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완'의 까만 구두
손정숙
‘이 완’은 좀 들떠 보였다. 여느 때 같으면 병실 문 어귀에 서 있어야 할 그가 현관 앞 휠체어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릎 위엔 얇은 뜨게 보를 접어서 덮고 두 손은 그 위에 얌전히 얹은 채 조용한 그의 모습에서 행복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나란히 내려놓은 두 발에 까만 구두가 5월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아들이 차를 가지고 오는 동안 ‘그레샤’를 만나러 간다며 연상 싱글벙글인 것이다. 그때야 나는 그 옆에 붙어서 있는 ‘잭’을 알아보았다. 어찌 보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듯도 하고 보내기가 서운한 듯 그늘이 스치는 표정이었다. 문득 이 돌문을 처음 들어서던 때가 그림처럼 스쳤다. ‘이 완’의 본명은 ‘라일리’다. 알파벳순으로 붙여진 이(E)병동 1번째 침대 주인이라서 간호사나 영양사나 쉽게 'E-1'(이-완)이라 부르는 것이 그의 이름이 된 것이다. 다섯 사람이 들어있는 넓은 병동의 5번째 침대가 ‘잭’의 자리다. 원래 상이군인 병원이었던 ‘웨스트민스터’ 병원은 멀게는 제2차 세계대전 때로부터 가까이는 한국전 참전용사까지 입원해 있었다. 한때는 3, 4백 명의 환자가 있었지만, 현재는 백여 명의 환자와 참전용사의 연고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 일종의 장기요양노인병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주정부 지원 운영의 병원으로 시내에 ‘빅토리아병원’이 있고 몇 개의 소규모 의료양로원시설이 같은 관활 하에 있어 의사나 다른 직종의 직원들이 순환하면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빅토리아병원’이 그중 일반 종합병원으로 ‘웨스트민스터’나 다른 시설에서 중환자가 생기면 빅토리아병원으로 보내진다. 암 병동이나 심장병 치료, 연구실도 그곳에 있다. ‘이-완’과 ‘잭’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그들을 만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자 오랫동안 눌러왔던 학구열이 충동질 치기 시작하였다. 미시간 테스트, 토플테스트. 요구하는 대로 어려운 영어시험을 모두 패스하고 어렵사리 가정대학 식품영양학과에 등록하였다. 항상 곁에서 격려해주던 남편마저도 포기하라고 할 만치 학업은 어려움의 중첩이었다. 밤잠을 줄이면서 노력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식품과 음식 이름과 영양관리였다. 식품 재료가 어떤 것인지, 음식 이름이 무엇인지 실물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친절한 과 주임 교수가 우선 식품명이라도 친근해지라며 병원에 파트타임을 주선해 주었다. 특별배려로 정규직 파트타임이면서 모든 혜택이 주어지고 근무시간만 주 20시간(풀타임은 주 40시간) 하는 특수직이었던 것이다. 학교수업에 20시간 근무까지 하게 되었으니 바람만 세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고들 회상한다. 처음 하게 된 일은 특별식 환자들의 식단 관리였는데 아침 열 시경이면 특수 환자들의 식사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병동을 돌게 된다. 당뇨병환자는 대개 하루에 5번 나누어 식사하기 때문에 이 시간이면 간식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E병동에 들어갔더니 한 사람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고 또 한 사람은 그 앞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구두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나를 보자 침대에서 먼저 벌떡 일어나더니 ‘하이 큐 트!’(cute. 귀염둥이)하며 앉은 사람 어깨를 탁 쳤다. 그도 벌떡 일어서더니 ‘야! 큐 티’하며 달려왔다.
그 후로 내 이름은 ‘큐 티’ 혹은 ‘키 티’였다. 그들의 이름이 나에게 ‘이-완’(E-1)이고 ‘잭’이 된 시초이기도 하였다. ‘이-완’은 피부와 머리털이 온통 희었다. 나이는 알 수 없으나 피부가 맑고 투명하여 온몸에서 정갈한 기품이 배어 나왔다. ‘잭’은 엇비슷한 나이로 보였으나 순수한 백인은 아닌 듯 햇볕에 그을린 흙색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이-완’의 구두를 닦는 것이 일과인 듯하였다. 별로 신지도 않는 구두를 정성을 들여 닦다 보니 까만 구두는 흑진주처럼 반짝거렸다. 그가 구두를 닦는 것을 옆에서 보면 얼마나 엄숙한지 꼭 사병이 상관의 구두를 닦는 것처럼 책임완수의 결의까지 엿보였다. 어디 전투에서 상관을 모시던 습성이 몸에 밴 채로 머리에 부상을 입은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정성 들여 닦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구두를 ‘이-완’이 신고 걷는 모습을 보는 것인 듯하였다. 가끔 아침에 E병동에 가면 구두를 닦는 ‘잭’ 주변에 서, 너 명의 환자들이 모여서 아주 재미있게 바라보는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잭’의 구두닦이는 E병동뿐 아니라 다른 병동에도 알려져서 일부러 구경 오는 환자들의 소일거리 구실도 하였다. ‘이-완’은 정말 상위군관이었는지 항상 조용하고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구두를 닦아 앞에 놓으면 함박웃음을 띠고 신은 뒤 어김없이 문 앞으로 걸어가서 누군가를 마중하는 자세로 꼿꼿이 섰다. ‘그레샤’가 온다고 했어’.
그의 부인 ‘그레샤’는 딱 한 번 병실에 온 적이 있었다. 역시 조용한 하얀 할머니였다. 몸이 불편하여 집에서 요양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지만 그 후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 20분 정도 서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도로 제자리에 돌아와 구두를 벗어 침대 밑에 들여놓는 것이었다. 살짝 궤도를 벗어난 사고력을 지닌 게 아닐까 의심되지만 참 곱게 늙었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육신에 정력이 왕성하게 넘치든 젊은 날에는 애국과 애족 그리고 인류의 정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우던 용맹스런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게 부드러운 성품이 전해졌다. 한번은 저녁 간식 시간에 E병동에 간 일이 있었다. '이-완‘이 한 환자에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이고 있었다. 그 환자는 무슨 강박관념에 시달리는지 ‘노!, 노!’ 하는 부르짖음이 복도에까지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 지르다가 갑자기 흐흐흐 울기까지 하는 환자였다. 등이라도 다독거려 주듯 다정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넣어주는 노인과 울다 그친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받아먹는 두 노인의 모습은 한순간 눈시울을 젖게 하였다. 어쩌면 육신의 종착역일지도 모르는 흰 벽의 공간에서 인생을 재는 어떤 저울도 필요 없는 순수한 감정의 교류는 천국의 모형을 보는 듯 뭉클한 감동마저 주었다.
그 무렵, 정부에서 ‘웨스트민스터’ 노인병원과 ‘빅토리아병원’을 한데 합쳐 대형종합병원 ‘빅토리아병원연합’을 설립하여 ‘웨스트민스터’ 병원부지에 증설하는 계획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 ‘웨스트민스터병원’부지 남쪽에는 ‘종합양로병원’을 건축하고 환자들을 이송하는 방안도 동시에 실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사와 간호사 영양사와 모든 의료직원의 이동이 예상되어 병원은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에 쌓여있었다. 학기말시험을 치르느라 며칠간 결근을 하고 오랜만에 E 동에 올라가니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완’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바로 어젯밤에 ‘빅토리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고 하였다. 풀이 죽은 노인들은 퀭한 눈으로 슬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주인 없는 ‘이-완’의 침대 앞에 꿇어앉아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잭’의 눈은 젖어 있었다. ‘이 완’이 ‘그레샤’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웅얼거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주인 없는 구두를 정성껏 닦고 있는 ‘잭’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코끝이 찡해지곤 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날 오후에 병원에 나갔더니 E병동에서 ‘큐 티’를 찾는다고 빨리 가보라고 하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떤 소식이 무서워져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속마음을 읽을 수 없는 주임 영양사는 ‘큐 티’가 올라간다고 연락했으니 어서 가라며 등을 밀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슬로프를 돌아 E병동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이완’이 떠난 지 벌써 일 주일이나 되었는데 생각하니 눈앞이 흐려졌다. D동을 막 지나 E동으로 향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큐 티’하며 달려오는 노인들의 맨 앞장에 ‘이 완’이 있었다. 너무 하얘서 웃는 입과 눈만 보이는 그의 발엔 까만 구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완’은 굉장히 넓은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빅토리아병원’에서 퇴원한 기념으로 딸기 상자를 밴으로 잔뜩 실어다 병원 친구들께 돌리는 중이라고 하였다. 얼른 두 상자를 들어다 주며 반가워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마른 과일처럼 조글조글한 얼굴들이 어깨를 얼싸안고 흔들면서 웃어댔다. E병동에 온 후 아니, 병원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렇게 즐거운 웃음잔치는 이때 처음 보았다. ‘이 완’의 아들이 차에서 내려 악수를 청하였다. ‘이 완’ ‘그레샤’ 만나게 돼서 기쁘지요?’ ‘이 완’은 크게 함박웃음을 보냈지만, 아들도 간호사도 마른 미소만 살짝 비쳤다.
오월이 오면, 그리고 딸기가 빨갛게 익는 계절이 되면, 내 눈앞엔 어김없이 하얀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한 ‘이 완’이 찾아들고 눈부시게 반짝이던 까만 구두가 떠오른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이 완’이나 ‘그레샤’나 ‘잭’이나 다 한 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까만색이란 빨강. 노랑. 파랑.. 아픔과 고난과 만물의 모든 색을 다 흡수한 색이라고 하지 않는가. 구슬처럼 뭉친 색깔들이 영롱하게 반사되어 오월의 하늘이 그들 모두의 미소처럼 찬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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