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매듭 인연
정 경 숙
귀엽고 앙증맞다. 갓 태어난 친손녀와의 첫 대면에 마음이 설렌다. 조막만한 얼굴에 눈, 코, 입 다 갖춰진 것이 신기할 정도다.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도 먹고사는 일이 생의 절실한 과제라는 건 아는가 보다. 콩알만 한 입으로 연신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햇살’이란 태명처럼 아이 얼굴 위로 엷은 아침햇살이 부드럽게 감돈다. 가슴을 볼록거리며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하도 예뻐서 살며시 안아본다. 무게감 없는 가녀린 생명체에서 몰캉거리는 체온이 따뜻이 전해온다. “그래” 이 순간부터 억겁의 인연이 겹쳐서 이루어진 너와 나의 소중한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리라.
나는 ‘인연’이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황량한 바람이 분다. 삶의 모서리에 모질게 닿은 인연으로 응어리진 가슴에는 온기마저 사라졌다.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으로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핏줄의 끈이 가만히 열어버린다. 혈연이란 때로는 아프다. 질척거림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평생을 끌어안고 가야 할 생명의 연결고리이며 행복의 근원이지 싶다. 내 자손이 존재하고 나를 기억하는 한 죽어서도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언 가슴을 따뜻이 녹여준다. 사랑도 믿음이라는 토양에서 싹이 틀 때 열매를 맺는 것이리라.
한 생을 살면서 인연만큼 소중한 것도 드물다. 더불어 사는 인간사에서 인연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부모 형제를 비롯해 부부와 친구, 스승, 동료처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만남의 인연으로 가장 깊게 그리고 오래 지속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사이가 부부의 연이 아닐까. 결혼이란 각자의 모자란 반쪽으로 만나 완성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 우연에서 필연이 되어 소실점을 향해 함께 가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하나 어떤 인연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행복한 만남이지만, 한 인간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치명적인 아픔을 주는 악연도 있다.
부부는 등 돌리면 남남이라고 한다. 몇 십 년을 살았어도 때로는 그 세월의 위력도 소용없을 만큼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나는 삼 남매를 낳고 사는 동안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남편의 꿈은 곧바로 우리의 행복으로 이어지리라 믿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성취의 기쁨도 잠깐,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 될 줄이야. 내 몸의 일부라 믿고 살았던 사람이 다른 인연을 맺고 매정하게 돌아서버렸다. 그 뒷모습에서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절절히 느꼈다. 기약도 없는 모진 세월을 발버둥 치며 살았던 삼십여 년의 세월은 매미 허물처럼 그의 발길 아래 누더기로 널브러졌다.
평생을 함께하리라 믿었던 선택인 만큼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의 배신감은 치명적일 수 있다. 생사로 갈라진 이별이라면, 함께한 세월은 애틋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남남으로 돌아선 지금, 지난 세월은 오물을 뒤집어쓴 듯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되었다. 서로가 이기심으로 인간 심성의 밑바닥까지 긁어대며 악다구니를 쳤기 때문이다. 자식이 셋이나 되니 속 시원히 악연이라 내뱉을 수도 없다. 이 세상에 핏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만큼 질긴 것이 또 있을까. 결혼사진은 반쪽으로 갈라진 지가 오래건만 의료보험증에는 나란히 이름이 적혀있다. 그걸 볼 때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죽어서도 소멸되지 않는 질긴 매듭으로 이어져 멍에처럼 따라다닐 것 같아서다.
어긋난 인연이라도 내 운명에 긴 그늘을 드리운다. 돌아선 지 십 년 만에 큰아이 결혼식 날 혼주 석에 나란히 앉았다. 하객들을 의식해서 의연하게 굴었지만 둘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서로가 눈길 한 번이라도 닿을까 봐 외면하자니 마음은 가시방석이다. 부부 인연에 대한 주례사를 들으면서 법정 스님의 글이 떠오른다. ‘너와 나의 관계도 신의 장난처럼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생의 뿌린 업의 결과이다.’는 구절이 가슴을 파고든다. ‘전생의 업을 알고 싶거든 이승에서 내가 받은 것을 보라’는 인과경의 한 대목처럼 내가 참 많은 빚을 졌던가 보다. 뿌리만 내리면 끈질기게 뻗어가는 칡넝쿨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연의 고리가 모질고도 질기구나 싶어 진저리가 난다. 한 번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자식 셋을 출가 시킬 때까지 슬픔은 삼키고 애써 웃음을 토해내는 어설픈 피에로가 되어 허공을 향해 춤을 추었다.
새로운 인연을 맺는 절차가 진지하다. 주례석을 향한 아들의 뒷모습에서 얼굴 표정보다 더 진한 심정이 배어 나온다. 부모의 불화로 겪었을 그간의 아픔이 느껴져서 자책이 들었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삶의 명암을 배워 간다고 했다. 마음고생은 많았지만 결혼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르리라 믿고 싶다. 부디 아름다운 인연이 되기를…….
부부는 먼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라 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여생을 함께하는 노년의 모습에다 부부 인연의 참 의미를 두고 싶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의 소망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뒤따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홈 스위트홈(home sweet home)을 작사한 미국의 극작가이면서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은 행복한 가정을 누구보다도 깊이 갈망했지만, 그는 정작 그 꿈을 이루어 보지 못했다.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기에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지진이 난 땅에도 생명은 움튼다.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세월이 흐르면서 무디어지고, 그 자리에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거늘. 악연도 선연도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내려와야 할 산을 열심히 오르듯,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만남을 영원히 기피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인연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인연으로 인해 자국을 남기는 아픈 상처도 받지만, 인연이 아니면 무엇이 우리들에게 그처럼 가슴 떨리는 사랑으로 기쁨과 보람을 안겨줄 것인가. 썩은 고목에도 새순이 돋듯이 시린 가슴을 비집고 살가운 인연이 찾아왔다. 눈물로 피워낸 소금 꽃처럼 내 삶의 의미를 준 귀한 선물을 꼭 끌어안는다. “그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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