 감고 참빗으로 가르마를 가른 뒤에 쪽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첫차를 타고 시장에 갔다. 그런 날은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당산나무 아래에서 장에 가신 엄마가 오기를 종일 기다렸다.
해가 넘어서야 엄마 모습이 보였다. 그런 날은 삼베를 한 필도 못 팔고 오는 날이었다. 엄마는 시장 바닥에 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삼베를 팔지 않았다. 삼베를 헐값에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조삼베에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싫었던 엄마는 당신이 원하는 값을 받기 전에는 삼베를 팔지 않았다. 평생 어떤 것에도 욕심을 내지 않았던 엄마였다. 그런데 삼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특별했다. 엄마에게 삼은 생의 반려였고 삶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흔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때까지 엄마 곁을 함께 했던 것은 자식이 아니라 삼이었다. 그런데 평생 삼과 함께 했던 엄마가 당신의 수의 한 벌 지어놓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남의 수의를 위해 아흔이 되도록 삼과 베틀을 떠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 올 한 올 당신의 손끝에서 태어난 실은 삼베가 되어 누군가의 옷이 되고 이불이 되고 수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을 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자신의 손에서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손에서 회귀되는 것이란 것을 엄마는 알았던 것일까. 엄마는 인조수의 한 벌만 가볍게 입고 떠났다.
팔월 땡볕에 익어가고 있을 수많은 삼은 또 누군가의 삶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연녹색으로 물든 귀를 열고 눈을 감는다. 세상 곳곳에서 삼처럼 익어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아슴아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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