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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분석 / 이상렬

희라킴 2017. 3. 30. 09:54


2017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분석 

이상렬

2017 계간 동리목월 봄호

 

 타인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꿈에서 조차 글 아니고는 다른 생을 생각해보지 못한 글쟁이들이 명운을 걸고 만든 창작물에다 금을 긋고 셈 할 자격자는 없다. 완벽한 작품이란 없듯이 완벽한 분석과 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수필은 작가의 고백적 성격이 강하기에 좋은 작품안 좋은 작품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곤혹스럽다. 다만, 분석의 지평을 넓혀 단순히 창작방법론에 머물지 않고, 텍스트의 현실과 더불어 세계를 이해하고 또 접근하는 방식의 여럿 길을 보여주는 시도는 필요하리라 본다.

 문학상 심사나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주관적이라는 한계에 부딪친다. 그러니 수필의 완성도를 말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개인의 견해나 관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본 요구되는 수필 문학의 미학적 자격은 갖추어야 한다. 가령, 주제는 굳건하게 서 있는가. 문장은 예술적 가치를 지녔는가. 구성은 주제를 향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소재는 주제를 정확하게 담아내는가. 발상은 새로우며 형상화가 이루어졌는가. 이런 문학 형식이라는 카트라인을 통과해야 한다.

 

1. 작품 읽기-결 따라 읽기, 결 거슬러 읽기

 

 6개 신문 여섯 당선작을 분석해 보았다. 동양일보 당선작 신정애의먹감나무, 대구매일신문 당선작 김순애의나침반, 제주영주일보 당선작 김지희의노루발,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송귀연의비설거지, 전북일보 당선작 허정진의요양원 가는 길, 그리고 경남신문 당선작 안은숙의반쪽 지구본이다.

 당선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결정하는 최종적 기준은 문장의 예술적 차원이라는 것을 이미 각 신문사마다 심사를 통해 검증되었다. 그렇다면 문장론 이상의 그 무엇에 관한 것을 찾아야 한다. 작품을 읽을 때 결을 따라 읽는 방식이 있다. , 작가가 말하려 했던 부분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는 텍스트 자체에 집중할 수는 있다지만 오히려 창작 방법과 분석에만 매여 자칫 고정불변의 굴레에 갇힐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작품과 독자 간의 상호소통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반면, ‘결을 거슬러 읽는 방식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고 인지하지도 못한 부분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단순하게 텍스트의 의미에만 매달라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깊게, 넓게, 사방으로 본다. 당연히 입체적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독자에게 읽혀지는 것이 되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심연과 세계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작품, 그렇게 보고자 한다.

 

2. 작품 분석

 

김순애의나침반

 

 이국땅에서 혼자 떨어져 사는 남편의 여행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나침반이었다. 외롭고 지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낯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구입했다던 나침반. 작가는 나침반을 보며 남편의 삶을 수필로 조명한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흔들렸던 방향을 잡았고, 또 누군가의 인생 목표가 되기도 했다. 나침반의 궁극적인 방향을 이렇게 말한다. ‘그의 나침반 바늘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바로 이곳, 가정이었다고 결론을 맺는다.

 대상(나침반)을 삶(남편)에다 비유했다. 적절한 연결이다. 화소 선택의 적합성뿐만 아니라 동원된 화소끼리의 상호 결속력까지 탄탄하면서도 자연스럽다. 특히 소재 선택에 있어서 독특성만이 작품의 가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적절성이다.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자연스러움을 확보하지 못할 때면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예술인들은 새로운 발상에 대한 강박증상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말하는 '참신함'이라는 것이 획기적인 발상으로 독자에서 충격을 주고픈 통속적 발현은 아닌지, 그것이 단한 번, 일회성에 머물러 버려질 수 있다는 우려는 해보지 않았는지 말이다. 새로움이 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진실과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침반을 가만히 놓아두면 바늘은 저절로 북쪽을 가리킨다. 이게 자연스러움이다. 평소 보지도 듣지도 못한 희귀한 소재 하나를 선택하여 인생의 깊이나 존재의 궁극적인 의문들과 연결시킨다는 것, 마치 손으로 나침반 바늘을 억지로 북쪽 아닌 곳으로 당기고 있는 것과 같이 부자연스럽다.

 이와 같이 수필에서 자연스러움은 생명과 같다. 진정성은 자연스러울 때 드러난다. 작위적이다,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진실성은 의심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김순애의나침반은 수필의 자연스러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김지희의노루발

 

 노루발, 재봉틀로 박음질 할 때 옷감이 밀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기능을 하는 부속이다. 생김새가 중간이 갈라지고 끝이 살짝 들려 노루의 발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재봉틀 노루발이 옷감을 누르듯,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을 꾹꾹 누르며 견뎌냈다는 내용이다. 노루발은 할머니의 삶을 불러내는 도구로서 당시 할머니의 지난한 삶과 시대상을 그려놓았다. ‘학도병이던 아들까지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했던 삶이라든지, ‘마을초입의 기생집에 들러 바느질거리를 받아왔던 내용은 당시 사회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수필이라 하겠다.

 눈여겨 볼 점은 소재가 갖는 독특한 이미지를 삶의 모양과 연결시켜 표상했다. 어떤 사물을 소재로 선택할 때 속성과 본성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옷감을 누르는 노루발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할머니의 슬픔을 누르고, 엄마의 가난도 누르고, 또 산중턱을 겅중겅중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노루까지 표현해냄으로 시각적 심상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이미지를 문장에다 녹였다. 다음의 문장이다. ‘외로움과 허망함을 새끼손가락만한 그걸로 눌러 가슴 한켠에 꼭꼭 여미며’ ‘늙은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가끔씩 멈추어 괜찮아, 괜찮아하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서툰 재봉질로 가슴 속 맺힌 것들을 풀어내어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해보는 것등 끝까지 그 이미지를 언어 속에 상황화시켜 넣으므로 미학적 수준을 높였다.

 

신정애의먹감나무

 

 오래된 나무의 심재, 검은 무늬가 들어가 있는 먹감나무를 척추장애인인 작은아버지의 삶에다 비유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먹감나무 속, 검은 멍 자국 같았던 자녀를 품고 살았던 할머니다.

 작은아버지와 결부되어 표현된 할머니의 심정에 대한 해석이 돋보인다. 다음의 문장이다.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담채화이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검은 멍 자국이 무늬가 되기는 어렵다. 나무는 고통을 제 안으로 온전히 껴안은 후에라야 비로소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작가가 구사한 언어의 교직을 보라. 장애를 가진 작은아버지라는 불완전한 이미지, 먹감나무의 검은 무늬, 할머니의 상처로 얼룩진 가슴으로 연결되고 있다.

 문학성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문학은 언어 그 자체를 전경화시키는 작업이다. , 언어라는 매개체를 비일상적으로 사용하여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언어 조직화의 과정이다. 결국은 문학적 가치를 따지는 최종 기준은 언어의 미학적 차원이다. 그런 점에서 신성애는먹감나무는 문장에 관한한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쉬운 점 두 가지가 있다. 문장의 리듬감과 무드가 뛰어난 것에 비해 한두 군데 실수한 듯한 단어배치가 있었다. 또 한 가지는 결미에 할머니의 아픔을 조개 속 진주로 빗댄 것은 흔한 비유라 작품의 개성을 떨어뜨렸다.

 

송귀연의비설거지

 

 설거지는 비가 오거나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두어들이거나 덮는 일이다. 비설거지에 담긴 메시지가 분명했다. 삶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주제성이다. 참신한 소재 선택과 다양한 화소의 적절한 배치, 산문정신에 충실한 안정감 있는 문장, 이것저것 따져 보면 균형이 잡힌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미진한 점이 보인다. 비설거지를 설명하는 부분과 예시를 들었던 농가월령가의 소개하는 대목에서 면밀하지 못했다. ‘비가 오거나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두어들이거나 덮는 일은 인터넷 정의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거나, 사전적 정의를 내려진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허정진의요양원 가는 길

 

 허정진의요양원 가는 길은 이야기가 있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 극적 서사 구조를 띠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개 안에서 연합되었고, 중간 중간 작가의 소회를 담았다. 하지만 무드는 무겁고, 전개는 평면적이라 단조로웠다. 그럼에도 작가는 무거움과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심사를 통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유는 서사의 사실성과 서정적 수사 능력이다. 서사와 서정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야기 수필의 흥취를 살렸다. 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작가는 어머니의 점차 후패해지는 몸을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 침묵 속에 들어간 겨울 숲, 풀풀 날리며 무료한 오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 여린 늑골사이 녹슨 거푸집, 시골 간이역 등으로 비유했다. 이런 어휘들을 곳곳에 배치시켜 이야기에다 서정의 생기를 불어 넣었다.

 

안은숙의반쪽 지구본

 

 지금까지 분석한 각 작품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남편, 할머니, 작은아버지 등, 가족사다. 접근 방식을 보라. 사물이나 특정한 행위를 글의 재료로 삼았다. 김순애의나침반에서는 나침반을 보며 남편을, 김지희의노루발에서는 노루발을 재료 삼아 할머니를, 신정애의먹감나무에서는 먹감나무를 동원해서 작은아버지와 할머니를, 송귀원의비설거지에서는 비설거지를 통해서 어머니를, 허정진의요양원 가는 길에서는 요양원 여정에서 어머니를 말하고 있다. , 자기 내면이나 개인사에 침잠하고 있다. 하지만 위 다섯 작품과 차별화 된 한 작품을 발견했다.

 안은숙의반쪽 지구본이다. 작가가 재료로 삼은 대상물 반쪽 지구본이 말하고자 한 것은 개인사가 아니었다. ‘소통이 없으면 알 수 없는, 그래서 반쪽세상,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이다. 모여서라도, 피워서라도, 밝혀서라도 다시 찾아 온전하게 만들어야 할 세상이었다. 안은숙은 대상에 대한 예찬이나 미화된 자기 성찰의 고상함을 탈피했다. 개인의 시선을 벗어나 공적 시선으로 수필의 외연 확대를 시도했다. , 주제를 구축하기 위해 동원된 화소끼리의 결속이 선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화소의 이미지를 통해 주제가 암시되었다고 본다.

 

3. 개인의 시선을 넘어 공적 시선으로

 

 근래에 쏟아지는 작품을 보면 주제를 말하기 위해 동원된 재료는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그 독창성이 보편성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모호함을 낳고, 담긴 주제가 기발한 소재에 비해 턱없이 단조로우면 공허하기 십상이다. 현란한 소재, 단조로운 주제, 창작 기법의 경직성이것이 올해 신춘문예의 전반적인 기류였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개인의 문학 작품을 놓고 우열을 매길 수 없다. 대상의 이미지를 행간에 녹인노루발, 문장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어났던먹감나무, 뚜렷한 주제성을 발휘한비설거지, 서사와 서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된요양원 가는 길등 모두가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특별히 두 작품에 시선이 머물렀다. 수필의 고유성을 지키고 동시에 자연스러움을 살린 김순애의나침반, 현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적 시선을 지닌 작품, 안은숙의반쪽 지구본이다. 고무적인 것은 신춘문예에서 자기의식에 함몰된 기존의 틀을 깨고 시대 상황을 과감하게 드러낸 작품이 선정된 부분이다.

 이 시대적 기류는 어떤가. 문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2016년 우리가 살았던 한국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말하고 싶어도 말 못했던 때를 지나 마땅히 말해야 하는 때에서도 수필은 침묵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라고 했다. 시대 속에 머무는 작가라면 소명의식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시대성과 공동체성의 부재는 서정성에 갇힌 수필의 가장 큰 장애다. 우리가 왜 작가로 부름을 받았는가. 작가는 사적 삶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야 할 사명을 지닌 자다.

 

4. 에필로그

 

 각 작품을 세 번씩 읽었다. 처음은 문체와 전체의 윤곽이, 두 번째는 작가의 창작 방법론이, 세 번째는 작가의 사상과 얼굴이 보였다. 수필의 중심에 항상 가 있다. ‘는 경험적 세계 안에서 사는 인격적인 주체이기에 작가의 민낯을 볼 수밖에 없는 장르, 이게 수필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리얼리티 방식과 경험을 벗어나 상상을 구축해야 하는 방식 사이에서 부유浮游하는 수필가의 글쓰기는 실제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장르보다 혹독하다.

  근데, 이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수필의 숙명적 구조 안에서 현란한 진술에 현혹되지 않고 시적 함축의 유혹을 극복하고, 사실언어만으로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치열하게 어휘와 싸우는 사람들이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지 않고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는 당당함. 나의 삶 탈탈 털어 내놓고, 제 이름 하나 걸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야생의 소리가 수필이라 다행이다.

  생활세계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초현실적 문학의 틈바구니 속에 진실의 역작을 남긴 당선자들이 고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방에 앉아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절치부심하는 수필인들의 투지에 경의를 표한다.


출처 cafe.daum.net/mbctnvlf/MdB6/347   이상렬의 수필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