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김정화
그곳을 간 것은 순전히 광고의 힘이다. 우연히 본 백 년 전 광고 한 장이 내 눈길을 잡았다.
한번 구경하시오. 본 다옥에서 동서양 각종 과자와 모과수와 전복과 소라와 아이스크림과 사이다 각종 차도 구비하옵고 처소도 정결하오니 여러 신사와 부인은 찾아오시면 편리토록 수응하겠사오니 한번 시험하심을 천만 바라나이다.
- 종로 어물전 7방, 부인다옥 박정애 고백
매일신보 1911년 6월 7일 자 신문광고이다. 신사와 부인께서 한번 들르라는 도발적인 문구도 재미있지만 다옥 개업을 만천하에 홍보하는 여성 주인장의 용기가 놀랍다. 저렇게 근사한 광고문을 작성한 여인이라면 당시의 문사文士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어쭙잖은 작가 나부랭이에게도 콧방귀를 날리지 않았을까. 그러한 근대 다옥들은 사라진 지 오래이니 옛 다방이나 찾아 싱숭한 심사를 달래보기로 한 것이다.
대구 진골목길 한쪽에 자리한 미도다방을 찾았다. 80년 전통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다. 벽면 가득 걸린 서화, 덮개를 씌운 붉은색 레자 소파, 알록달록한 조각보 방석, 열대어마저 느긋하게 유영하는 수족관, 무엇보다 정물로 앉아 있는 신사들……. 물건도 사람도 모두 낡고 오래되었다. 현대판 도시 한복판에 시간이 멈춘 곳이다. 대를 이어 수십 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마담은 찾아오는 노인들에겐 옛 시절의 연인이다. 일일이 자리를 돌며 안부를 묻고 정겨운 악수를 나누는 그녀의 걸음걸이에도 기품이 배어있다.
옛 다방에서는 커피, 프림, 설탕의 삼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다방커피나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모닝 쌍화탕을 마셔야 제격이다. 강양이라고 호명되는 초로의 레지 아가씨가 센뻬이를 한 접시 서비스로 내어준다. 한 번쯤은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작은 여유를 누리는 것도 소소한 재미라고 여겨진다.
갑자기 옆 테이블이 소란하다. 정년 20년 모임에 참석한 산수傘壽의 노인들이다. 중절모 아래로 흐르는 백발과, 이끼처럼 피어난 검버섯, 지팡이를 잡은 무딘 손마저 이곳에서는 고졸한 멋이 된다.
“살살 걸어왔어. 살살 걷는 것이 인생이야.”
“낙엽을 밟고 오니 생각이 무량하네.”
대화를 나누는 쉰 목소리가 허공을 치올리는 모래바람처럼 까끌하다.
이제 옛날식 다방은 찾아보기 어렵다. 찻집과 카페에 밀리고 다국적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커피 한 잔”이라는 주문의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전문 바리스타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맛을 기억하고, 아메리카노인지 에스프레소인지 마끼아또인지를 정해야 하며 쿨인지 혹은 핫인지도 알려줘야 한다.
근대 한국의 다방은 심심파적 쉼터를 뛰어넘어 인텔리들의 아지트였다. 청춘남녀의 랑데부 공간이자 샐러리맨에게는 휴게소로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산실이 되어주었다. 문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더욱 ‘다방취미’를 비켜갈 수 없었다. 이상이 서울 종로에 ‘제비’, ‘69’, ‘쓰루’ 등의 다방을 차렸고, 커피 애호가였던 시인 김현승은 다형茶兄이라는 호를 짓고 홀로 다방에 있기를 즐겼으며, 김동리 선생은 부산 광복동의 다방 ‘밀다원’을 배경으로 소설을 집필하였다.
한때는 다방도 호시절이 있었다. 갑사 한복에 후까시 머리로 멋을 낸 가오마담과 아찔한 패션으로 분 냄새를 풍기며 쟁반과 마호병을 든 레지 아가씨가 단골손님을 맞았다. 마담과 눈인사라도 해 놓으면 벽걸이 티브이를 보며 진득하니 눌러앉아 있어도 눈총받지 않았고, 앳된 레지에게 “언니”라는 립서비스를 던지면 오지 않는 애인에게 건넬 쪽지편지쯤은 흔쾌히 맡길 수 있었다. 때로는 김양의 뾰족구두 굽 소리에 조신한 부녀자들의 눈흘김도 있었으나 이양의 스쿠터 경적 소리에 사내들은 생기가 돌았다.
내 청춘도 다방 문고리를 당기면서 시작되었다. 그 성역의 공간을 밀치고 들어서는 순간에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서투른 화장을 하고 빼딱구두를 신고 달고 쓴 커피 맛을 알았다. 동원다방, 약속다방, 수정다방에 가서 경화, 은자, 선희 같은 친구들과 모여 시시하기 이를 데 없는 수다를 떨고 음악을 듣고 몽상을 했었다.
광장과 밀실이었던 다방은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이 되고 있다. 그 옛날 더벅머리 총각이 수줍게 말을 건네던 “차나 한 잔……”이라는 말도 낭만을 잃었다. 검고 쓴맛이 나는 커피가 한약 탕국과 같다고 해서 붙은 커피의 옛 이름인 양탕국을 기억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이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은 사라져가고 테이크아웃이나 셀프서비스로 ‘커피를 마시는’ 카페만 번창하다. 바쁜 현대인들은 자판기 커피를 뽑고 길거리에서도 워킹커피나 패션커피를 들고 다닌다. 다방커피 맛을 알아야 세월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미도다방 한쪽 벽에 적힌 시구를 떠올린다.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라는 글귀가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 준다. 앞서 걸음 한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곳이 옛 다방이다. 그나마 사라져가는 그 추억의 힘을 지키고자 버티고 있는 옛 다방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 작은 포구 앞과 시외 주차장이 있는 시골 역, 읍내 오일장 부근……. 그곳으로 가면 마지막 다방풍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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