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2016 제4회 등대문학상 수필 우수상] 바다와 어부 /조미정

희라킴 2017. 3. 29. 13:36


[제4회 등대문학상 우수상] 

바다와 어부

                                                                                                               ​조미정

    

  바다가 그르렁거린다.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포구로 들어오는 어선의 낡은 뱃고동 소리다. 풍랑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들이 알리는 무사기환의 고함일까. 풍어를 기원하며 대나무 가지를 꽂은 뱃머리에 안도의 한숨이 사푼 얹어져 있다. 바다에서 건진 전리품을 하나둘씩 풀어놓으면 바닷가 작은 포구는 물고기비늘 같은 생기로 출렁인다.

 

 본격적인 멸치털이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흥명호 선원들의 손길이 바쁘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자마자 받침그물을 내려 배와 부두 사이에 펼쳐 놓는다. 바닷물에 반쯤 잠긴 밑 그물이 자리를 잡으면 이번에는 갑판 위에 산처럼 쌓인 그물을 끌어내린다. 구멍이 촘촘한 그물에는 어른 손가락 굵기만 한 멸치가 빽빽이 머리를 박고 있다.


 이른 봄의 바다는 온통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먼 바다에서 겨울을 보냈다가 연안으로 돌아오는 멸치 떼가 수면 바로 아래에서 유영하기 때문이다. 바다 속에는 어부들이 던져놓은 그물이 긴 수건처럼 펼쳐져 있다. 수백 개의 섬 사이를 빠르게 흘러가는 조류를 타고 다니던 멸치는 그대로 그물에 꽂힌다. 그물을 잡아당기면 울창한 바다 숲이 줄줄이 끌려나온다. 수천수만 개의 이파리가 꼬리를 파르르 떨며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이다.


 흥명호 선장인 이모부는 봄철 한 때 바짝 멸치 어장을 찾아 헤맸다. 벨을 울려 멸치 떼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면 어부들은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그물을 조류 속에 차곡차곡 흘려보낸다. 부표가 달린 그물의 밑에는 묵직한 봉돌이 달려 있어 그물이 수직으로 설 수 있게 잡아준다. 그물이 바다에 잠긴 모습은 억척스런 어부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바다의 힘줄이 하얗게 불거지도록 안간힘을 쓴다.


 이모부는 처음부터 배를 탄 것이 아니었다. 조선소에서 배를 설계했다. 무슨 일인지 배 만드는 일을 그만 둔 후에는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하지만 힘든 일이 많았다. 지금이야 첨단화된 레이더장치로 어장을 찾아내지만 처음에는 직접 해도를 보며 배를 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목숨을 잃어버릴 뻔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겉보기에 편평해보여도 남쪽의 바다에는 여러 무더기의 섬이 가라앉아있다. 산맥도 있고 골짜기도 있다. 안개 속에서 울퉁불퉁한 암초에 배가 걸터앉으면 배는 꼼짝없이 막막한 바다에 갇힌다. 배의 기계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정처 없이 해류에 떠밀려간 경우도 있었다. 바람이 불면 지아비 걱정에 바다만 바라보는 것이 어부의 아내가 아니던가. 그때마다 이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뱃사람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제…….”


 이모의 몸속에 멸치처럼 어쩔 수 없는 회귀본능 같은 것이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 식구를 따라 도시로 나왔던 이모는 혼기가 꽉 차자 고향의 바닷가로 돌아가 버렸다. 희멀건 도시 사내대신 구릿빛 피부의 어부를 남편으로 맞이한 것이다. 어촌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목숨을 담보로 배를 모는 이모부의 안전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바다로 떠다니는 이모부가 이제는 육지에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부터 이모가 근처 선박수리단지에서 선박에 페인트칠하는 일을 배운다는 것을 귀띔으로 들었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바다에 드리운 그물처럼 육지에서도 묵묵히 삶의 길을 내는 듯했다. 여릿여릿하던 이모가 억척스러운 어부의 아내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다.


 이모에게 뒤질세라. 바지런한 이모부는 먼동이 트기도 전에 뱃고동을 울리며 바다로 나간다. 눈꺼풀에 내려앉는 고단한 삶의 무게는 고개를 흔들어 힘차게 떨쳐낸다. 힘들게 던진 그물이 비어있는 채로 올라와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그물을 던졌다. 그러면 바다도 있는 요량껏 고기를 내어준다.


 뼛속부터 바다사람이 될 유전인자를 타고 났나 보다. 거듭되는 시련에 다시는 배를 안 타야지하고 마음먹다가도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키를 잡는 이모부는 어김없이 바다사내다. 해풍을 맞아 검게 거슬린 얼굴에서 풍랑을 이겨낸 들큼한 바다 냄새가 난다. 그런 이모부를 묵묵히 배웅하며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이모는 바다의 망부석일 것이다.


 바다가 무섭다고 하면서도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 하고 사는 것을 보면 이제 바다와 한 몸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바다가 내어준 만큼 거둬들이는 삶은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이들에게 묵직한 물음표를 던져준다. 이모부부도 한 때 망망대해에 표류했던 적이 있다. 근래 어획량이 부쩍 줄어들었던 탓이었다. 더 많은 고기를 탐내어 풍랑이 치는 바다에도 나갔지만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기름 값도 못 건지다보니 며칠 째 닻을 내리고 있는 날도 있었다.


 물고기 대신 조난을 당한 어부의 시신이 그물에 걸려온 이후부터 이모부의 수심은 더욱 깊어졌다. 바다로 나갔던 배가 비어있는 채로 돌아오면 한껏 부풀어 올랐던 어부들의 어깨도 무겁게 처진다. 그런 날의 이모는 가슴을 누르며 부둣가에 앉아 찢어지거나 구멍이 난 그물을 손질했다. 부둣가에 그물을 내려놓고 한 코 한 코 정성들여 그물을 깁는 것은 바다를 대하는 아내의 마음이었다


 저어도저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깊은 해저로 가라앉을 때 날것으로 말을 걸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바다다. 바다의 모퉁이는 유난히 조류가 세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 급격한 물살을 만들기 때문이다. 삶의 파도에 휩쓸려 아등바등하던 삶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 순간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온다. 이모부부도 엎어지고 깨어지며 참고 견디다보니 젓갈처럼 곰삭아져 갔으리라.


 가만 생각해보면 그물을 던지는 일은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만선일 때도 있지만 빈 배일 때가 더 많다. 만선이 되었다고 해서 삶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잡는 것보다 몇 배로 고된 멸치 터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은 고난의 반복이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데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맥이 빠진 다음 날도 어부들은 뱃머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어김없이 넓고 넓은 삶의 바다에 그물을 드리우는 것이리라.

 

 흥명호의 멸치털이는 밤이 이슥하도록 끝이 날 줄을 모른다. 바다를 떠나 살 수없는 숙명을 지닌 어부들이 도리깨질을 하듯 털어내는 것은 멸치가 아니라 삶의 꺼풀이 아닐까 싶다. 흥얼거리는 노동요 속에 어깨를 짓누르던 부산물은 다 떨어져나가고 싱싱한 살만 남아 짭조름하게 소금에 절여진다. 그 옆을 바지런한 이모는 부지런히 멸치를 주워 담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모 부부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항구를 슬며시 빠져나온다. 내가 모르는 바다에서의 삶. 그 험한 삶의 한 모퉁이나마 살짝 엿본 것 같다. 가슴이 싸하다. 문득 뒤돌아보니 그물이 한번 출렁일 때마다 텀블링을 하듯 봄밤이 튀어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