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숨은 사랑/ 반숙자

희라킴 2016. 3. 20. 11:33

숨은 사랑

 

반 숙 자

 


  해거름이면 피아노를 두드렸다. 학교에서 퇴근한 뒤 빈 방이 주는 고요가 싫어서 저녁밥 지을 생각도 안하고 가곡이나 은파 같은 초보자의 곡을 쳐 보는 것이다. 그날도 버릇처럼 딩동거리고 있는데 수녀님이 찾아왔다.

 

  수녀님은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 보다가 뜬금없이 누군가를 사랑해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 또한 독신녀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긴 하지만 수녀님의 질문은 뜻밖이었다. 나는 못들은 척 처던 곡을 계속했다. 대답에 대한 회피로 알았는지 한동안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질문이 무심을 가장한 내 마음에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 수녀님은 누구를 사랑해 보셨어요?" 역습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이 일순 당황해 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장난기의 나의 역습이 노여웠는지 서둘러 가버렸다.

 

  내가 수녀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가을 코스모스 꽃길이었다. 성당에서 수녀원을 가려면 넓은 공터를 지나가야 하는데 운동장을 빼놓고는 온통 코스모스 꽃밭이었다. 누가 일부러 씨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씨가 떨어져 피고 졌다.

 

  그날 낯에 신부님의 전화가 있었다. 퇴근하고 사제관에 잠시 들르라고 해서 갔는데 새로 오신 수녀님을 소개시켰다. 그것도 사제관에서가 아니라 저녁 바람이 살랑대는 코스모스 꽃길에서다.

 

  신부님은 그런 분이다. 근엄함의 대표적인 사제의 신분이면서 천성이 자상하고 따뜻하였다. 미국인으로 한국을 당신의 고향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 예로 유창한 한국말로 강론을 하였고 결손가정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에게 아무도 몰래 사랑을 나누었다.

 

  신부님은 수녀님과 나를 꽃길에 세워놓고 한국의 가을 하늘과 청자연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은은한 청자의 비색이 신비하다고 하고, 그런 비색을 내는 마음이란 어떠한 마음일까 궁금하다고 했다.

 

  가끔 신부님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와서 운동장에서 체육수업 하는 아이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성당 행사 때면 미국식 포크댄스를 가르쳐 줄 때도 있었다. 이런 신부님이 편하고 좋았다. 여름이면 "엄청 덥네요, 수박 먹으러 와요."하는 애교스러운 전화도 했다.

 

  그러나 신자들 입장에서는 오란다고 가고, 개인적으로 너무 친해도 안 되는 것이 수도자에 대한 불문율의 금기사항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인 것을 아쉬워했다. 내가 젊은 여자만 아니라면 신부님을 편하게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수녀님이 오시고 성당은 활기를 더해 갔다. 매사에 치밀한 수녀님의 열정이 작은 시골 성당 교우들에게 송두리째 스며드는 것 같았다. 새 입교자가 날로 늘어갔다.

 

  두번째 코스모스가 필 때였다. 운동회를 마치고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 밤, 조심스럽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빗장을 여는 순간 대문 앞에 어떤 물체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누구세요?"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 물체는 현관을 향해서 걸었다.

 

  수녀님이었다. 까만 수도복 속에 창백한 얼굴이 마치 석고상 같았다. 가뭄에 타는 논바닥처럼 입술이 메말라 거친 숨소리를 토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토록 단아하고 분명한 수녀님이 무슨 일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나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냉수 한 대접을 마시고서 첫 말이 옷을 한 벌 달라고 했다. 수도복을 벗으려는데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아야 옷을 주던가 차비를 주지 절대로 그냥은 줄 수 없다고 하자, 자신은 수녀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로 밤은 깊어갔다. 요지부동인 나의 태도에 절망감을 느꼈는지 수녀님은 이불 위로 쓰러지며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밤마다 숲 속에서 지켜보았어요. 그 방에 불이 꺼지기 전에는 잠들 수 없었어요. 수단자락 끌리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려, 두근거려, 남몰래 ---."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 하느님! 나는 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진정한 사랑은 상대편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어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떠나버린 듯한 눈으로 바라보던 수녀님은 새벽녘 내가 잠깐 조는 사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뒤로 무성한 소문만 잠시 떠돌다 사라지고 수녀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다. 해마다 코스모스가 피면 못다 한 이야기가 살아나고 수녀님의 참다운 이웃이 되어주지 못한 나의 무능을 후회한다. 그때, 누군가를 사랑해 보았느냐는 물음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텄더라면 아무도 모르게 본당 신부님을 짝사랑했던 젊은 수녀의 번뇌를 덜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결한 몸과 영혼으로 오로지 하느님의 정배가 되어야 하는 수도자가 마음으로나마 하느님 아닌 사제를 사랑한다는 죄책감으로 끝내는 세상의 사막으로 스스로를 유배시켰지만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수녀님을 사랑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

 

  평화의 기도문을 쓴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 사제는 어느 날 하느님께 이르기를 "하느님! 당신만을 사랑해야 할 제가 꽃도 사랑하고 글라라 수녀도 사랑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프란시스코야, 아무 걱정 말아라. 나도 꽃도 사랑하고 나무도 사랑하고 글라라도 사랑하느니라."

 

  얼마나 멋진 대답이신가. 이 큰 사랑을 그때 알았더라면 수녀님의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줄 수 있었을 텐데 ---.


  올해도 코스모스는 성당 뜰 가득 피어 가을을 알려주고 있다.

 

 

@ '현대문학수필작가회' 작품집 <두 세계 사이에서> 중에서.

반숙자

충북 음성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 '몸으로 사는 사과 나무' 외 다수 
 


선자의 말 / 이관희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그때 이 작품을 읽은 감상을 적어놓은 것이 작품이 실린 끝 쪽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엇을 가지고 문학이 아름답다고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특별히 수필문학이 과연 아름다운 문학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한 편의 작품을 선 듯 내어 놓을 것이다."
그 외 내가 이 작품에 주목하는 까닭은 수필 작법에 관해서 나 자신 크게 도움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수필문단의 분위기를 보면 서정수필 보다 서사수필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사건)는 있는데 수필이 없는 작품이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반숙자의 <숨은 사랑>은 작가의 젊은 시절 어느 수녀님의 짝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작가는 수녀님의 짝사랑 이야기 부분을 소설적 기법을 빌어 완벽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그 부분만 잘라낸다면 그대로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이랄 수도 있을 정도다. 소설작법에서 요구하는 기본 작법인 기,승,전,결이 나무랄 데 없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소설인가?  "그 뒤로 무성한 소문만 잠시 떠돌다 사라지고 수녀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에서 작품이 끝나고 말았다면 이 작품도 요즘 흔히 눈에 띄는 이야기(사건)만 있고 수필이 없는 작품 중 하나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숙자는 수필가다. 그는 소설가가 되다만 수필가가 아니다. 혹은 소설가가 못 된 수필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수필가다. 천성의 수필가다. 그는 수녀님의 짝 사랑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소설가라면 당연히 수녀님의 짝 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반숙자는 소설가가 아닌 수필가다. 그러므로 그는 수녀님의 짝 사랑 이야기가 아닌 차라리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 사제의 말 한 마디를 놓고 '지금도 가슴 아파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젊은 날의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소설은 주인공이 가슴 아파 하는 것이고 수필은 작가가 가슴 아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반숙자에게서 배운다. 수필은 소설이 되다만 이야기가 아니다.
(편집실 F)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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