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2014년 동리목월문학 신인상] 착각 / 김용숙

희라킴 2017. 4. 2. 19:29



[2014년 동리목월문학 신인상]



착각


                                                                                                                        김용숙

 

  정분이 두터운 부부를 보았다. 일곱 시가 조금 넘으면 늘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집 앞을 지나갔다. 지긋한 나이에 나란히 헬멧을 쓴 것이 친정아버지가 어머니를 태우고 다니던 모습과 같았다.

 

  아버지는 장날마다 어머니를 뒷좌석에 태우고 모롱이를 넘어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지나 읍내 5일장에 가셨다. 텃밭을 일구어 나온 푸성귀를 팔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환갑이 다 되도록 누려보지 못한 부모님의 데이트 날이기도 했다. 아침이면 동동구루무를 서로 나누어 바르고 집을 나서며 어린아이같이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국밥집에 들러 그동안 전대에 모아 두었던 돈으로 엄마랑 식사를 하고 오셨다. 그 날은 엄마가 평소 외식이란 걸 모르다가 특별히 대접받는 날이었던 것이다. 부러움보다는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서 살뜰한 정이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 아저씨의 허리를 꼭 부둥켜안고 따개비처럼 착 달라붙어 다녔다. 든든한 남편이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듯 바라보는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두 분은 어느 날 나란히 우리 가게로 들어왔다. 서로 다정스럽게 지인에게 선물할 아기반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나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그간에 느꼈던 이야기를 건네며 융숭하게 대했다.

 

  얼마 뒤, 늦은 가을날 아주머니 혼자 가게를 찾았다. 반지를 구경하러 왔다며 이것저것 골라 만지작거리고 값을 묻고는 망설이다가 돌아갔다. 평소 다정해 보이는 부부였기에 남편에게 선물하는 것 같아 값을 낮추어 말하였지만 버거운 액수이었던가보다. 한 달쯤 지나 아주머니는 다시 들렀지만, 전에처럼 값만 묻고 돌아갈 뿐이었다.

 

  귀금속이라 이익을 덜 남긴 값을 권한다 하더라도 서민들에게는 결코 만만찮은 액수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군다나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며 손해만 가지 않는다면 잘 해주려고 했다. 언젠가 다시 들리게 되면 선물하는 심정으로 저렴하게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아주머니를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란히 부부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일 년이 훨씬 지나도록 부부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아저씨가 낯선 여자를 데리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는 헌칠한 키에 세련된 옷차림으로 전에 보았던 아주머니에 비하면 훨씬 젊고 발랄했다. 둘은 고급 패물을 이것저것 고르다가 고운 눈빛을 주고받더니 단박에 두 세트를 결재하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깜작 놀랐다. 그처럼 금실 좋아보이던 아저씨가 낮선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지난번 아주머니는 몇 번이나 들러 고민만 하다가 되돌아갔었는데 젊은 여자는 반지와 목걸이는 물론, 귀걸이와 팔찌까지 쉽게 결정했으니 말이다.

 

  머릿속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지금껏 금실 좋은 부부처럼 행동한 것은 다 연기였단 말인가. 아기반지 사러 왔을 때의 다정한 모습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거래는 했지만 복잡한 속내는 떨떠름했다. 아저씨에게 면전에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자가 보는 앞이어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급할수록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옛말이 생각나 애써 참았다.

 

  그 후로 아저씨는 자주 그리고 혼자 오갔다. 따개비처럼 붙어 다니던 아주머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도저히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는 큰 맘 먹고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며 커피 한 잔 드시고 가라고 권했다. 남자는 예의를 표하는 목 인사를 하며 한쪽 옆으로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들어왔다. 나는 음료수를 건네며 따지듯 물었다. " 전에 아주머니는 두 번이나 들러 값만 물어보고 되돌아 가셨는데 아저씨는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연입니까?”

아저씨는 잠시 난감한 표정이다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먼 산을 한동안 바라보고 들어와 조용히 의자에 않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부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가족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다시는 못 올 먼 곳으로 가버렸다는 거였다. 씁쓸하고 미안했다.

 

  남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자였다. 집이 두 채나 되고 월수입이 상당한 부유층에 속했다. 부부는 새로 짓는 아파트 현장을 찾아다니며 인부를 두고 도배 일을 했다. 아주머니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알뜰해서 패물하나 옷가지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오직 일만 하다가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렸다는 거였다.

 

  고생만 하다가 간 그 여자의 삶이 불쌍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몇 번이나 망설이다 끝내 포기한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그렇게 금실이 좋았어도 남편은 일 년이 못 되어 새 여자를 맞은 것을 알기나 할까. 여자들은 왜 천 년 만 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아등바등 하는 것일까.

 

  친정엄마도 아들딸 다 결혼시키고도 환갑이 넘어서까지 푸성귀를 파는 고생을 했다. 장터 국밥 값을 아끼느라 아버지가 함께 가야 겨우 드실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시다가 칠십을 채 넘기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착각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인가 보다.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이 중요하겠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지혜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기보다 건강을 챙겨가며 내가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에 너무 인색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건너편 옷 가게 쇼윈도를 지키는 마네킹이 내 속내를 알아 챈 듯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