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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펌] 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글

희라킴 2016. 3. 16. 07:22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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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글

 

 


x = 피해야 할 것 0 = 습득해야 할 것

x 기교주의, 거친 일상적 내용, 짙은 현실주의 (위의 것들은 시의 감동을 줄인다)

x 간접적이고 상징적이고 때로는 비틀어지고 알쏭달쏭한 표현만이 시라는 관념은 세기말적인 거에 불과하다.

 

x 사상과 실천의 심화과정 없이 주관적으로 머릿속의 관념만으로 씌어지는 것이 문학일 수 없다.

x 갈등의 드라마가 없으면 단순성을 면치 못한다

x 아마추어 시들이 실패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설명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독자들의 인식 단계를 무시한 채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상징과 비유의 세계를 구축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x '상상력'이라는 부분을 핑계삼아 문맥의 부정확을 방기하는 것은 초보의 단계에 그쳐야 한다.

o 시를 언어에서 출발하지 말고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 황지우

o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조차도 기반은 '사실적 관찰'에서 출발해야한다

o 대중성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되 건강해야 한다. 대중성이란 말로 대중에게 영합하거나 병든 미적 관념과 가치관에 편승하지 말아야 한다.

o 상투성의 탈출 - 슬픔을 슬픔으로 노래하지 않는 것.

o 시의 서사의 은닉(이야기의 감축) - 수사적 책략으로 이야기의 결핍을 추구하는 서사양식. 이야기의 추방(생략, 압축, 절단)과 변환을 수반.

o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 형식이다.

o '에둘러 가기'를 포기할 때, 시는 궁핍이 되고 그 존재의 광휘와 넉넉한 까다로움을 상실한다.

o 시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좁게는 작품 차원에서, 넓게는 역사의 큰 문맥까지 전체성을 지향하고 완결성을 향해 나아간다.

o 시가 보편을 추구하면 추상에 떨어진다. 추상은 시의 지옥이다. 시가 어떤 보편을 성취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을 통해서다.

o 이미지의 구체성 - 몽롱하지 않음 (시의 한 방법으로서의 '애매성'은 이미지의 모호한 표현을 말함이 아니고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 가능성을 말함이다.)

o 시어는 추상어 보다 '구체어'를, 보편어 보다 '특수어'를 쓴다.

o 시인의 주장은 추상적 구호 없이도 아주 절절히 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o 시인의 관념보다 구체를 더 지향한다.

o 추상성 - 큰 고민 없이 어떤 '느낌'만으로 시를 채우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진정성의 결여)

o 시는 나의 감정의 서술이 아니고 독자의 감정의 획득이다.

o 잘된 시 좋은 시는 그것이 시인 자신의 감동에 머물지 않고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똑 같은 정서적 반응으로 자리하게 된다.

o 시의 질을 따지는 비평적 장치들 - 시적 진술의 평면성 극복 여부, 간접 화법의 정도와 효과, 이미지 배치법, 어사 선택의 연마도, 비유/상징 운용의 기술 수준, 긴장/갈등의 상승적 해소와 종말.

o 시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가지 == 1) 묘사와 비유로부터 발생하는 이미지 = 2)서사의 실제적 이야기 = 3) 리듬과 어조에서 태어나는 감정 - 이은봉

o 서정시와 음량은 늘 '아직도 작은 목소리'이다

o 문학이 문학적 진술의 모호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서 '신비적 사유양식'을 채택하는 일과 '신비주의' 그 자체에 빠져드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
- 역설적 어법을 통한 신비주의
- 은유적 신비주의

x 죽은 관용구를 시적 변형없이 그대로 나열하는 나태.

o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그 노래가 이미 불리워진 노래의 변조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문학은 일차적으로 창조적 배반과 전복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o 작가는 그것의 전범을 왜곡하고 비틀어 새로운 글쓰기의 모형을 만들어 내야 진정한 작가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o '관습적 사유에 대한 반란으로서의 시'

o 줄광대는 몸무게가 쏠리는 반대쪽으로 부채를 펼친다. - 시인의 부채는?

x 지당한 사유를 반복하는 것이 가져다 주는 지루함.

x '관습적 사유'로 인해 엄청난 감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을 감동 없이 써내는 것도 문학에서는 유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o 좋은 시인은 그의 내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 대부분 시인들은 자기의 감성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끝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한다.

o 나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과 나의 이야기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구별된다.

o '전형화'의 문제

o 어두운 시대, 시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상징이다. 소수인의 독점물일지라도 일정한 긴장과 자기 통제 아래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문학은 암울한 시대 상황과 싸우는 유일한 부드러움이요 무기다.

o '모더니스트'들이 사상적 빈약의 상태에서 육체의 세련미를 추구하느라 모호한 수사학적 유희에 집착해 왔다면 '사실주의 자'들은 언어의 의미망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과 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에 의한 상투성에 매몰되어 왔다.

o 시의 언어는 생리적으로 체험이나 사물의 구체를 겨냥한다.

o 담고자하는 내용에 압도되어 언어의 힘이 과소 평가되다 보면 일종의 '스토리 텔링'이 되기 쉽다. 짜임새도 있으며 건강한 주제 의식도 살아 있는데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말과 말 사이에 탄력이 붙지 않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 - 선취된 관념에 구속됨

o 서정시는 이야기 내용 또는 교설적인 측면을 가능한 한 제한해야 하는 양식이다.

o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수사력으로 대상이 가벼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은유의 세계를 버리고 되도록 평이한 표현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o 자신이 사용하는 말에 자신의 체중이 실리고 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o 모름지기 시란 그 핵이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에 있는 탓이다.

o 민족문학의 시적 흐름이 성급한 '개념적 진술'로부터 이와 같이 완벽한 '형상화'쪽으로 기운 것은 대단한 진화라고 불 수 있다.

x 관념의 덩어리를 날것 그대로 내뱉는 조야함의 탈피

o '80년대 민중시의 구조 중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스토리 위주'의 시적 진술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x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상투적인 산문성.

o 자기가 겪은 체험을 그대로 시로 옮기려는 '익숙한 것'에의 유혹에서 탈피하여 체험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작의 확보와 함께 시를 읽는 재미와 긴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x 비유와 상징의 상투성 또한 시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잘못된 비유와 상징은 예상치 못했던 '사막의 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o 적절한 의성, 의태어 - 정물화처럼 되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시를 동적으로 살려 놓기도 한다.

x 주제상의 육중함에 비해 그것을 지탱하는 형상적 풍요가 모자라게 느껴지는 경우.

o 악보가 부여되지 않은 언어는 또 그것 나름의 울림을 갖는다 - 음악성 고려.

o 서정적 주인공의 등장과 감춤.

o 어떤 서정적 주인공을 등장시킬 것인가를 고려.

o 민영의 초기 시 - 말을 아끼며 체험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절제되고 압축된 생략적 구도의 행간에 여백의 공간 또는 침묵의 공간이 펼쳐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시에서 볼 수 있는 호홉의 짧음과 이차원적 구도의 평면성에 의해 어떤 감상주의적 한계가 지적될 수 있다. (압축된 복합성이 없는 단순성의 경계)

o '시대와의 불화'는 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독자와의 불화'는 시인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o 이즈음 젊은 시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학성와 난해취미 그리고 요설이나 수다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x 진부한 이미지의 오용

x (-등)의 비유가 작품의 의도를 직접 노출함으로써 시적 암시력을 잃고 말았다.

o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서 이슬처럼 맑은 울림,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소리'여야 한다. 길고 긴 여운을 지닌 소리여야 한다. - 박노해

o 형상과 의미 혹은 상상력과 논리 사이의 끊임없는 존재론적 긴장감

o '도구적 접근'으로 부터 '미학적 접근'으로

x 시가 시적 자아의 삶에 기호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언술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개인적 감상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

o 문학이라는게 '상처보여주기'를 그 근본 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o 대칭 또는 역설적인 삶을 받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시 또한 대칭적이거나 역설적이다.

o 습작 시절에는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o <전형>에 대한 도식의 위혐 : 전형에서의 해방이 곧 인간 해방의 다의성으로 이어지는데는 훨씬 더 민중적인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 고은의 '만인보'

o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실험' '해체' 따위의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는 형식 파괴의 작업이 얼마만큼 독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라기 보다는, 그 작업이 얼마만큼 작가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혹시 겉멋부림은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o (그리고) 다음엔 그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삶이 우리의 현실 속의 삶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o '낮설게 하기'라는 문학적 기법은 이상의 이유들로 해서 문학사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끎으로서 인간과 세계와의 발전적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o 시인은 참말로 '최초로 생각하고 최초로 보고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x 그것은 막연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시 이전의 어떤 감정일 뿐이다. 다시금 삶의 구체적인 지형도 속에서 그 한 단면의 구체적인 드라마와 연결되어서 이쪽 저쪽으로 뻗어나가는 긴 이야기의 한 단편으로 정확하게 그것은 자리 잡아야 한다.

o 신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쉽게 떠오른 생각이나 글자들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백지 위를 너무 쉽게 달려간다.

x 삶에 대한 해석이 없다. 모든 것들은 단편적인 풍경이며 시인의 몇몇 나날들이 조합된 꼴라주일 뿐이다.

o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 '새롭게 해주는' 품격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히 봉사를 해야 한다.

o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상투형을 파괴'하려고 대담하게 모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o 시란 말하고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는 데에서, 즉 '말과 침묵 사이'에서 균형 된 어떤 탱탱한 긴장을 받기 때문이다.

o <일상에 대한 탐구>는, 그러나 일상의 표피적 묘사와 도시적 소품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우리 시대의 위기 구조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언제나 동반돼야 한다. - 아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시인에 의해서 발견되고 노래될 때도 그 시는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o 시가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우리의 '반성적 사유'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o 좋은 시인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표현할 때 조차도 심미적 거리를 유지하며, 대상이 존재 의의를 보다 명징하게 간파하여 절제된 묘사에 이르도록 한다.

o 시인은 언어의 도취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그 언어의 도취를 깨우기 위해 시를 쓴다. 그래서, 타락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그 세계를 지탱하는 타락한 언어에 대한 싸움이다. (관념화된 언어와의 싸움)

o 문제는 경험을 어떻게 사실에 부합되게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진실로 그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적 해명이며, 그 경험의 세계를 존재의 밝음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다.

o 풍자는 독자의 의식을 충격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미망을 깨고 현실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청자(聽者) 중심적인 문학적 계몽주의의 변종이다.

o (끊임없이 경계에 위치하며 그 경계를 지워 나가는 운동) - 이러한 운동이 그의 시를 '도취적 내면적 담론'에 머물지 않게하며, 그의 시들을 살아있게 한다.

o 모든 시적 언어는 논리적 언어로 요약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시적 언어가 된다.

o 시라는 장르가 초월의 형식이라는 미학적 명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초월은 대지의 삶에 대한 관심과 결코 불리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구조와 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절연한 초월은 소박한 낭만주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o 시는 부정을 목표로 하는 부정이 아니라,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건강한 힘'이다.

o (시인의 태도) 부정적 사유의 힘은, 그 쉬지 않는 운동의 에너르기와 자기 갱신에 의해서 유지된다.

o 시는 현실의 변화를 예감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에 참여하며, 나아가 그 변화의 의미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문학 형식이다.

o 시에 있어서 미적 구조의 진정한 성취는 시적 언어의 육화(肉化)를 얻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기 시의 경우) 시 언어의 현실감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태도가 '직설적이고 과잉된 수식어를 통해 개진됨'으로써 그 정서적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o 시에서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어휘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 언어의 형태적, 통사적 구조를 통해서이다. '준엄한 정의'를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정서적인 충격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인 것이다.

o 경험 자체는 시가 아니며 종교적, 철학적 통찰 역시 그 자체로는 시가 아니다. 시의 의미의 층위들은 그러한 세계관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만남을 계기로 화학적으로 침전된다. 시인은 흩어진 경험의 조각 가운데 선택적으로, 어떤 것을 독특하고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킨다. 경험은 정밀하게 관찰되고 현재화된다. 시는 일상적인 경험의 변역이 아니라, 경험의 의미를 실현하는 움직임이다. 시인은 그 '경험에 하나의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경험의 진정한 주체가 된다.

o 시의 '어조'는 작품의 외적인 경험 현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에 부과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 그 자체인 것이다.

o (자본주의적 모순 하에서) 시인들에게는 두 가지 싸움 방식이 부여되어 있다. 하나는 화려한 자본주의적 이미지들 안에 은폐된 추악하고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를 투시적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은 행복의 신화를 깨뜨리는 대항 이미지의 창출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언어 양식들의 어법과 표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그것들의 비꼼을 통해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o 페러디란 무엇인가? 모든 글쓰기는 모방의 글쓰기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낯선 것이 되려는 글쓰기이다. 글쓰기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페러디의 욕망이기도 하다. 문학 행위는 현실에 대한 일차원적 반영의 행위가 아니라. 앞선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모방과 베끼기의 행위이면서, 그 모방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점유하려는 행위이다.

o (80년대에 대한 90년대의 문학의 변화) 그것은 객관적 인식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우위, 웅변에 대한 독백의 우위, 집단적 전범에 대한 개인적인 개성의 우위, 모방론에 대한 표현론의 우위, 당위적 진리에 대한 일상적 진실의 우위, 재현적 진실에 대한 시적 탐구의 우위 등으로 거칠게 요약될 수 있을 뿐이다.

x 거기에는 생활의 객관적인 인식이 배제되어 있고 시를 쓰는 사람의 막연한 정서적 체험이 모호한 관념적인 언어를 통하여 나타나 있을 뿐이다.

o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을 때 효과성을 띤다.

o 형용사나 부사어가 한 행에서 반복되면 천박한 느낌을 준다.

o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 새롭게 해주는 품격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한 봉사를 해야 한다.

o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상투형을 파괴하려고 대담하게 모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x 젊음의 고뇟길에서도 늘 거울앞에 서서 자신만을 응시하더니, 그 고뇟길에서 돌아온 나이에도 여전히 거울 앞에 앉아서 자기 얼굴만 들여다보며 자기 얘기만을 써내는 그런 시인들이 의외로 많다.

o 서사와 서정의 개념은 헤겔이 정의한 대로, 자기 노출의 주관성의 표현이 서정으로 드러나는 것이요, 세상의 객관성을 움켜잡으려는 충동에서 서사가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o 시인에게 있어 세상은 맑고 투명한 감각으로 그 미세한 생명의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고 품어 안아야 할 삶의 현장이지, 싸움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x 이슬방울 맺힌 청청한 풀잎의 그 식물적 생명성은 간 데 없고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어쩌고 하는 비유의 뻣뻣한 잔해만 남아 공연히 폼을 잡는다.

o 삼라만상을 시인 자신의 주관성 표출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고 그것들의 빛나는 개별성을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o 시는 그 의식을 녹이고 삭여 예술성 짙게 형상화되어야지 생경한 구호 나열의 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o 시의 '어조'는 작품의 외적인 경험 현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에 부과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 그 자체 인 것이다.

o 유행에 편승하여 임시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는 '유희정신'을 버리고 인간 존재와 삶에대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오랫동안 속으로 묵혀서 오래 남는 시를 쓸 수 있는 시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o 요즈음 우리 시 일부에 유행하는 장광설, 비틀림, 무잡함에 일격을 가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o 그의 시에 특징적인 것은 그 어느 경우에나 시인 개인의 사적 주석 또는 감상적 개인에 의해 사물과 인생 그것의 본래적 역동성이 훼손되는 것을 시인이 극력 피하고 있다.

o 산문적 인식과 시적 인식의 차이 또는 산문적 표현 방식과 시적 표현 방식의 차이

o 시가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최대의 이윤'이 아닌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신실'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o 도식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 요즘 우리 시단에서 너 나할것없이 발표하는 소위 생태시를 보고 있자면 지난 시대에 민중시가 보여줬던 단순성과 도식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저버릴 수가 없다.

o 시인들이여 좀더 복잡해지기를, 시인들이여 인간은 물론 이 세계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잡스러운 것인가를 새삼 인식하기를, 시인들이여 그 유행 휘하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를, 시인들이여 노래하는 대상이 추상적 존재가 되거나 도그마가 되지 않기를...

o 이번에 출간된 ooo의 시집을 보며 그가 왜 이렇게 바깥으로만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차분하게 내면화시키거나 좀더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o 무엇보다도 시가 난해하지 않고 문장의 수식이 절제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다. 너무 언어가 화려해지고, 절실성보다 파격성에 매달리는 이 시대의 문화적 혹은 문학적 풍토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시는 조금 진부한 듯하나 오히려 그것이 돋보인다.

o 그러나 나는 그가 좀 더 말을 아끼며 조용하게 그의 시세계를 다듬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o 친숙함은 인식의 장애다.

x 저마다 자신의 개별적인 느낌들을 누가 무어라고 하건 말건 마구 써대는 시

x 이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모호함이다. 그러고 그 모호함은 자기 개인에게서 발생하는 느낌이나 생각들을 좀 더 깊은 타자들과의 관계라는 객관적 심연 속에서 우려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o 다시 말해서 두드러지게 노골적인 야유나 풍자를 통한 비관, 폭로속에 진정한 전복적인 힘이 '깃들어' 있으려면 그 작품의 시적 진정성, 슬픔과도 같은 큰 긍정이 그것을 깊은 데로부터 지탱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천박한 욕설에 불과)

o '쉬운시'란 지시적이고 관습적인 전달성의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쉬운시란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표현의 묘'를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온 '감동'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o 시의 공화국 안에서 시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다 가짜다. 철학적 언사에 대한 강의를 쫓아다니는 자들, 제도권과의 유희를 벌이는 자들, 시 속에 종교적 언사를 흩뿌리는 자들, 시가 궁극적으로 말해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 자들, 무엇 무엇이 시적 전통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모두 자기 죽음을 지키려는 자들이다. 시 공화국은 오직 '구체적 외부'만을 가질 뿐이다.

o 진부한 일상성에 발목이 잡혀있는 의사시는 버리자 - 인식이 없는 이런 시들은 요즘 우리의 시정신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o 즐거리의 최소한 합리성의 참견을 물리치기 힘든 소설과는 달리, 시는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는 비합리적 총체성을 오롯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o 창작 주체의 최대의 적은 보편성에 머무는 것이다.

o 시인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강하게 진술.

o 아이러니의 제공 원인은 객관적 상황일 것. 독자가 미처 몰랐던 아이러니를 깨달을 것, 아이러니의 개인성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x 언제부터인가 감각적인 낱말의 무분별한 나열이 시의 재치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재치가 일방적으로 해롭다는 뜻이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력과 분명한 관점으로 탄탄한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언어감각은 한대의 패션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x 근시안적인 시인의 기능주의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o 대상을 옳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투적인 선입주를 버려야 한다. 상투적 선입주는 언제나 어제 본 그대로, 더구나 남들이 승인하는 그대로만 보기 때문에 다수의 동의를 얻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날카롭고 창조적인 눈을 봉쇄하고 사물을 획일화 된 무덤속에 가두게 된다. 대상을 옳게 표현한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o 누보 로망은 이전 소설들이 기초하고 잇던 사실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주의는 하나의 작품을 하나의 근거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는 미지라는 현실에 동의하며 불안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누보 로망은 세계와 인간의 충돌을 작품 안에서 처리한다. 사실주의는 주인공의 어려움과 갈등을 논리적으로 작품 내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누보 로망은 책 자체가 설명이다. 누보 로망은 편안한 문학이 아니고 불편하게 만드는 문학이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사실주의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그린다. 누보 로망은 그것을 함께 보여준다. 이런 충돌이 우리가 쓰는 작품내에서 일어난다. 충돌이야말로 우리 일상이다. 언제나 두 가지 양극의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 --- 누보 로망을 읽으면 독자는 능동적으로 깨어 있다. 책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작품이 주던 안정성, 사실성은 현대 문학에서 사라진다. 하나의 작품은 여러 가지 불가능한 요소들이 충돌하는 불안정한 장이라는 충돌을 받는다. (알랭 로브 - 그리에)

o 노자는 말했다. 사람들은 진흙을 빚어 꽃항아리를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쓰이는 부분은 꽃항아리 속의 비어있는 부분이다. -- 정작 중요한 것은 비어있는 부분일 터인데 능청이 지나쳐 여행담이 너무 수다스럽거나 여행자가 얻은 각종 지식과 풍물들을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아 무거워지는 대목들은 최근 우리 문학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취약점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비어있는 부분이 핵심이라지만 항아리의 모양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야 상품(上品)이다.

o 시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구분이나, 참여니 순수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므로 호오(好惡)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優劣)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시인이 시가(詩歌) 언어(言語)의 규율을 무시하고 목청만 잔뜩 높이게 되면 그것 은 한 때 대학가에 요란스레 나붙었던 대자보나 근엄한 목회자의 설교와 다를 바 없다. 웅변이나 설교를 시의 형식을 빌어 듣고 싶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시는 결코 관념의 놀이터이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몽환적 어휘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속세무민의 연금술사에 자나지 않을 것이다. 시는 결코 독해할 수 없는 상형문자이거나 암호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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