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미용실 소묘 / 신성애

희라킴 2016. 3. 20. 13:44

 

 

 

미용실 소묘

 

                                                                                                        

 

 

 “죽일까요? 살릴까요?”

 나는 날이 선 금속의 차가움을 손끝으로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는 순간 어깨를 움찔거린다.

 “죽여주세요.”

 소파에서 책을 뒤지던 여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남자는 살려달라고 하고, 여자는 죽여 달란다. 이 순간 나는 냉철한 집행관이 되어야 한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빈틈없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잘 갈아진 기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바짝 말라있는 머리카락에 촉촉이 물을 뿌려야 한다. 미세하게 숨 쉬는 머리키락의 아우성은 귀가 먹은 사람처럼 못 들은 척 완전히 무시해버려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일 곳과 살릴 곳을 정확히 찾아내어 사람의 지붕 하나를 꾸미는 일이다. 처음 지붕을 올릴 때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깔끔하게 다듬어서 집을 보호하는 역할에 만족했다. 날이 지나가면서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다시 양옥집으로 바뀌어가듯 머리카락을 꾸미는데도 까만 지붕에서 빨강, 파랑으로 주렁주렁 각종 장신구로 치장한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머리카락을 붙이며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주저앉으면 지붕이 내려앉은 것처럼 안타까워한다. 머리카락이 죽어버리면 자신의 자존심마저 땅에 떨어진 것 같단다. 갈라진 부분을 볼륨 펌으로 높다랗게 살려야 죽었던 자신감이 살아난다.

 

 남자는 살아야 한다. 밤이나 낮이나 기가 살아야 하고 힘도 펄펄 살아야 하고, 그래야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려서 물레에 실 잣듯이 돌아간단다. 풀이 죽은 머리카락도 볼륨을 넣고 짧게 잘라 꼿꼿하게 살려야 한단다. 그들도 한 때는 삼단 같은 머리가 까맣게 빛나던 눈부신 날이 있었을 거다. 그 시절에는 솎아낸 파밭같이 엉성해진 머리카락 때문에 가슴 졸이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보고 달려오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으리라. 세상사 둘러보면 무릇 살려야 할 것이 그것뿐일까.

 

 지난겨울 추위에 오그라져 시들어가는 화초를 살려야겠고, 나날이 퇴색해가는 사랑의 의미도 살려야겠다. 사그라져 가는 자존심은 불씨를 당겨 살려야겠고, 세상사에 주눅 든 처진 어깨도 높이 살려야한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살림살이도 살려야겠고, 매사가 심드렁해진 관심사를 살려야한다. 허물어져가는 정의감도 살려야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도 살려내야 한다. 정성들여 호기롭게 살려야하는 것이 있다면 죽여야 하는 것도 있다. 밭둑에 자리 잡은 쓸데없는 잡초는 죽여야 하고, 들풀처럼 일어서는 미움의 싹도 죽여야 한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이기심도 죽여야 하고,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생활의 무게를 죽여야 한다. 시시콜콜 간섭하고 싶은 주책도 죽여야 하고, 칼날처럼 선 오만을 죽여야 한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나의 편견도 죽여야 하고, 쓸데없이 뻗어나가는 칡덤불 같은 허영심도 죽여야 한다.

 

 여자는 죽여야 한단다. 낮이나 밤이나 부드럽고 나긋하게, 손질하는 데로 머리카락이 넘어가야 깔끔하게 스타일이 만들어진단다. 바람결처럼 자유롭게 흘러가고파 웨이브를 넣고 세팅을 한단다. 머리숱이 적고 가느다란 사람은 살려서 풍성하기를 원하고, 머리카락이 억세고 많은 사람은 죽여서 부드럽기를 바란다. 머리를 살리는 일은 인두나 드라이어로 뿌리에 열을 가하거나 바람을 넣고, 죽이는 일은 펌이나 염색으로 소금에 배추 절이듯 숨죽여야 한다.

 

 세파에 부대끼며 구겨지고 사라져간 짧은 날의 푸른 꿈, 무너진 자존심이 머리카락을 세우면 저절로 되살아날까. 자고로 살리고 죽이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데, 인위적으로라도 살리고 싶은 것이 평범한 사람의 바람이리라. 머리카락이야 내 능력 안에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손쉬운 일. 내 손가락 끝에서 그들의 마음이 살고 죽는다면, 미용실에서 흘러 보낸 시간들이 무의미하진 않으리라.

 

 가게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살리고 죽이지만,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서도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때로는 매듭지어진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죽이고 살리는 일에 끼어들기도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호기심과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은, 무언의 공범자가 되어 끈끈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서서히 그들과 나를 가로막고 굳건히 닫혀있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가는 것을 본다. 그들과 맞장구를 치며 세상사를 죽이고 살리다 보면 긴 여름의 하루해도 짧을 때가 있다.

 

 그들은 무슨 한풀이를 하듯 가슴속의 엉킨 마음을 펼쳐 보이는데 그 쏟아내는 말들을 주워 담은 내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 된다. 그들은 꽉 막혔던 하수구 같은 속을 비워내고, 펄떡이는 생선 같은 얼굴이 되어 살아서 가고, 가게에 남은 내 가슴은 무거운 납덩이가 얹힌 것처럼 시커멓게 죽어서 삭혀야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는 복이 달아날까봐 가슴 저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고, 나쁜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잊기 위하여 풀어헤치는 것이 아닐까.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것처럼 녹초가 되어버린 심신이지만, 죽었던 것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신명나는 놀이판인가.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하는 노랫말처럼 세상사는 죽이고 살리면서 끊임없이 돌고 돌지만, 어느 한 쪽이 온전히 죽어야만 살아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選수필' 2014 봄-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