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약속 / 장영희

희라킴 2016. 11. 13. 09:12



약속 


                                                                                                    장영희 (1952 ~ 2009)


 아침에 눈을 뜨면 문득 이유 모를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마치 심장이 천천히 오그라드는 듯, 뻐근하게 가슴이 옥죄어 오다가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두려움과 공허감 말이다. 이 주변머리 없는 성격으로 또다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일이, 아니 앞으로 지상에서의 남은 나의 삶을 하루하루 헤쳐 나가야 할 일이 아득하다.


 미운 사람 보고도 반가운 척 웃고, 하고 싶지 않은 말도 꼭 해야 할 때가 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인 줄 알면서도 무조건 남발하고,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이 '살아감의 절차'를 다시 되풀이해야 할 일이 한심하다.


 시지푸스의 비극은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오는 돌을 또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올려 놓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그의 비극은 그가 힘겹게 밀어 올리는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두려움도 같은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힘들여 돌을 밀어 올리지만 내일이면 그 돌은 다시 산 밑으로 내려와 있을 테고,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굴러 내려오는 돌 밑으로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우리의 과거를 더듬어 첫번째 기억을 찾아내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느끼는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 담벼락에 붙어 울던 기억, 장터에서 엄마를 잃고 헤매던 기억, 아버지 주머니에서 몰래 돈을 훔치던 기억 등 마음 깊숙이 남아 있는 유년의 기억이 간혹 현재의 의식에 표면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첫 기억은 어떤 것일까. 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제대로 앉지 못해 누워만 있었다는 나. 그 때문에 오히려 나의 어린 시절은 내 일생에서 정신활동이 가장 치열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내 기억의 시작에는 마치 만화경 속의 수많은 색종이 조각처럼 제각각 크기와 색깔이 다른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그 중 유난히 두드러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나던 날 아침의 기억이다. 여느 때처럼 엄마 옆에서 눈을 뜨니, 밤새 동생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때 산파 아주머니가 대야에 물을 담아 들여 오는데 마침 창을 통해 햇살 한 줄기가 들어왔다. 햇살은 물 위로 반사되었고 순간, 색 바랜 격자 무늬 천장 위로 어른어른 빛 동그라미들이 그려졌다. 한 생명의 소식과 함께 내가 본 밝은 빛 동그라미들, 아직까지 그보다 아름다운 이미지를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기억은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아 있던 기억이다. 낮잠을 자고 깨어 보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 있었고, 집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엄마를 불러 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한동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던 나는 무심히 다락 쪽을 보았다. 꼭 닫힌 다락문을 보면서 문득 그속에 괴물 하나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나는 갑자기 지독한 공포에 휩싸였다. 아니, 차라리 괴물이 다락문을 박차고 튀어나와 나를 덮치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다락 속의 괴물과 빛 동그라미들, 어쩌면 내 삶을 축약하는 두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어디엔가 잠복했다가 어느 한순간 뒤통수를 내리칠 것 같은 괴물 같은 삶, 그런가 하면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있기 때문에 빛 동그라미처럼 찬란할 수 있는 삶.


 태어남은 하나의 약속이다. 나무로 태어남은 한여름에 한껏 물오른 가지로 푸르름을 뽐내리라는 약속이고, 꽃으로 태어남은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그 화려함으로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리라는 약속이고, 짐승으로 태어남은 그 우직한 본능으로 생명의 규율을 지키리라는 약속이다.


 작은 풀 한 포기, 생쥐 한 마리, 풀벌레 한 마리도 그 태어남은 이 우주 신비의 생명의 고리를 잇는 귀중한 약속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남은 가장 큰 약속이고 축복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이야말로 넓은 들판 가득히 콩알을 널어놓고 하늘 꼭대기에서 바늘 한 개를 떨어뜨려 콩 한 알에 박히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나는 우리의 생명은 그러면 무엇을 약속함인가. 다른 생명과 달리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다. 미움 끝에 용서할 줄 알고, 비판 끝에 이해할 줄 알며, 질시 끝에 사랑할 줄 아는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은 이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다. 괴물같이 어둡고 무서운 이 세상에 빛 동그라미들을 만들며 생명의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다.


 며칠 전 한 텔레비전 프로에는 괴한이 뿌린 황산에 온몸이 타들어 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나쁜 아저씨가 골목길에서 일부러 내 머리 위로 불을 쏟았다."

 여섯 살 난 아이는 '일부러'라는 말을 썼다.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악이었다는 말이다. 아이는 새벽이면 정신이 들어 행복했던 기억들을 더듬는다고 했다. 형과 함께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골드런 로봇, 무적의 라이징오 로봇을 갖고 놀던 일을 생각한다.


 "엄마, 나 골드런 로봇 사도 되나…… 집에 가면 아빠한테 돈 타서 형 아이스크림 사 줄 기라."

 눈 코 입이 완전히 녹아 내려 한 점의 괴기스러운 살조각이 된 얼굴 뒤에서 아이는 힘겹게 말했다. 아이 엄마는 말했다.

 "그제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새벽에는 저 애와 골드런 얘기를 할 수 없을까 봐, 약속을 지킬 수 없을까 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아홉 시 뉴스는 아이의 죽음을 알렸다. 바람 부는 이 세상, 생명의 약속을 지켜 주지 못한 이 세상을 떠난 아이의 빈소에는 로봇들이 줄지어 지키고 있었다.




출처: 장영희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샘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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