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십원이의 유서 / 강호형

희라킴 2016. 3. 20. 13:43

 

 

 

십원이의 유서 / 강호형

 

 

 

나는 지금 청계천 하수구에 빠져 있다. 어느 칠칠맞은 아줌마가 나를 길바닥에 흘린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미아가 됐을 때만 해도 나는 사태를 비관하지는 않았었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구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의 그런 생각이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세상인심이 날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체감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매정해질 줄은 몰랐다.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나를 빤히 보면서도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구해주기는커녕 다시 한 번 더 짓밟아버리거나, 제가 무슨 축구선수나 되는 것처럼 걷어차는 작자까지 있었다. 나는 결국 미화원 아저씨의 빗자루에 쓸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하수구에 빠지고 말았다. 온갖 더럽고 독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이 뒤범벅이 된 구정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이 유서를 쓴다.

 

지금은 비록 이런 신세가 됐지만, 나는 어엿한 왕실의 후예일 뿐 아니라 종손의 가계를 이어온 귀공자였다. 나는 아버지 대한민국과 어머니 한국은행의 적자다. 한 가지 비극은 장남보다는 차남을, 차남보다는 삼남을 더 위하는 식의 가풍이다. 내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도 실은 이 잘못된 가풍 때문이다.

 

나는 구남매의 셋째다. 위로는 오원이 누나와 일원이 형님이 있고 아래로는 백원이 동생을 비롯한 육남매가 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만 해도 막내 만원이와 그 위로 오천이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비록 가풍이 잘못되어 내가 밑으로 네 동생들만 한 대접은 못 받았지만 오원이 누나 일원이 형보다는 귀여움을 받았다. 귀여움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더욱이나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왕자님 이상 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 십원이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섭다지만, 나의 위력은 곶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눈깔사탕 열 개, 캐러멜 두 갑, 또 뽑기 열 번-곶감 한두 개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단 한 푼일 때의 얘기지 두 푼으로 쌍을 이루기만 하면 자장면 한 그릇, 담배 한 갑, 잡지 한 권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세월이 덧없기는 그때가 더 심했던 것 같다. 70년대로 접어들자 나의 위력은 급전직하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한 푼 하던 버스요금이 여섯 푼으로 폭락(내 입장에서)했고 두 푼 하던 자장면은 일곱 푼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처음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던 내 누나와 형은 말할 것도 없고 그토록 총애를 받던 나의 인기도 차츰 아우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동생들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오천이와 만원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인기의 이전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 그래도 코흘리개의 세뱃돈 구실이나마 하던 그때가 좋았다. 따뜻한 안방, 돼지저금통 속에서 우리끼리 오순도순 모여 살던 그때가 그립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정쩡하게 보낸 시기는 80년대였을 것이다. 누나와 형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 자리를 내가 메울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때서야 고인이 된 맏형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지니자니 거추장스러운 존재. 돼지저금통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

 

지금은 90년대 중반을 지났으니 내 나이도 삼십이 넘었다. 인생으로 치면 이제 뜻을 세울 나이에 나는 하수구로 밀려났다. 그나마 내가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은 공중전화와 버스요금 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들마저 카드제가 되어, 내가 비록 이 하수구에서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나의 존재를 인정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형과 누나가 그랬듯이 나도 이제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러나 유년시절을 나와 함께 했던 세대들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또 나를 돼지저금통에 모아 은행에 넣고, 은행 통장을 불려 가구도 들여놓고 집도 장만한 알뜰주부들은 비록 할머니가 되었지만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담배 한 갑을 살 돈이 없어 낱개로 사서 피우던 아저씨, 십원이 하나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저씨들도 나에 대한 연민이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내가 비록 이런 신세가 되었지만 나는 대한민국과 한국은행의 적자다. 국민 여러분께 고하노니 그대들이 아무리 부를 축적하여 선진국 국민이 됐다 해도 한 때 고락을 같이하던 나를 이렇게 학대하는 것은 죄악이다. 부탁하노니 나를 죽이더라도 남아 있는 내 여섯 아우들만은 절대로 나처럼 버리지 말아주기를 당부한다. 그대들이 누리는 오늘의 풍요가 불쌍한 우리 형 일원이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비자금 오천억 원도 일원이 오천억 개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대들의 자손들에게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타일러 일원의 의미를 깨우쳐주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신위(神位)로 남는 것처럼, 우리는 죽어서 ‘원’으로 남을 것이다. 십 원이 일억 개가 모이면 십억 원이 된다는 사실을 그대들이 잊지 않는 한, 내 비록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십억 원의 일억 분의 일로 남아 그대들 곁에 있으리라.

 

대한민국 만세!

한국은행 만세!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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