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우물 / 최장순

희라킴 2016. 9. 13. 17:46



우물

 

                                                                                                                                           최장순 

     

 누가 말을 거는 것일까. 우, 우, 내게 깊숙이 들어왔다가 돌아나가는 소리. 가만 귀 기울이면 내 안에 우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빛의 반사나 굴절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듯 기분에 따라 수심이 달라지는 나의 우물은 생명의 고향인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두레박줄처럼 나를 탯줄로 잇고, 세상에 내보내고도 아직은 바닥이 깊지 않은 나를 조바심으로 지켜봤다.

 

 얕은 동네 우물은 비와 바람과 눈을 고스란히 받아냈지만 맑은 날이면 하늘을 품고 주변을 끌어당겼다. 곁의 호두나무는 마음 놓고 제 그늘을 내려주었고, 안부처럼 열매나 잎을 띄워놓기도 했다. 속을 다 내준 그 우물은 누구든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낫을 갈고,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농기구를 씻으며 목을 축이셨다. 어린 손자들을 불러내 등목을 시켜주기도 했고, 걷어 올린 베잠방이 아래 한 바가지 물을 붓곤 질척거리는 걸음을 옮기셨다. 그곳은 동네 아낙들의 모임장소여서 펼쳐든 신문처럼 새로운 입소문이 귀를 모았다. 방망이질 소리가 한낮을 울리고 웃음이 쏟아질 때면 미나리꽝 미나리가 귀를 파랗게 세우고, 전분을 내는 감자항아리가 보초를 섰다.

 

 한 번도 메마른 적 없는 그 우물은 나와 닮았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나는 눈치를 들키기 일쑤여서 허드렛물처럼 쏟아내는 말에도 파문이 진다. 가벼운 바람이나 작은 돌, 청개구리 한 마리에도 쉽게 놀라고 흔들린다.

 

 도무지 내 속을 알 수 없는 날도 있다. 그런 때의 나는 까마득 깊던 동네의 또 다른 우물이다. 산비탈 언덕배기에 있던 그 우물은 여름에는 누군가의 냉가슴이듯 차고, 겨울엔 물맛이 따뜻했다. 장정 다섯쯤 세운 만큼의 깊이를 가졌던 그 물의 원천은 산이었다. 머루와 더덕과 도라지에서 걸러낸 푸른 입자들이 모이고, 소나무와 떡갈나무의 수관을 거친 정화된 수액이 몸에도 좋았다.

 

 밥 지을 물은 그곳에서 길어 올렸다. 부엌 한쪽 물독을 채우는 일은 고모와 누이들의 몫. 머리 위에 똬리를 얹고 그 위에 물동이를 올렸다. 입으론 똬리 끈을 물고 손으로는 연신 물을 흩뿌리며 바지런히 걷던 기술은 호기심이어서 나는 그들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곤했다. 물 긷는 일을 도울 때도 있었다. 두레박을 잡을 때면 두려움 반 호기심 반, 몸의 북채가 심장 저 안쪽을 둥둥 두드렸다. 깊고 어두운 그곳에 두레박을 텅, 떨어뜨릴 때면 나를 빠져나간 무언가가 알 수 없는 깊이로 곤두박질쳤다.

 

 깊이를 모르는 그 우물은 은근히 신비로웠다. 반원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면, 먼 곳으로 하늘이 흘렀다. 우물가는 늘 정결했고 고요와 정적이 감돌았다. 우물 속으로 몸을 기울여 고함을 지르면 한 바퀴 휘 돌고나오는 소리는 음산했다. 그 안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어 답을 해주는 거라고 믿었다. 깊은 만큼 울림이 컸지만 제 속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우물.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흥분하고 흔들리는 나지만, 한편으론 속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곤 한다. 때로 나의 진의가 왜곡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수심水心때문이다.

 

 우물의 비밀이 드러나는 때가 있었으니, 마을 제례의식처럼 매년 청소가 치러지는 봄날이 그때였다. 큰일을 앞둔 목욕재계처럼 어른들은 짚수세미로 석축에 붙은 이끼를 교대로 닦아냈다. 큰 두레박을 조심스럽게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내면 컴컴한 비밀을 품고 있는 그 속은 의례에 묵인이라도 해주려는지 그날만큼은 어둔 소리를 올려 보내지 않았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물을 퍼내면, 다음은 덩치 작은 내가 내려갈 차례였다. 중학생이던 내게 딱 맞는 그 일은 우물 속 부유물을 걷어 올리는 것이었다. 팬티만 입고 망태기에 담겨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르래가 줄을 풀어낼수록 좀 전의 호기심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하늘만 쳐다봐!” 어른들 목소리가 머리위로 쏟아졌지만 눈은 바닥으로 향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들러붙은 어둑한 안쪽과 환한 바깥은 확연히 달라서 장에 가신 어머니와 일 나가신 아버지의 부재가 더 큰 공포심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속 깊은 우물에서 세상모르고 자라던 한 마리 개구리였던 내 안에 자리 잡은 불만처럼 바닥엔 신발짝, 호미자루, 쥐불놀이 하던 깡통 같은 것들이 젖은 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식간 높이를 내리는 고층빌딩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그날의 공포를 느끼곤 한다. 마치 깊이를 모르는 우물 속으로 빨려 내려가는 듯한 현기증에 두 손을 꼬옥 쥐기도 한다. 먼 그날, 끈에 매달려 다시 바깥으로 나왔듯 나의 깊은 우물에서 오래도록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날은 감정이 줄줄 새고 또 어떤 날은 강퍅하게 메마르기도 하는 내 속. 너무 깊어 알 수 없거나 너무 얕아 환히 드러나는 그 우물이 매일 불안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 수필과 비평2016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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