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행상 길
김영순
백교문학상 수상작
'화장품'이란, 여인네들이 자기의 모습을 가꾸고 기쁨을 주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화장품은 진한 아픔이고 서러움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산이 기울자,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화장품 행상을 시작하셨다.
이 땅위에는 얼마나 많은 길이 있을까? 그 중에서도 우리 어머니가 걸음마다 흘렸던 피와 땀의 길은 희생의 길이었다. 젊을 때 잠깐 직장생활도 했던 어머니는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해, 그래야 사회에서도 집안에서도 무시당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아 갈수 있다."라는 생활철학을 갖고 계셨다.
"직업에는 도둑질과 사기 치는 것 아니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어머니는 화장품 도붓장사를 시작하였고, 자동차가 귀했던 그 당시의 모든 교통수단은 버스나 발 품팔이였다. 어머니는, 아녀자의 몸으로 산 넘고 물 건너 몇 십리 길을 이집 저집 들리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발이 퉁퉁 붓도록 다니셨다. 어떨 때는 가루분 하나도 팔지 못하고 오시는 날도 있었고, 그럴 때는 어머니의 어깨가 땅바닥까지 축 늘어진 채 기운이 없으셨다. 시골에 돈이 없을 때는 곡식으로도 받아 오셨는데, 머리엔 화장품봇짐을 이고 등에는 곡식을 지고,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오시는 어머니는 연약한 몸에 몸통보다 짐이 더 많아 로봇처럼 보이기도 했다. 철없는 나는 어머니가 들어오실 때면 손에 들려있는 과자나 흠집이 난 과일에 몰두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날에는, 오히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없다는 실망감에 풀이 축 죽기까지 했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오일장이 섰는데, 장날이면 한 복판에 화장품을 진열해 놓고 장에 오시는 분들에게 물건을 파셨다. 장이 서는 날이 휴일이나 방학이라 내가 집에 있을 때, 화장품을 좌판에다로 진열해 놓으려하면 손사레를 치시며 못하게 하셨다. 자고로 여자는 귀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런 와중에도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스케이트를 타는 등 그 당시로는 귀한 취미생활을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방학 중 집으로 가면, 어머니의 피곤함이 흰 머리카락과 비례하여 어깨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을 자주 느꼈다. 하루는 쓰러질 듯 피곤한 다리를 끌고 들어오시면서 말씀 하셨다. "버스비가 아까워 산길이 험한 시골길을 하루 종일 걸었더니 머리가 다 어지럽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루 종일 이집 저집을 다니시면서 밥 한술이라도 주면 한 끼니 때우시고, 없으면 점심을 꼬박 굶은 채 늦은 밤에 들어와 아버지 밥상을 차리시느라 노곤함과 힘든 삶이 밥상에 뚝뚝 덜어지던 날들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어느 여름, 장사를 나가셨던 어머니가 머리를 산발을 한 채 얼굴이 백짓장이 되어 들어오셨다. 옆 동네어귀를 들어서는데 초등학교 5~6학년처럼 보이는 아이가 벌집을 어머니에게 던져 그 벌들이 온통 어머니 머리에 쑤셔 박혀 머릿속이 벌집이 되셨던 것이다. 가까스로 벌들을 떼어낵 겨우 집에 당도한 어머니는 며칠을 앓으셨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윗마을에서 수금을 해야 하는데, 내일은 경순이 엄마가 크림을 갖다 달라고 했는데...” 하시면서 걱정을 하셨다. 그때 벌집을 던진 그 녀석을 못 잡은 것이 뒤통수가 벌게지도록 열이 나고, 흠씬 두들겨 패주지 못한 것이, 마치 내가 어머니의 머릿속에 벌집을 던진 것 같은 죄스러움으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찌 벌통을 던진 것 같은 죄스러움뿐이겠는가.
머리에는 화장품 봇짐을, 양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시던 어머니. 온 동네를 걸으시며 흘렸던 땀방울은 어머니의 피요, 눈물이요, 한숨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걸음마다 피었을 인동초꽃은 나를 가르치시기 위한 가이없는 사랑이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사셨던 어머니는 내 마음속에 온통 빚으로 남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40대까지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화장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의 아픈 삶이 내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50이 훨씬 넘은 지금, 조금씩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품을 살 때 열심히 화장품에 대하여 설명하는 외판원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 어머니도 하나라도 더 파시려고 저렇게 열심히 제품설명을 하셨겠지’어머니의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속눈물을 흘리곤 한다.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장작개비다. 자신을 태워 자식을 키운다. 철이 들면서 엄마가 되고, 나 또한 일찍 혼자가 되어 힘든 삶을 살면서, 자식을 키우며 어려운 행로를 걸어가고 있다. 어머니 가시고 십년을 어버이달인 오월이면 눈물을 쏟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울지 않는다. 어머니의 기도가 나로 하여금 꼿꼿하게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나는 내 生을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생전에 어머니가 들고 다니셨던 보따리인 보자기를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너절한 보자기겠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의 수고스러움에 전율을 느끼는, 평생이 담긴 인생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서울에 갔을 때, 백화점에 들려 제일 비싸고 좋은 향수 한 병을 샀다. 반평생 화장품 행상을 하시면서도, 제대로 된 화장품을 한 번도 써 보신 적이 없는 어머니! 칠월이 생신이신 어머니를 위하여, 어머니 무덤에 제일 좋은 향수를 가득 뿌려 드려야겠다. 온 산에 향수냄새로 어머니의 냄새가 나도록, 감사의 눈물을 한 병 가득 부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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