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갓바위스토리텔링 수상]
약사여래불
박시윤
음력 구월 초하루 이른 새벽, 불면의 밤을 힘겹게 보내고, 퀭한 눈으로 옥상 의자에 앉았다. 아직 별도 떠나지 않은 차가운 시간, 낯설도록 전화가 울렸다. “야야, 자나? 대문 좀 열어 보거래이.” 친정어머니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새벽이슬에 젖은 어머니는 그렇게 서 계셨다. “서방이고 새끼고 다 떼놓고 오늘은 갈 곳이 있으니 따라 나서 거라.”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골목으로 안개가 폭 내려있고 바람은, 오갈 때 없는 여인처럼 어머니를 낯설게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옷깃과, 닳을 대로 닳은 신발에는 기워놓은 흔적이 너무도 많다. 가슴이 미어터질 때마다 표 내지 않으려고 애써 기워놓은 어머니의 가슴에는 얼키설키 실밥을 머금은 상처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5대 종손, 외아들인 아버지에게 시집와, 잦은 노름과, 잘못된 빚보증 탓에 그 많던 전답을 날려먹은 철없는 아버지를 한평생 가슴으로 보듬은 어머니. 터진 부분 부분을 잘 끌어안은 실밥들이 다시 틈을 보일즈음이면 어머니는 조용히 절간을 찾아 종일 기도를 올리곤 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차가운 새벽길을 달려오신 건 분명 오늘도 마음이 편치 못하기 때문이리라.
한마디 거절도 못하고 따라 나선다. 두 달 전, 나는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 판정을 받고, 댓가로 몸의 일부를 도려내야 했다. 견딜 수없는 통증이 시작될 때면, 갓 돌을 넘긴 아이의 냄새가 폭 배어있는 손수건 두어 장을 입에 물었다. 행여 나의 신음이 아이에게 들릴까 두려웠다. 미어터질 듯 누그러들지 않는 고통이 밀려올 때면, 사는 것조차도 무의미해졌다. 두 달만의 익숙지 않은 외출은 내 몸 하나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힘에 겨웠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약한 나를 기도 길에 올려놓으셨다.
갓바위 길 입구다. 걸어서 가야한다. 제 아무리 가파른 돌계단이라 해도 깊은 소원과 염원이 깃든 마음에는 평지처럼 가뿐한 길이 된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시기라도 한 걸까. 한판이나 되는 시루떡을 머리에 이고도, 서른넷의 딸년보다 거뜬히 돌계단에 몸을 옮긴다. 세월을 굽이굽이 돌아나올 때마다 온 몸의 뼈마디를 시주하고, 고된 노동에 지난밤은 관절염으로 잠을 설쳤을 거라는 걸 안다. 분명 어머니의 무릎에는 간밤에 떠 놓은 뜸자리가 갈색의 그을음을 꾹꾹 남겼을 테고, 좀 더 오래 뜸이 머무른 자리에는 한껏 부풀어 오른 물집이 어머니의 억척스런 고집처럼 솟아 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뒤를 나는 너무도 힘겹게 허덕이고 있다.
5살 난 큰아이를 업고도 가파른 돌계단을 거침없이 뛰어오를 만큼 나는 건강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한계단한계단 숨통이 죄여오고 현기증이 회오리바람처럼 인다. 어머니의 몸에서 물려받은 강한 세포들을 함부로 부려대며, 신경의 끝 날을 시퍼렇게 곤두세운 댓가로 이토록 맥없이 내 몸은 약해지고 있었다. 현기증이 일고 땀이 흥건히 속옷을 적신다.
저 멀리서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신다. 그리고는 이내 떡 판을 바위에 내려놓으신다. 나는 차츰차츰 어머니가 있는 곳까지 다다른다. 식은땀에 푹 젖은 나의 얼굴을 낙타의 혀처럼 까슬한 손으로 닦아 주신다. 불쾌해진 나는 모질게 얼굴을 돌린다. 낮은 기류의 바람이 어머니와 나 사이를 오고간다.
이번엔 어머니가 시루떡 한 덩이를 베어 입에 넣어 주신다. 부정 탈까 보자기로 얼마나 꽁꽁 덮어놓은 떡이었던가. 부처님 앞에 시주하여야 할 떡을 감히 딸년의 입에 떼어 넣는 어머니의 모습도 낯설다. “퉤. 나 떡 싫어하는 거 알면서…….” 풀 섶에 떡을 뱉고는 스윽 입가에 뭍은 노란 고물까지 닦아 뱉었다. 정성이 깃들면 극약도 사람을 살린다 했던가. 그런 어머니의 살가운 정성에도 인색하게 구는 딸년이 미울 법도 한데 어머니는 한마디 나무람도 없으시다. 나는 등을 돌리고 가던 길을 걷는다. 어머니를 앞질러서 모질게 걷는다. 숨이 가쁘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어머니가 무거운 떡판을 이고, 어떻게 계단을 오를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걷는다.
마침내 절간을 돌아 갓바위에 다다른다. 금방 뒤따라 올 것만 같았던 어머니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다. 그제야 떡시루를 인 아주머니를 못 보았냐고, 나는 다급히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다리가 아픈지 절 아래 가파른 계단에서 사뭇 머뭇거리더라며 일러준다. 한참 후에야 인파들 속에 섞인 어머니가 보인다. 어둠을 걷고, 뚜벅뚜벅 햇살 속으로 걸어 나오는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 어머니……
갓바위 앞에 엎드린 인파들 속으로 어머니가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열기가 식지도 않은 떡판을 통째로 시주하고 익숙한 솜씨로 향과 초에 불을 붙이신다. 백팔염주를 손목에 감으시며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머리까지 바닥에 내어 놓으신다. 반 생生을 훌쩍 보내고도 어머니는 아직 빌어야할 소원이 있으신가 보다. 뻣뻣한 나무처럼 서서 어색해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옆자리를 비워 두신다. 그러나 오랫동안 채워주지 않는 딸년의 빈자리가 허전한 듯 자꾸 고개를 돌리신다. 나는, 똑같은 절을 대체 몇 번이나 하실까 지루해하며 등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본다.
숲과 나무에 빛이 들고 오므렸던 꽃들이 다시 잎을 연다. 간간히 산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며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기도 하고, 밤새 이슬을 뒤집어 쓴 잠자리는 한참을 볕에 몸을 말린 후에야 비행을 한다. 해가 제법 따스하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시루떡이 싸늘히 식어갈 무렵에서야 어머니를 돌아다본다. 땀에 흠뻑 절었음에도 쉽게 절을 끝낼 생각은 없으신 듯하다.
‘갓바위 약사여래대불’은 부처님의 왼손에 약병이 들려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리라. 약병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기도하는 이의 정성이 지극하여 하늘까지 닿을 때 비로소 대불의 손에 쥐어진 약병이 보인다며 사람들은 더 더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하며, 지극함이 하늘을 울릴 때 병病은 향기로운 꽃이 되어 소멸한다고 했다. 갓바위는 정성이 깊게 깃들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하니 어찌 기도 속에 간절한 염원을 담지 않을까. 어머니는 시집보낸 딸년이 몸에 칼을 대고 바싹 말라가는 것을 늘 마음 아파하셨다. 보다 못해 오늘은 당신 몸을 시주하고 딸년의 건강을 온 몸으로 애원하고 계신 듯 하다.
한낱 무지한 미신으로만 여겼던 갓바위에 오늘도 수많은 인파가 북새통을 이루며 찾고 있다. 나는 그제야 갓바위 여래대불을 올려다본다. 인자하고 후덕한 자태는 마치 시루떡 판을 이고 목숨을 다해 올라오던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 평생 사치 없는 단벌의 옷으로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깁고 또 기워 입었을 어머니의 빛바랜 옷에는, 여래불의 가사에는 수수만의 눈물과 시름이 묻어있으리라. 나는 어머니 옆에 자리를 틀고 앉는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쉼 없이 되뇌이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약사여래불 가슴으로 들어가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한낱 무지한 미신으로 여겼던 것을 위대한 신앙으로 여기며 이 땅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 지극정성을 빌기 위해 오르고 올랐던 길일까. 나는 수없이 귓전을 울리는 약사여래불을 들으며 어머니와 똑같이 두고 온 내 새끼들에 대한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한다. 어머니의 기도가 약사여래대불을 지나 하늘을 울리는 날이 오기를, 합장한 나의 손과 가슴이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배가 고프다. 산기슭에 모질게 뱉어놓은 떡 맛이 혀끝에 맴돈다. 바람이 불자 향을 태운 재와 떡 고물이 대불의 옷깃에 내려앉는다. 대불은 그저 온화한 미소만 지을 뿐 그 무엇의 티끌도 털어내지 않는다.
해가 떠오르자 약사여래대불은 어느새 몸으로 짜 내린 그늘 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갓바위 부처님께 간절히 올린 기도 덕분이었을까. 그간 재발의 우려 소견이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2015년 9월 8일 오늘, 5년 전에 도려낸 암세포들을 말끔히 잊고, 나는 드디어 *'산정특례'의 꼬리표를 뗐었다.
*산정특례: 희귀난치성질환이나 암을 진단 받은 자를 요양기관에서 특별 관리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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